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화전동에서 대를 이어 수제화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체크제화 정승규 사장. 발이 불편한 분들이 ‘건강한 걸음’을 되찾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한상갑 기자

‘나 만을 위한 단 하나의 신발’, ‘불편한 내발을 위한 보장구(補裝具)’.
수제화는 두 개념의 간극에서 존재감을 갖는다. 1990년대 이전에 신발은, 특히 구두는 대부분 맞춤이었다. 컬러, 재질과 디자인을 직접 선택해 나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기성복, 기성화 바람이 불면서 수제화 시장은 거의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침체하던 수제화 시장이 향촌동, 화전동 일대에서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일부는 올드세대들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면서, 일부는 다리가 불편한 분들을 위한 기능성 신발을 제작하면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중앙대로 ‘체크제화’의 정승규 사장은 화전동 일대에서 20년째 수제화 길을 걷고 있다. 수제화 경력 20년이면 대가(大家), 마스터 수준은 아니지만 그의 가계 내력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바로 향촌동 수제화의 산증인 조문제 씨가 그 외삼촌이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맞춤신발 제작과 보급에 나서고 있는 체크제화 정승규 사장을 만나 보았다.

◆‘분홍신’ 계보 잇는 수제화 명가=50~70대들에게 ‘분홍신’은 아련한 향수로 다가온다. 1960~70년대 당시 향촌동 일대에서 분홍신과 칠성구두는 대구 맞춤 구두의 양대 산맥이었다. 체크제화의 창업주인 조문제 대표는 바로 분홍신의 디자인, 패턴 출신. 당시 잘 나가던 연예스타 문희, 윤정희, 엄앵란 씨 등이 이곳에 와서 구두를 맞췄다. 관가에서도 도지사, 시장, 군수들 상당수가 한 번씩은 분홍신을 거쳐갔다.
당시 구두 기술자들은 퇴근 때마다 도시락 가득 돈을 담아 갈 정도로 인기 직종이었다. 웬만한 구두점엔 구두제작 목형(木型)틀과 손님의 발을 잰 계량지가 몇 박스씩 쌓였을 정도.
서울, 대구, 부산과 함께 트로이카 시대를 열어갔던 맞춤 구두는 1990년대 들어 일거에 사양길로 접어들게 된다. 대형마트, 아울렛, 인터넷 시장이 열리면서 수제화 시장이 기성화 시장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고교를  졸업한 정승규 씨가 대학 입학 전 외삼촌(조문제) 가게 견습공으로 들어온 건 바로 그 시점. 수제화가 기성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이후 정 사장은 삼촌 밑에서 디자인, 제작은 물론 영업까지 모든 과정을 배우게 된다. 체크제화는 사업이 안정되자 화전동에 점포를 열었다. 3층에 공장, 2층에 사무실, 1층에 매장을 겸해 원스톱으로 모든 공정이 이루어진다. 현재 체크제화는 대구백화점, 대백프라점에 수제화 전문점을 직영하고 있으며 향촌동, 방촌동에도 매장을 두고 있다.

화전동 체크제화 매장 내부 모습.

◆발 불편한 분들을 위한 맞춤신발 제작=요즘 수제화 점을 찾는 손님은 크게 세 부류다. 나만의 개성을 찾아 맞춤 신발을 고집하는 마니아들, 옛 디자인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어르신들, 그리고 발이 불편해 특별한 기능·장치가 필요한 분들이다.
이중 정 사장이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 발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맞춤 신발이다. 선천적 혹은 사고로 발에 변형이 오면 보통 기성화로는 처리가 안되기 때문이다. 키가 작은 분들을 위한 키높이구두, 좌우발 길이가 다른 분들 위한 기능성 신발은 기본이고, 선천적 장애로 발에 변형이 온 분들을 위한 기능성 신발을 제작한다. 보통 기성화는 220㎝부터 사이즈가 시작되지만 이곳에서는 180~190㎝도 가능하다. 정 사장이 현장에서 자주 만나는 손님은 무지외반증(拇趾外反症)이나 또는 평발이나 짝발로 보행에 불편을 겪는 분들이다.
“한 번은 무지외반증이 심한 어르신이 오셨어요. 향촌동을 몇 군데 다녔는데도 항상 발이 불편하다며 상담을 해왔습니다. 손님의 고충을 충분히 듣고 일단 통증을 줄이는 설계에 들어갔습니다. 안감 소재를 쿠션감이 좋게 하고 뼈돌출 선(線)을 따라 공간을 충분히 주다 보니 디자인이 다소 불만스럽게 나왔습니다. ‘신발 모양이 뭐 이래’ 하던 어르신이 신발을 신어보고는 1초도 안 돼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거였어요.”
그 어르신은 그날로 단골이 되었고 신발을 몇 차례 더 만들면서 지금은 디자인까지 만족하는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보통 단골들이 신체가 불편하신 분들이 많아 이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신발 이야기 외 자연스럽게 인생 상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 사장은 “바로 그 발이 손님이 살아온 이력이고, 현재의 고충이기 때문에 기술로써 그 고충을 해결해 주는 것이 저희 수선사의 임무”라고 말한다.
조문제 대표도 “이쪽 분야는 기술만 있어도 안되고 손님과 소통능력이나 정형(定型), 골격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며 “대화 속에서 손님이 가장 불편해 하는 부분을 캐치해 신발에 반영을 해야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면서 발은 인체에 체중을 지탱해야 하는 ‘고역’을 맡게 되었다. 인간이 평생 걷는 걸음은 1억 2천만 보 정도. 누구에게나 일상인 보행이 누구에게는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 이분들에게 ‘건강한 걸음’을 선물 하는 사람들, 바로 수제화골목의 사람들이 아닐까.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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