‘학생 취업 막는 김영란법’

내년 2월 대학 졸업을 앞둔 A(23·여) 씨는 청년취업난이 심각하다는 것에 위기를 느끼고 올 여름방학때부터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여러 회사에 서류를 제출한 끝에 지난달 한 중소기업에 마침내 취직했다. 회사는 A씨가 재학생이지만 통상 대학 측에서 졸업예정자의 경우 취업을 하면 출석하지 않더라도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채용했다. 하지만 이달 1일 학기가 시작되자 A씨는 교수로부터 김영란법에 위반될 수 있어서 취업계를 허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학교 측의 말대로라면 나는 취직을 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취직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휴학을 해야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A씨의 회사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이곳 관계자는 “당장 휴학을 하고 회사에 출근을 할 수는 있다지만 언제까지 휴학생 신분의 ‘미졸업자’를 채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회사에 맞는 인재라는 생각에 적극 채용했는데 김영란법에 뒤통수를 맞을지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이달 28일부터 시행 예정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졸업예정자들의 취업을 막는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취직에 성공한 조기 취업자들이 학교 측에 취업계를 제출하고 성적을 받는 행위 자체가 ‘부정청탁’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이달 28일 시행되는 '김영란법'이 대학생들의 취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디지털경제 DB

김영란법에 따르면 제5조(부정청탁의 금지)에는 ‘누구든지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 등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부정청탁을 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동조항 10호에는 ‘각급 학교의 입학·성적·수행평가 등의 업무에 관하여 법령을 위반하여 처리·조작하도록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일반 국·공립대 교수는 물론 사립대 교수도 김영란법에서 '공직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교수에게 법령이 허용하는 재량권이 없는데도 학생이 출석일수를 채워줄 것을 부탁할 경우 위의 10호를 위반한 것이 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대학 교수에게 취업을 이유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부탁하는 것은 ‘부정청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영란법은 본인의 이익에 관해 청탁한 사람에 대해서는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학생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교수가 재량권 범위를 벗어나 청탁을 들어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대구경북 지역 대학들은 이달 세부가이드라인이 나오기 전까지 취업 학생에 대한 성적 부여는 ‘부정청탁’으로 간주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경제 DB

한 지역 대학 교수는 “학교에서 취업계에 관련한 규정이 명시돼 있다면 교수들도 딜레마에 빠질 필요가 없을 텐데 대부분이 취업 학생의 성적 부여는 교수의 개인적 판단으로 두고 있다”며 “세부가이드라인을 검토하는 것과 함께 학교 차원에서 김영란법으로 인한 학생의 피해를 막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민권익위원회는 현재 '법령에 근거한 관련 학점이 없거나 이를 위반하고 학생의 부탁을 들어줬다면 부정청탁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학칙에 취업계 적용 규칙 등이 명시된 경우에는 법의 적용을 피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가에서는 학생들의 취업계가 인정되지 않으면 취업난에 영향을 줄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회사에 필요한 인재가 김영란법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의지가 높고 실력이 뛰어난 인재가 취업계를 인정 받지 못해 우리 회사에 취직할 수 없다고 생각해보라”며 “다음에 같은 인재가 우리 회사에 지원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 가뜩이나 지역에는 한명이라도 사람이 아쉬운 판인데 김영란법이 여럿 힘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경석 기자  aclass@deconom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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