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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영남 전통시장] ⑯평화시장 닭똥집골목대구치맥축제의 본산, 지역 치킨산업에 결정적 기여
대구 치맥축제의 태동과 지역 치킨산업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는 ‘평화시장 닭똥집골목’.

고령 지산동 고분군, 경주 천마총에서 닭뼈가 출토되고 백제의 고배(高杯)속에서 계란껍질이 나온 것으로 보아 닭은 고대부터 인류의 가금(家禽)으로 자리 잡아온 것이 분명하다.
닭과 연관성 하면 대구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옛 지명인 달구벌은 ‘닭이 많은 벌판’에서 유래되었고(‘큰 언덕’ 뜻이라는 학설도 있음), 신라의 계림(鷄林)도 닭을 부족의 토템으로 널리 통용했다는 증거다. 이런 사실을 배경으로 대구에서 치맥페스티벌이 열린 것은 우연을 넘어 필연에 가깝다.
1960~70년대 칠곡, 왜관 등 대구근교에 양계산업이 활성화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대구엔 닭가공업이 발달했다. 이 시기 대구통닭, 멕시카나치킨, 교촌치킨, 땅땅치킨, 호식이두마리치킨, 별별치킨, 처갓집양념통닭, 스머프치킨 같은 업체들이 전국 프랜차이즈를 열어갔다.
대구에 양계산업이 붐을 이룰 때 생겨난 골목이 있다. 신암동에 있는 평화시장 닭똥집골목이다. 1972년에 골목이 생겼으니 벌써 50년이 다 돼간다. 대구 치킨산업의 뿌리이자, 치맥축제의 배경이 된 평화시장 똥집 골목을 다녀왔다.

◆똥집골목의 형성=경북대, 파티마병원, 동대구역, 동구청이 들어서면서 동구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신암동 일대는 축사와 논밭이 있던 대구의 변두리였다. 신천·신암동 일대에 차츰 주택가가 들어서며 상가가 형성되었고, 인구가 유입되며 당시 평화시장 앞에는 인력시장이 생겼다.
똥집골목은 바로 이 일용직근로자들을 배경으로 한 식당이었다. 도시 품팔이꾼들이 일자리가 있으면 일당을 떼어 목을 축이고, 일이 없는 날이면 외상술을 먹던 생계 현장이었던 것이다.
35년 동안 골목을 지켜온 정공순 씨는 자신의 ‘삼아통닭’이 1972년에 처음 문을 열고 자리를 잡으면서 점차 골목이 형성 되었다고 말한다.

한 때 50여곳 식당이 불야성을 이루던 골목은 이제 점포가 24곳으로 줄어들었다.


골목이 처음 들어섰을 때는 요리방법이 지금과 많이 달랐다고 한다. 정공순 씨는 “처음엔 똥집과 염통을 감자와 함께 요리해서 냈지만, 식감이 떨어지는 염통은 맛에 밀려 떨어져 나가고, 단맛이 없는 감자는 고구마로 대체돼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조리 방식도 요즘과 같은 튀김이 아니고 프라이팬에 볶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누군가에 의해 닭요리가 튀겨 지면서 튀김이 대세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고소한 맛과 쫄깃한 식감이 젊은층 입맛에 맞았던 것이다. 이후 누군가는 튀김가루를 입히고, 어느 가게는 향신료를 더하며 자기 점포만의 별미를 만들어 갔다.
지금 골목의 주류는 ‘삼아통닭’ ‘똥집대통령’이지만 가게마다 특별한 맛의 차이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원조가게에서 요리 기술을 배운 주방장이 이 가게 저 가게로 뻗어나가 맛이 대중화, 평준화 된 것이다.
‘똥집대통령’의 정화섭 대표는 “어느 집이 우리 맛을 훔쳤느니, 원조집 맛을 베꼈느니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만약 원조집이 손님을 독식 했다면 골목이 이렇게 번창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골목의 가장 큰 특징은 저렴한 가격이다. 물가가 오른 지금도 1인당 만원이면 술과 닭요리를 맘껏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주 손님층도 ‘착한 가격’을 찾는 대학생들이 많다.
가격이 워낙 싸다 보니 옛날에는 고등학생 출입도 잦았다. 그때는 주민증 검사도 안할 때고, 간식 먹으러 온 까까머리 녀석들이 술 한 잔씩 하는 일탈(?)을 눈감아 주었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그때 말썽꾸러기들이 나이가 들어 자녀들과 함께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주인들로서는 대를 이어가며 찾아오는 단골들의 ‘충성’이 고맙기만 하다.
이 골목에서 25년 넘게 서빙을 했다는 김금옥 씨는 얼마 전에 유럽에서 왔다는 한 손님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20년 만에 한국에 온 교포는 바쁜 일정 중에 일부러 이 골목을 찾았다는 것. 혼자서 3인분을 먹고 다시 3인분을 포장해 갔다는 그 노신사, 그가 먹은 것은 한 점 닭요리가 아니라 젊은 시절 한 조각 추억이었을 것이다.

닭똥집 모둠세트. 1인당 1만원이면 닭요리와 술을 실컷 먹을 수 있다.

◆평화시장과 결별=최근 닭똥집 골목은 평화시장과 결별했다. 두 곳은 본래 단일 시장으로 존재했으나 최근 시장과 골목이 행정적으로 분리가 된 것이다.
50년 명맥을 이어온 ‘평화시장 닭똥집골목’은 ‘대구 닭똥집 골목’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물론 상가끼리 행정적으로 구분한다는 것이지 시장을 물리적으로 구획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11일 취재를 위해 시장골목을 둘러보니 평화시장 안쪽엔 빈 점포들이 상당 수 있었다. 상가의 슬럼화는 닭똥집 골목도 예외는 아니었다. 벌써 곳곳에 ‘임대’ ‘점포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한때 50여곳 식당이 불야성을 이루던 이 골목은 이제 점포가 24곳으로 줄어든 상태다. 물론 온 국민을 격리하고 비대면으로 몰고 간 코로나 19가 가장 큰 주범이다.
코로나 블루가 끝나는 날, 이 골목에서 취객들의 노래소리와 젊은이들의 수다소리가 다시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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