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하청업체에 계약서를 지연 교부해 과징금을 부과 받았던 현대백화점이 이를 악용해 대구 지역의 한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위반하는 등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구의 한 디자인 업체인 A사는 지난 2013년 4월부터 현대백화점 영남지역(부산·울산·대구)의 광고판촉물 편집디자인 제작업무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A사는 계약 내용에 따른 업무를 이행하기 위해 직원 3, 4명을 고용해 무난히 업무를 처리해왔다. 덕분에 4년 동안 총 3차례에 걸쳐 계약을 갱신했다. 하지만 올 4월 갑작스럽게 현대백화점 측은 A사에 새로운 디자인 업체를 입찰을 통해 선정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에 대해 A사 대표 B씨는 “이는 명백히 계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현대백화점과 A사의 최근(2016년 4월 1일자) 계약서에는 ‘본 계약기간 만료일로부터 1개월 전까지 당사자 어느 일방으로부터든지 서면으로 별도의사 표시가 없는 경우에는 동일한 조건으로 1년간 연장하는 것으로 본다’(계약서 제5조 제2항)고 돼 있었지만 계약 만료일인 2017년 3월 31일까지 현대백화점은 입찰과 관련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현대백화점은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1개월 전인 2017년 2월 28일까지 서면으로 별도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당연히 계약이 연장되는 것으로 알고 4월초까지도 직원들은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A사는 현대백화점이 계약 위반을 알면서도 입찰을 밀어붙였다고 주장했다. 일방적으로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갑질’인 셈이다. 실제 현대백화점은 A사에게 가장 최근에 맺은 계약서를 전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백화점이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위반하는 등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진은 현대백화점 그룹 정지선 회장(좌)과 박동운 현대백화점 대표이사.

이 같은 계약서 지연 교부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현대백화점은 2억3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이달 4일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납품업자와 거래 계약을 체결한 즉시 계약 서면을 교부하지 않고 계약기간이 시작된 후 또는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 교부하는 식으로 계약 서면 지연 교부를 총 808건이나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현대백화점은 A사가 이번 입찰건으로 계약서를 달라고 요청하자 인감날인도 없는 계약서 파일을 보내줬다.

B씨는 “대기업이 하청업체를 상대로 갑질을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약을 위반할지는 몰랐다”며 “절차에 따라 종료 1개월 전에 통보를 했으면 우리도 당연히 다른 업무를 찾거나 직원들에게 다른 기회를 줄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현대백화점은 입찰 결과에 대해서도 서류도 없이 전화상으로 통보하고서 바로 업무를 다른 곳에 넘겼다”며 “그 일을 했던 우리 직원들은 한 순간에 ‘백수’가 될 판이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계약 위반 주장에 대해 현대백화점 측은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한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해당 협력업체와 원활히 해결해 나갈 예정이다”고만 답변했다.

이에 대해 B씨는 “현대백화점 측에 계약 위반 사실을 알리는 한편 필요하다면 법적으로 대응도 할 생각이다”며 “대기업의 갑질에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고 말했다.

노경석 기자  aclass@deconom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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