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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영남 전통시장] ⑳경북 영양시장내륙도시 안동-수산물 집산지 영해 중간서 한 때 상업도시 번창
조선 중기엔 경상도 전역의 봇짐장수들이 모여 들었다는 영양시장이지만 지금은 장날 외에는 인적이 드물다. 영양공설시장에서 장을 보는 주민들.

‘마을 구멍가게에서 오란씨를 사서 마시고 보니 유통 기한이 4년이나 지난 것이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한 영양군 오지탐험기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지 BYC(봉화, 영양, 청송) 중 하나인 영양군. 한때 인구 7만의 경북북부 중급도시였지만 지금은 자치단체 소멸을 얘기할 때 항상 맨 위에 오르내리곤 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등 30년 넘게 TK 정권이 계속 되었지만 이렇다할 산업시설 하나 유치하지 못했다. 인구는 수도권이나 대도시로 빠져나가 지금은 웬만한 읍 단위 보다도 인구가 적다.
올해 영양군의 총인구는 16,844명으로 1973년의 70,791명의 24% 수준이다. 군 전체가 낙도(落島)로 구성된 옹진군 보다 인구가 적고, 울릉도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본토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자치단체다. 이런 영양군의 흥망성쇠는 전통시장의 쇠락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때 5일장이 5곳이나 될 정도로 상권이 활성화 되었지만 지금은 영양읍의 공설시장 한 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안동과 영해 중간에서 물류 거점=영양군은 본래 고구려에 소속되어 있었고 후에 경주 세력의 팽창 시기에 신라에 병합되면서 고은현(古隱縣)이 되었다. 1179년 고려 명종 9년에 영양현을 신설 하였는데 이때부터 영양은 영남의 대도시인 안동, 상주와 수산물의 집산지였던 영해의 중간에서 상업도시, 교통도시로 성장했다.

조선 중기에는 현재의 군청 자리에 동헌(東軒)이 들어서면서 동부리와 서부리가 영양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안동에 인접해 있었던 서부리엔 장시(場市)가 번성해 영해-창수령을 넘어 오는 길목에서 생선장이 크게 열렸다. 이 시장은 300년간 이어오며 안동과 봉화, 영해를 있는 길목 구실을 했다.

1830년대 무렵엔 영양읍장(邑場)과 어염장(漁鹽場)이 번성해 내륙의 농산물과 동해의 소금, 해산물이 주로 거래되었다. 이런 상업도시로서 위상은 일제강점기에도 계속 유지되었다. 1928년 영양군에는 청기, 입암, 수비, 석보장 등 정기시장이 5곳이나 열렸고 해방 후에도 계속 번창해 시장이 최대 6곳에 이르렀다.

그러나 근대 이후 경상도에서 안동, 상주에 실렸던 무게 중심이 대구로 옮겨오면서 낙후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 이후 어업이 근대화 되고 동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영양전통시장의 위상도 급속히 하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6년 청기면의 당동장이 전(廛)을 거두고 이어 입암장, 수비장, 석보장이 차례로 문을 닫으면서 현재는 영양공설시장 한 곳만 남게 되었다.

영양산나물축제 현장에서 관광객들이 산나물을 캐는 모습. 영양군 제공

◆대표적 특산물 산나물, 고추=영양은 임야가 80%를 차지할 정도로 대표적인 산간 도시이다. 기온도 낮고 강수량도 적어 영농 조건이 매우 불리하다. 그러나 심한 기복을 보이는 지형과 유달리 큰 일교차는 고추 생육의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영양 고추는 매운맛이 적당하고 선명하며 과피(果皮)가 두터워 건조했을 때 고춧가루가 많이 나온다. 8월 초순이면 ‘영양의 산천이 붉게 보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장 곳곳에서는 고추가 널려있다.

신발가게를 하는 조기승 상인회장은 “신발 가게는 용돈벌이 밖에 안 되고 가을 한철 고추를 팔아 생업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시장에서 고추 다음으로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산나물. 영양에서 산나물이 특화된 데는 산간지방이라는 환경적인 요인과 함께 전통시대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 애환도 서려있다. 옛 영양 속담에 ‘영양 여인들은 산에 풀어 놓아도 한 바구니씩 먹을 것을 뜯어 나른다’는 말이 나온다.

봄에 대량으로 나온 산나물을 물에 살짝 데쳐 말리면 겨우내 비타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시장 안에도 흡사 무청, 씨래기 같은 산나물들이 가게마다 발처럼 진열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어수리 나물이다. 곰취, 어수리, 나물취 등 웰빙식 식재료로 인기를 얻고 있는 산나물은 맛도 맛이지만 가격이 저렴해 너도 나도 지갑을 열게 된다. 

◆영양군 시장 활성화 대책 고민=조선 중기엔 경상도 전역의 봇짐장수들이 장날마다 모여 들었다는 영양시장. 지금은 장날(4, 9일) 외에는 장에 매기(買氣)가 서지 않는다.

조기승 상인회장은 “상인도 70, 80대이고, 손님도 70, 80대라 시장이 활력을 잃은지 오래”라며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장에 들어와야 장에 활력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발걸음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각계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영양군은 작년부터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장보기 배송서비스’를 시행 하고 있다. 주민이 상인회에 전화를 하면 시장 도우미가 물건을 집에까지 배달해 주는 시스템이다. 또 코로나 19사태로 산나물축제가 취소되자 영양군은 ‘전국민 산나물보내기’ 캠페인을 벌여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기도 했다.

영양은 전국 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4차선도로가 없는 도시다. 이런 불편은 오히려 영양을 ‘청정 관광지’로 돋보이게 한다. 시장에서 10여분 거리에 선바위관광단지, 고추홍보전시관, 분재수석, 야생화전시관이 있다. 또 조지훈, 오일도 시인의 생가, 이문열의 광산문학관을 비롯해 장씨의 음식디미방 등 인문학 유산이 풍부해 현대문학과 전통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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