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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피플] 나눔, 기부 앞장 미산약초농장 김원수 회장어성초 만나 극적으로 통풍 탈출... 약초사업 성공 후 사회 환원
미산약초농장 김원수 회장이 죽전동 유통센터에서 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에서 300년 역사를 지닌 가문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그것은 바로 ‘적선’(積善)이라고 한다. 선을 쌓는 일, 말이 쉽지 이웃돕기 2,000원 ARS 전화 한 번 하는데도 여러 번 망설인다.
구례 토지면의 운조루(雲鳥樓) 쌀뒤주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말을 붙여 놓았다. 아무나 열고 쌀을 가져가라는 뜻이다. 12대에 걸쳐 만석꾼 냈다는 경주 최 씨도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구휼지덕(救恤之德)으로 유명하다.
대구에도 적선지가(積善之家) 교훈을 말없이 실천하는 사업가가 있다. 달성군 하빈에서 미산약초농장을 운영하는 김원수 회장이다. 죽전동 미산약초유통센터에서 만난 김 회장은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펼쳐 놓았다. 김 회장의 성공 인생과 투병, 그리고 나눔 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한 때 100억 매출 사업체 경영=젊은 시절 셈이 빠르고 시장 분석이 정확했던 김 회장은 일찍부터 사업에 눈을 떴다. 기계 두 대로 시작한 양말공장은 140대로 늘어났고 대구 대표 브랜드 ‘동산양말’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 사업을 키웠다.
1990년대 섬유사업이 침체기에 들어가면서 스판텍스 양말실공장으로 옮겨 탔는데 이게 대박 아이템이 됐다. 신축성이 뛰어난 스판소재는 전국으로 판매망을 넓혀 갔고 매출은 100억원을 돌파했다. 사업가라면 누구나 꿈꾼다는 100억 매출고지, 김 회장의 사업 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100억 매출을 돌파하고 얼마 후 김 회장은 50억원 부도를 맞게 된다. 20년 가까이 쌓아왔던 그의 노력이 차압딱지와 빚독촉장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 후 유통업과 부동산 임대업으로 재기했지만 이미 그의 건강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손마디, 관절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했어요. 약기운이 떨어지면 진통제로 연명하는 생활이 계속 됐죠.” 50대에 찾아온 통풍, 그의 사업도 삶도 망가져갔다.

달성군 하빈면 약초농장을 찾은 시민들.

◆어성초 만나 기적적으로 통풍 극복=‘고기 비린내처럼 독한 냄새가 나는 풀’ 어성초(魚腥草)를 풀어 쓴 말이다. 한 지인의 소개로 만난 어성초는 그를 통풍에서 구해내며 삶과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기대반 포기반 심정으로 6개월쯤 진액을 마셨는데 진통이 조금씩 줄어들더군요. 이 정도만 해도 살 것 같았는데, 꾸준히 복용하면서 기적처럼 통풍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는 아예 밭 1,300㎡(400평)을 구입하고 어성초를 분양받아 경작하기 시작했다. 어성초는 상비약이 되었고, 먹고 남은 약재는 통풍으로 고생하는 이웃과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일이 잘 풀리려고 했는지 장사 운(運)도 따라 주었다. 한번은 어성초 진액을 미산농장유통센터에 납품 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환자들이 소문을 듣고 어성초를 찾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한번 약을 찾았던 사람들은 효과를 보고 대부분 재구매로 이어졌다.
약효와 시장성에 확신이 든 김 회장은 바로 달성군에 ‘농업법인’을 설립하고 본격 약초재배에 나섰다. 하빈에 있는 3만3000㎡(1만평)의 약초단지는 어성초 단일 농장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 그는 이곳에서 임상연구, 제품개발에 40억원을 투입하며 본격 약초 개발에 나섰다.
미산농장약초 효능이 입소문이 나면서 김 회장은 최근 공중파, 종편 TV 출연이 잦아졌다. 얼마 전 한 공중파에 ‘천연항암제 개똥쑥을 아시나요’가 방영되면서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다.
“전화벨이 얼마나 울리는지 업무를 못 볼 지경이었고, 홈페이지는 아예 다운 되어 버렸어요. 직원들은 주문, 택배, 포장작업을 하느라 며칠 밤샘을 해야 했습니다.”
사업이 탄력을 받자 김 회장은 어성초차, 효소, 분말, 삼백초, 개똥쑥 등 건강제품과 피부에 효과가 좋은 비누, 샴푸 등 생필품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최근에는 개똥쑥, 어성초, 삼백초를 고농축 해서 만든 ‘암뚝생칼국수’ ‘수제비’ ‘떡국’을 출시했다.

◆30년 넘게 이웃에 나눔 실천=여러 번 사업에 부침을 거듭했지만 그동안 김 회장은 부동산임대업, 유통업, 건강식품판매를 통해 어느 정도 재산을 일구었다. 노후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 되었고, 자녀들도 장성했으니 김 회장은 이제 적선(積善)과 사회 환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사실 김 회장의 봉사와 기부는 양말공장 때부터 해오던 일이다. 그는 라이온스클럽 임원을 20년, 로타리클럽 회장을 4년 정도 했다. 매년 1천~2천만원 기부를 했으니, 이 금액만도 4억~5억은 족히 된다.
그러나 이건 공식적, 대외적으로 드러난 기부고 김 회장이 숨은 선행은 이보다 몇 배는 더 많다. 김 회장은 지체장애인협회 대구서구지회와 매년 2,000~4,000만원을 기부하며 20년 동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 외 달성군지체장애인협회, 다사휠체어장애인협회에도 결연을 맺고 매년 온정을 전한다. 김 회장이 생색을 내고자하는 일이었다면 ‘아너스클럽’에 가입하고도 남았고, 고액기부자에 명단에 몇 번 이름을 올렸겠지만 그는 크게 내색하지 않고, 때론 익명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어성초 수확 장면.

◆고향에 김해 김씨 문중기념관 설립=‘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말라’는 소신과 함께 김 회장이 소중하게 여기는 일은 또 있다. 바로 고향 성주군 선남면에서 벌이는 문중기념사업이다. 그는 농장 내에 ‘김해김씨삼현파미산문중기념관’을 세웠다. 자신의 호 미산(微山)을 딴 이 기념관은 후손들에게 뿌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조상들의 가르침을 잊지 말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는 기념관을 설립한 뒤 재산 일부까지 문중 재산으로 이전시켰다.
“문중 기금의 도움을 받고 자란 후손들이 지역에 베푸는 삶을 이어간다면 이런 전통이 대대손손 이어지겠지요.”
앞으로 그는 기념관 근처에 어르신 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또 건물도 새로 지어 문중기념관과 연계해 청소년들 가훈(家訓), 뿌리찾기 등 인성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어성초와의 만남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생선 비린내 때문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자신과 만나 병도 고치고 사업도 일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장애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 꼼꼼하게 챙긴다.
“지금은 이들이 지금은 어성초처럼 사회적으로 외면 받고 있지만 이런 우울을 딛고 바로 서길 바랍니다. 어성초가 약점을 딛고 훌륭한 약재로 거듭 났 듯 말입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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