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부시장은 1973년 설립 당시 점포만 504곳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를 자랑했다. 한 때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 3대 시장으로 꼽힐 정도 사람들이 붐볐지만 1990년대 유통시장 개방에 따른 후폭풍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한상갑 기자

전통시장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한 차별화 전략 마련에 분주하다. 시설 현대화, 시장 업그레이드(골목형시장-관광형시장-지역 선도형시장), 시장에 스토리텔링 입히기, 무료 배달 서비스 등 각종 아이디어들이 쏟아진다.
참신한 기획 하나가 시장 유동인구를 늘리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유통점과 경쟁하던 도심의 한 전통시장은 ‘생활밀착형 시장’으로 변신해 대형마트를 몰아내기도 했다.
전통시장에 프랜차이즈점 푸드점들을 끌어들여 차별화를 시도한 곳이 있다. 대구 비산동 서부시장이다. 서부시장 ‘오미가미거리’엔 모두 60여개의 프랜차이즈점이 입주해 있다. 치킨, 피자, 해물, 족발집부터 이자카야, 막걸리, 맥주 집도 있다.
아무리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도 골목에 들어오면 메뉴로 인한 갈등이 없다고 한다. 호텔 뷔페급 메뉴를 보유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술꾼들은 2차, 3차를 원스톱으로 끝낼 수 있어 동선(動線) 낭비가 없다. 안주와 술과 맛집의 즐거움이 한 곳에, 서부시장으로 떠나 보자. 

◆1970년대 한 때 점포 500여곳 규모 자랑=서부시장의 역사는 4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는 골목마다 시장이 들었을 정도로 전통시장의 전성기였다. 바로 인근에 ‘서문시장’이라는 거대 시장이 있었음에도 직선거리 1km 거리에 중규모 시장이 들어선 건 이 지역 자체만으로 수요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대구 3공단이 인근에 있어 근로자들의 구매력이 컸고 비산 1~7동에 이르는 거대 동(洞)에 인구만 5만 명이 넘어 자체로 시장이 돌아갈 수 있었다. 1973년 설립 당시엔 주상복합건물 16개 동에 점포만 504곳에 이를 정도로 매머드급 이었다는 사실이 이 일을 반영한다. 한 때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 3대 시장으로 꼽힐 정도 사람들이 붐볐지만 서부시장 역시 1990년대 유통시장 개방에 따른 후폭풍을 피해갈 수 없었다.
골목에 대형마트,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손님들은 처음 접하는 새로운 유통공간, 쇼핑문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차츰 활력을 잃기 시작한 서부시장은 2000년대 들어서는 야채, 과일, 반찬, 곡식 등 생필품만 파는 영세형 시장으로 쇠락해 갔고, 150여 점포만 겨우 남아 시장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구시, 서구청, 상인회도 몇 번에 걸쳐 시장 재정비 사업에 나섰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방치되어 왔다. 

◆슬럼화 위기 ‘프랜차이즈거리’로 극복=벽에 금이 가고, 페인트가 벗겨지며 슬럼화가 진행되자 대구시와 서구청이 손을 걷고 나섰다. 140m에 이르는 거리를 프랜차이즈 직영점으로 만들기로 하고 프랜차이즈협회에 협조공문을 보냈다. 호식이 두마리치킨 등 대구경북을 연고로 한 외식업체들이 ‘우리가 먹거리 명소로 만들겠다’며 적극 나섰다.
서구청은 건물주를 찾아가 점포를 저렴하게 임대 하도록 설득했고, 대구시는 골목길을 포장하고 주차, 교통, 가로 인프라를 새롭게 꾸몄다.
점포주들도 욕심을 내려놓고 5년 계약에 월 임대료 15만 원에 가게를 내놓았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자비를 들여 점포 리모델링에 나섰다.
2015년 5월 문을 열었을 당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프랜차이즈거리라는 특색 있는 테마와 다양한 메뉴로 소문이 나면서 시장 거리는 성황을 이루었다. 상인회 안진철 회장은 “당시는 점포마다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져 골목이 활기에 넘쳤다”고 말했다.
덕분에 동네 부동산 경기도 살아나 서부시장 요지는 한 때 점포호가가 2~3배씩 뛰기도 했다.
취재를 위해 지난 주 시장을 찾았을 때도 점포마다 조금씩 손님들이 있었다. 안 회장은 “다른 곳은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절벽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우리 골목은 조금씩 손님들이 들어와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대구 비산동 서부시장은 전통시장에 프랜차이즈점 푸드점들을 끌어들여 차별화를 시도한 곳으로 유명하다. 서부시장 ‘오미가미거리’엔 모두 60여개의 프랜차이즈점이 입주해 있다. 서구청 제공

◆최근 젊은층 유입, 신 메뉴 등장으로 활력=시장 특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도 노출되었다. 프랜차이즈 거리가 활성화에는 성공했지만 그 ‘과실’이 바로 옆 전통시장에 미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오히려 치킨, 분식, 횟집 등 메뉴가 겹치는 시장 내 점포는 직격탄을 맞았다. 시장에 한 치킨집은 ‘특화거리에 치킨집이 열곳 정도 생기면서 시장 쪽은 매출이 70% 정도 줄었다’고 말한다. 특화거리 점주들이 시장에 식자재를 이용한다든지 하는 상생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접근이 거의 없어 상인들간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인프라 투자도 너무 특화거리 쪽에 집중돼 형평성을 잃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로 취재 중 시장을 돌아보니 어두컴컴한 조명에 건물이 노후화돼 활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2018년 4월 문을 연 ‘서부시장 열정(情) 사단 청년마켓’ 도 텅 비어 활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청년들은 국·시비로 2억 9천만 원을 지원받고 창업교육과 맞춤형 컨설팅까지 받았지만 대부분 1년을 못 버티고 시장을 떠났다.
상인회의 관계자는 애초에 위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너무 외진 곳에 배치돼 시민들이 주목과 관심을 끌지 못했고 골목 성격이 주변 상권과 조화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낮다 밤이 더 좋은 거리’를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한 서부시장 프랜차이즈 골목은 일단 외관상 성공을 거든 것으로 보인다. 개점 후 경기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긴 했지만 최근 나름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인회는 2017년 ‘프랜차이즈거리’라는 지명 대신 ‘오味가味거리’ 골목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상인회는 지난해 ‘골목형 시장 사업’에 선정 된 후 지금은 ‘관광형 시장사업’ 지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업에 선정 되면 시설 개선 등 인프라 개선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상인들은 결국 점포의 자구 노력과 메뉴 차별화에서 승부가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상인회 안진철 회장은 “최근 거리에 맛집들이 많이 생겨나고 젊은 친구들의 참신한 기획이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며 “코로나 19 사태가 잠잠 해지고 신메뉴들이 많이 들어오면 점차 나아질 것” 이라고 전망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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