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아재 개그

선비 : "아니 뭐라꼬, 사대부? 나는 팔대부의 자손일세."

양반 : "아니, 팔대부? 그래, 팔대부는 뭐로?"

선비 : "팔대부는 사대부의 갑절이지."

양반 : "뭐가 어째, 어흠, 우리 할뱀은 문하시중을 지내셨거든."

선비 : "아, 문하시중. 그까지 꺼……. 우리 할뱀은 바로 문상시대인걸."

양반 : "아니 뭐, 문상시대? 그건 또 머로?"

선비 : "에헴, 문하보다는 문상이 높고 시중보다는 시대가 더 크다 이말일세."

양반 : "허허, 그것참 빌꼬라지 다보겠네. 그래, 지체만 높으면 제일인가?"

선비 : "에헴, 그라만 또 머가 있단 말인가?"

양반 : "학식이 있어야지, 학식이. 나는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네."

선비 : "뭐 그까지 사서삼경 가지고. 어흠, 나는 팔서육경을 다 읽었네."

양반 : "아니, 뭐? 팔서육경? 도대체 팔서는 어디에 있으며 그래 대관절 육경은 또 뭔가?"

<초랭이는 여태까지 두 사람의 얘기를 귀담아 듣다가 잽싸게 끼어든다.>

초랭이 : "헤헤헤, 난도 아는 육경 그것도 모르니껴. 팔만대장경, 중의 바라경, 봉사의 앤경, 약국의 길경, 처녀의 월경, 머슴의 세경 말이시더."

선비 : "그래, 이것도 아는 육경을 양반이라카는 자네가 모른단 말인가?"

양반 : "여보게 선비, 우리 싸워봤짜 피장파장이꺼네 저 짜있는 부네나 불러 춤이나 추고 노시더."

<하회별신굿탈놀이 - 양반·선비 마당 중에서>

어떻게 선비 입에서 ‘사대부 × 2 = 팔대부’이고, 고려시대 최고 관직인 ‘문하시중(門下侍中)’의 ‘하’, ‘중’을 각각 ‘상(上)’, ‘대(大)’로 바꿔 말장난할 수 있는가? 게다가 사대부라는 사람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몰라 팔서육경(八書六經)경을 묻고, 하인 초랭이가 끼어들어 장난친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는 이런 말장난이 많고, 즉흥적 대사도 아주 흥미롭다. 게다가 공연에 등장하는 광대마다 춤과 걸음걸이가 독특하고 익살스럽다. 공연을 보는 관객은 광대의 대사와 몸짓에 까르르 넘어간다. 하지만 광대의 대사들은 그냥 웃고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그 속에 당시의 풍자와 해학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요즘 TV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 풍자 개그 혹은 아재 개그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는 지배 계층의 허세(양반, 선비), 종교의 타락(중), 차별 받는 백성(여성, 하인)의 삶 같은 현실적인 불만을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했다. 사람들은 통쾌한 장면을 보면서 답답하게 억눌렸던 응어리를 웃음으로 풀어낸다. 이처럼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탈 많은 세상’을 향해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 사용하는 하회탈은 원래 12종류지만 지금 남아 있는 탈은 주지탈 2개와 각시·중·양반·선비·초랭이·이매·부네·백정·할미 탈까지 총 10개이다. 총각탈, 별채탈은 기록만 남아 있을 뿐, 실제 어떤 탈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특히, 주지탈은 형태가 독특해 하회탈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하회탈은 국내 다른 탈과 비교해보면 특이한 점이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하회탈은 제작자가 유일하게 존재한다. 바로 ‘made by 허 도령'이다. 허 도령이 실존 인물인지 알 수 없지만, 전설을 통해 제작자를 알 수 있다. 마을의 재앙을 없애기 위해 허 도령이 탈을 만들었다는 얘기이다. 좀 더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필자가 쓴 <허 도령과 하회탈>을 추천한다. 이 책은 인형극으로 각색되어 하회마을에 있는 하회세계탈박물관 인형극장에서 매주 상설 공연한다.

두 번째, 하회탈은 유일한 국보 탈, 즉 국보 제 121호이다. 고려 중기 때 만들어져서 약 800년의 역사를 이어 온 가장 오래된 연극 탈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미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세 번째,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원래 10년에 한 번 혹은 ‘신탁(신의 계시)’이 있을 때만 열렸지만, 주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 되여 지금은 매주 관람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회탈의 배경인 하회마을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실제, 하회마을 전부가 문화재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탈의 역사는 우리나라만 해도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동삼동 신석기 시대 조개무지에서 사람 얼굴 모양의 조개 탈이 나왔다. 이처럼 탈은 우리 역사와 오랫동안 공존해왔다.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많은 탈춤이 전해 내려온다. 진주 오광대, 동래야류, 송파 산대놀이, 남사당 덧보기, 하회별신굿탈놀이 등 형식도 다양하고 탈도 각양각색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베트맨,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같은 캐릭터 가면도 아이들에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추석 기간에 경북 안동에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린다. <선유 줄불놀이>같은 화려한 행사에서부터 각국의 탈 공연까지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글로벌 축제이다. 특히, <선유 줄불놀이>는 ‘축제 속의 작은 축제’라 부를 만큼 화려하고 아름답다. 하회 마을의 옛 양반들이 강에 배를 띄우고 비처럼 쏟아지는 줄불을 감상했던 풍유놀이를 재연한 것이다. 강물 위로 바가지에 기름 먹인 솜을 불붙여 넣은 달걀불이 둥실둥실 떠내려가고, 솔숲 맞은 편 강 건너 절벽까지 이어 놓은 긴 줄에서 떨어지는 불꽃가루는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번 추석은 장장 ‘열흘’이 기다린다. 민족 고유의 명절에 가족과 함께 우리 문화유산과 함께 세계의 각국의 민속 문화를 체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정종영 / 동화작가 / 역사스토리텔링 전문가 /didica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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