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청송은 읍(邑)보다 큰 도호부가 설치될 정도 경북 북부의 군사, 행정, 경제의 요충지였다.

소설가 김주영의 작품 화두는 유랑(流浪)이다. 그의 작품 ‘활빈도’ ‘아라리 난장’ ‘화척’ ‘객주’가 모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민중이 등장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길 위의 작가’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그의 대표작 ‘객주’도 떠돌이 장꾼 보부상을 내세운 소설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청송 진보장이다.  이 조그만 장터를 배경으로 작가는 개화기 열강의 경제적 침탈, 봉건 권력의 와해와 신분제의 개편, 천민자본의 형성 등 역사적 서사(敍事)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소설가 김주영의 시선을 따라 청송 진보객주장으로 떠나 보자.

◆조선후기 내륙-동해 잇던 교통 요지=청송은 읍(邑)보다 큰 도호부가 설치될 정도 경북 북부의 군사, 행정, 경제의 요충지였다. 조선 초기 인구 1천명 남짓한 속현(屬縣)급 청송이 대구, 안동, 김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세조의 공이 크다. 세조는 어머니 소헌왕후(심씨)의 고향 청송을 특별히 예우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청송군 이주현 공보담당은 “청송장은 1459년 무렵부터 관리, 상인들의 숙박시설인 객사(客舍)와 시장이 운영될 정도로 지역 경제의 중심이었다”며 “이런 흐름은 도호부가 폐지되는 1895년까지 이어졌으니 430년 이상 정기시장이 운영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청송은 영양, 안동, 영덕을 연결하는 내륙의 교통 요지였다. 여기에 모인 양곡, 약재, 채소, 과일들은 다시 죽변, 영덕, 영해로 넘어가 해산물로 바꿔졌다. 
소설 ‘객주’ 에도 등장하는 십이령은 청송 부남장, 진보장의 보부상들이 울진, 죽변, 흥부장으로 소금, 어물, 미역을 장만하러 가는 길이었다. 반대로 동해안의 영덕, 영해, 울진의 장꾼들은 해산물을 잔뜩 지고 영(嶺)을 넘어와서는 약초, 고추, 곡식, 포목을 사갔다. 
동해 영덕와 청송을 잇던 황장재도 장꾼들의 발길이 잦던 곳이다. 영덕과 안동을 오가던 간잽이들도 진보 월전리 주막에서 하루를 묵고 여독을 풀었다.

경북북부 교통 상업 요충지였던 진보시장 지금은 38곳의 점포가 시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도 장날이면 청송, 영양 등지에서 활동하는 노점 트럭이 50여대가 난장을 열고, 근처 마을의 촌로들 200여명이 행상을 펼친다.

◆진보장터 추억이 소설 ‘객주’의 모티프=김주영은 자신이 살던 진보를 ‘우물 속’으로 비유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산뿐인 마을을 그렇게 표현했다.
갇힌 공간이었던 마을이 가끔씩 세상과 연결되곤 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일장이었다. 작가는 장날이면 수업도 빼먹고 장터로 달려와 장꾼들의 흥정을 지켜보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유년시절 장터에서 본 군상들은 훗날 ‘객주’의 인물로 되살아났다.
이웃의 아저씨가 보부상 천봉삼으로, 마을의 과부는 조소사가 되고 청송의 거상은 신석주가 되어 조선 후기 민중 사회를 섬세하게 펼쳐나갔다. 작가는 한말 평민들이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신분제가 와해되고, 그로 인해 야기 되는 사회 현상, 계급 갈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청송, 상주, 안동 등 상인들과 부패 관리의 정치적 야합이 세곡(稅穀) 부정으로 연결되고, 세곡 횡령이 다시 선혜청 양곡(糧穀) 비리로 이어져 임오군란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편의 대하드라마다. 
한때 경북북부의 교통, 상업 요충지였던 진보시장 지금은 4,323㎡ 면적에 38곳의 점포가 겨우 시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진보시장의 오복근 씨는 "그래도 장날(3, 8)일이면 청송, 영양 등지에서 활동하는 노점 트럭이 50여대가 난장을 열고, 근처 마을의 촌로들 200여명이 행상을 펼쳐 제법 장날 분위기가 난다"고 말한다.
근래 진보시장은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선정돼 특성화사업을 완료했다. 시장 골목 김주영이 살던 집 일대는 ‘객주문학마을’이 들어섰고 객주문학관광타운, 김주영 생가, 시장을 잇는 관광벨트는 새 명소로 부상했다.
조선시대 도호부에서 한말 보부상의 거점으로 성장해온 진보시장. 그러나 지금은 30여호 상가가 겨우 남아 전통시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천봉삼이 등짐을 지고 넘던 십이령, 황장재는 길이 뚫리고, 옛 주막의 정취는 사라졌지만 ‘객주’를 기리는 문학관, 테마공원이 들어서 문학과 역사의 향기를 전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할 듯하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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