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당시 경상북도 만세운동의 중심이었던 영해만세시장.

‘경상도의 불령자(不逞者·독립운동가) 망동 중 영해, 영덕 지방의 소요가 대단히 맹렬 했다.’
1919년 5월 영해 만세운동을 시찰하고 온 조선총독부 경무부장의 보고서 내용이다. 영덕 3·1운동은 총독부 기관지에 비중 있게 다뤄질 정도로 매우 격렬했고 일제에게 위협적이었다.
돌, 몽둥이, 도끼로 무장한 주민들이 주재소, 면사무소, 학교를 부수고 진압에 나섰던 무장경찰이 포로가 되기도 했다.
그때 구금된 영덕 주민이 489명이었는데 당시 대구 체포자가 297명, 안동 392명 인 것에 비하면 일제가 영덕에서 당한 치욕에 얼마나 보복적으로 나섰는지 짐작할 수 있다.
디지털경제 ‘전통시장 탐방’ 이번 주엔 경북 만세운동의 현장 영해 만세시장을 돌아봤다.

◆영해는 고려시대 이미 도호부(지금으로 치면 광역시)를 설치할 정도로 한반도 동부의 사회, 군사, 경제적 요충지였다. 넓은 영해평야는 풍족한 곡창이었으며, 천혜의 해양 입지 역시 영해가 동해안의 중심도시로 부상하는데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넘치는 해산물을 따라 외지의 곡물상들이 몰려오고, 어상(魚商)들도 연안에서 잡은 해산물을 내다 팔며 상권을 키워갔다. 여기에 각종 난전, 잡상들까지 모여들어 장세(場勢)가 주변을 압도했다.
1970년대 영덕에는 모두 7개의 재래시장이 섰다. 이중 영해시장 규모가 가장 컸다. 보통 군청소재지가 있는 곳(영덕)에 가장 큰 장시(場市)가 서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선 조금 다르다. 이는 영덕과 영해의 특유의 문화적 전통에 기인한다. 영덕과 영해는 본래 별도 행정구역이었다. 바닷가에 위치해 빈곤했던 영덕과 달리 영해는 ‘작은 안동’으로 불릴 정도로 풍요로웠다.
1914년 일제는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영덕에 군청소재지를 두었다. 번성했던 영해를 영덕에 편입하고 면(面)으로 격하한 것은 영해의 항일정신을 꺾기 위해서였다. 당시 토착 양반인 권, 남, 박, 백, 이 등 오성(五姓) 유지들도 영해읍성에 주로 거주했고, 영해, 병곡, 축산, 창수면이 영덕면 보다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자존심이 작용하고 있었다,
시장 규모도 영해시장이 훨씬 더 컸다. 이는 예전에 부산, 대구, 안동 도매상들이 영해시장을 찾고 영양, 청송, 평해에서 거상, 장꾼들이 모여들 정도로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덕 만세운동의 주 무대가 영해시장이었고 영해장터에 최대 인파가 몰려 점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 한다.

영해시장에서 펼쳐진 만세 퍼포먼스 장면. 영덕군 제공.

◆영해시장은 1980년대까지 번영을 누렸다. 없는 게 없었고 구하지 못할 게 없었으며 필요하면 뭐든 다 만들어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에 이은 이농현상으로 12만 명에 육박했던 인구가 3만6천명으로 떨어지면서 시장의 위상도 비례해서 추락했다. 여기에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은 전통시장의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다.
현재 영해시장은 5천㎡ 면적에 150여개 점포를 거느리고 있다. 건어물, 횟집 등 해산물 점포가 절반쯤 되고 채소, 과일전, 잡화, 반찬가게가 그 나머지를 채우고 있다.
매월 5, 10일에 장이 서고, 주차장 쪽 입구에서 동문까지 약 150m가 시장의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다. 노점과 상가들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상생하고 있다. 언뜻 노점, 상가가 서로 엉켜 있는 것 같지만 적절한 카테고리별로 잘 분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편안한(寧) 바다(海)’의 지세와 이름 덕에 영해시장은 늘 싱싱한 해산물로 넘쳐난다. 20~30분 거리 후포, 축산, 대진항에서 신선한 해산물이 시시각각 공수되기 때문이다.
한때 오십천에서 잡히는 은어와 대게가 특산물 이었지만, 대게는 강구시장에 상권을 내주고 은어는 시장 밖 횟집이나 일반음식점으로 밀려났다.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단연 가자미회다. 1만 원어치면 두 사람이 반주를 곁들여 먹기에 충분하다. 횟감 종류도 물가자미, 밀치, 밴댕이, 청어 등 다양하다.
활어가 아닌 선어(鮮魚)를 쓰기 때문에 이 가격대, 양이 가능하다. 시장에서 만난 한 여행객은 “노점에서 가자미회를 주문하고 흥정을 하려고 나섰다가 바로 포기했다”고 말한다. 도시락 가득 담아주는 넉넉한 양과 아주머니 후한 인심에 ‘전의’(戰意)를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도 휴가 중에 시장에서 족발, 수육과 미주구리회를 샀는데 생선회 접시가 제일 먼저 비워지는 것을 보고 그 인기와 맛을 실감했다 .

영해만세시상에서 인기가 높은 가자미회. 2만원 어치면 4~5인이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양이 많다.

‘넘치는(盈) 덕(德)’의 도시, ‘편안한(寧) 바다’(海). 영덕과 영해는 격조 높은 도시 이름과 달리 역사적으로는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고려 말부터 동해에 왜구의 침입이 잦았고, 일본과 가장 거리가 짧았던 영덕은 왜적의 주 타겟이 되었다. 왜구는 동해안은 물론 상주부터 충북 내륙까지 침투 할 정도로 조직적이었고 대규모였다.
역사가들은 일제하 신돌석 장군의 의병운동과 영해만세사건을 이런 왜구의 침탈에 대한 분노와 저항 의식에서 찾기도 한다.
‘편안한 바다’를 기원했던 영해 주민들의 평화 정신과, 망치와 도끼로 주재소를 허물었던 군민들의 저항의식, 그 간극(間隙) 어디엔가 영해의 정체성과 현재가 있지 않을까.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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