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관문시장은 1979년대 성주, 고령, 칠곡, 합천 주민들이 농산물, 과일, 채소를 싣고와 대구 공산품과 바꿔가던 물산과 교통의 요지였다. 지금도 유동인구가 1만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연재를 시작하며=과거 우리의 유통구조는 고급화를 지향하는 백화점, 접근성, 편의성을 위한 슈퍼(구멍가게), 정(情)과 가격을 앞세운 전통시장으로 이루어졌다.
견고하게 유지되던 삼각구도는 1996년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까르푸, 월마트 같은 국제 대형마트가 국내 시장으로 진입하자, 대기업들도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같은 대형소매점을 앞세워 방어에 나섰다. 이들은 막대한 자금력과 경영 노하우를 앞세워 중소도시까지 진출하며 시장을 잠식해갔다.
여기에 홈쇼핑, 온라인쇼핑몰, 편의점 등 다양한 업태가 등장하고 더욱이 코로나사태 이후 ‘비대면’ ‘언택트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구매 방식이 등장하면서 전통시장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최근 대형마트 3사의 매출은 31조(2019년 기준). 반면에 1천400곳이 넘는 전국 전통시장 매출은 18조를 기록하면서 전통시장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대구경북의 전통시장과 오일장들을 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현재 우리나라 유통구조와 전통시장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나름대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 정신 속에 잊혀져가는 ‘장터 DNA’가 되살아나기를 소망한다.

본 시리즈의 첫 방문지는 남구 대명동 관문시장으로 정했다. (관문시장은 시리즈의 첫 관문으로 이상적인 이름이 아닌가?) 사실 관문시장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 역시 ‘관문’(關門)이라는 이름이다.
1960~70년대 대명동 서부정류장 일대는 달성, 고령, 성주, 합천에서 대구로 드나들던 교통로이자, 길목이었다. 2005년까지 달성군 청사가 시장 바로 옆에 있었을 정도 대구와 경북, 경남을 잇던 요지였다.
민초들의 왕래가 잦아드니 정류장이 들어서고, 물자가 모이면서 장터가 열린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렇게 대구 남부의 물자 집산지로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1972년에 관문시장이 들어섰고, 모여든 장꾼들의 편의를 위해 2년 후 서부정류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서문, 칠성, 팔달시장과 함께 대구의 4대 시장
보통 대구의 4대 전통시장 하면 서문시장, 칠성시장, 팔달시장과 관문시장을 든다. 1972년에 이곳 장터가 열렸으니 거의 반세기 동안 시민들과 함께 애환을 함께해온 셈이다. 관문시장의 가장 장점은 대중교통 접근성이다. 대구 시외, 남부권 교통을 커버하는 서부정류장이 있고 대구 시민들을 위한 도시철도 1호선이 바로 앞을 지나간다.
상가 사무실에서 만난 이종대 사무국장은 “관문시장은 대구의 서부 요충지에 위치한 중규모 시장으로 예로부터 성주, 칠곡, 고령과 경남 합천 주민들이 생필품을 싣고와 대구의 공산품과 바꿔가던 곳”이라며 “지금도 시장 유동인구가 1만 명을 넘나들 정도 시장이 활성화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관문시장의 인기 품목은 농산물. 점포만 35곳에 이르고 수산물 16곳, 축산물 14곳이 그 뒤를 잇는다. 농축수산물이 일찍부터 주력상품이 된 것은 대구 근교에서 갓 생산된 과일, 채소들이 거래되던 전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부터 수산물로도 유명했는데 이 역시 부산 경남권에서 신선한 해물이 반입되기 쉬운 지리적 조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관문시장은 2008년 58억 원을 들여 주차장, 소방도로, 캐노피, 상징 조형물 등 새 단장을 했다. 이런 시설 현대화 덕에 사계절, 연중 기후에 관계없이 시민들의 경제활동,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관문시장은 채소, 생선, 과일, 반찬, 식료, 즉석요리, 구제, 패션 등 전통시장이 갖춘 모둔 요소들을 구비하고 있다.

◆닭강정, 족발, 어묵 등 시장 별미 즉석에서 조리
관문시장 장보기는 서쪽 주출입구에서 시작된다. 입구엔 가물치, 잉어, 다슬기, 미꾸라지를 파는 좌판이 손님들을 맞는다. 여느 시장처럼 관문시장도 음식 군것질거리가 풍족하다. 갓 구워낸 빵을 즉석에서 파는 빵집, 바삭한 고르케부터 매콤달콤한 닭강정이 장꾼들의 식욕을 돋운다. 소시지와 맛살이 통으로 들어간 어묵도 즉석에서 맛볼 수 있다. 시장 요리는 대부분 즉석요리로 좀 품위 있게 말하면 수제(手製) 간식들이다. 음식 재료를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조리 과정을 눈앞에서 관찰하며 오감으로 맛을 즐길 수 있다.
고객지원센터 골목은 떡, 건어물, 야채, 반찬, 족발이 유명하다. 가게마다 ‘TV 출연 맛집’을 알리는 플래카드들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식당과 상점에 대한 정보가 없는 쇼핑객들에게 방송 출연 여부는 메뉴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건 사실이다.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꿀닭’집의 닭강정을 ‘마약’으로 미화하고, 가성비 최고의 맛집으로 ‘현풍닭칼국수’를 들기도 한다. 족발집으로는 ‘장충동족발잡’ 포스팅이 가장 많은데 어디까지나 검증은 독자들 몫이다. 또 상가 곳곳에 견과류, 강정집이 주주 눈에 띈다. 덕분에 시장 골목엔 사계절 고소한 향기로 늘 가득하다.

3지구에 형성된 구제골목은 200여곳의 점포가가 밀집되었으며 ‘대구의 동묘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200곳 넘는 구제시장 대구의 ‘로파우사다’
인터넷에 ‘관문시장’을 치면 제일 많이 노출되는 단어가 ‘구제 골목’이다. 관문시장 상가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3지구 동쪽에 형성된 시장이다.
120m 남짓한 골목에는 패션, 의류, 명품 간판을 단 옷가게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30여년 전 몇몇 상인들이 점포도 없이 노점으로 시작한 이 골목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권을 형성하기 시작해 지금은 200여 곳이 훌쩍 넘는다. 일부 마니아들은 여기를 대구의 로파우사다, 대구의 동묘시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물품은 의류 외에 구두, 가방, 벨트, 스카프 등 다양하다. 티셔츠·청바지류는 4~5천원, 자켓은 5천~1만 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고, 가죽이나 명품 브랜드는 4만~5만원에 거래된다.
나에겐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긴요한 옷들이 세탁과 수선을 거쳐 두 번째 삶을 준비하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과거에는 40~50대 중년이후의 고객이 골목의 단골이었지만 요즘은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에 관계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10대와 20대들은 ‘빈티지 패션’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찾아오고, 40대와 50대는 독특한 디자인의 수입의류를 싸게 사기 위해, 60대는 알뜰 쇼핑을 위해 찾는다.
거리에서 만나 한 20대 여성은 “운이 좋으면 버버리, 폴로, 리바이스, 콜롬비아, 갭 같은 해외 브랜드는 물론 국내에 생소한 아베크롬비 & 피치, 홀리스터 같은 레어(rare) 아이템도 만날 수 있다”며 “단돈 몇만원에 이런 옷을 건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들른다”고 말했다.
이런 사장의 활기찬 모습 너머 시장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름들도 많다. 대형마트의 ‘공습’에 근래 코로나사태 이후 급격한 매출감소가 현실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인회 박삼수 회장은 “대부분 전통시장이 온라인 쇼핑몰, 대형마트에 밀려 날로 고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관문시장은 일찍 현대화 작업에 나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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