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봉화는 ‘태백산로’를 따라 펼쳐진 광주장, 곤지암장, 이천장, 장호원장, 충주장, 단양장 등과 활발한 교류를 펼쳤다. 현재는 인구 3만여명 도시로 쇠락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사진은 봉화공설시장 모습.

경북 북부 3대 오지로 불리는 BYC(봉화, 영양, 청송)는 전북의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과 비교되며 낙후지의 설움을 공유하고 있다. 한때 인구 12만 명을 웃돌던 봉화는 주력 산업이었던 광산 쇠퇴와 산업화에 따른 이농으로 지금은 3만2천 명 남짓한 소도시로 후퇴했다.
지금도 ‘곧 없어질 지자체’를 논할 때 맨 앞 순위에 랭크되며, 이젠 도시의 소멸을 걱정할 처지가 되었다.
‘우울한 도시’ 봉화의 화려한 봄날은 없었을까. 그래도 강원과 맞닿은 경북 최오지가 경북 23개 시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건 자체로 자랑스런 일이 아닐까.
올해로 군(郡) 승격 126년을 맞는 봉화군은 청량산, 주왕산 등 관광자원과 봉화한약우, 봉화송이, 사과 등 도시 브랜드를 앞세워 재도약 의지를 다지고 있다. ‘웅군’(雄郡) 도약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현장, 봉화공설시장을 돌아봤다.

◆‘태백산사고’ 봉화 유치 후 서울과 교통로 뚫려=봉화와 문명과의 만남, 그 출발은 언제부터였을까. 뚜렷한 도시 정체성 없이 속현(屬縣)과 편입을 거듭해온 봉화가 도시 이름을 뚜렷하게 세상에 각인시킨 건 조선 후기 사고(史庫)를 태백산에 유치하면서부터다.
임진왜란 때 실록이 모두 불타 버리자 조선왕조는 전국 4곳에 실록을 보관하기 위한 사고를 세웠는데 그중 한 곳이 봉화에 세워진 것이다. 
당시 사고의 유치는 지금으로 치면 국제박람회를 유치한 것과 비교되는 사건이었다. 현재도 국제축제를 유치하면 도시발전을 30년쯤 앞당긴다고 한다. 행사장 건설과 함께 도시의 도로, 시가 등 SOC가 일제히 정비되기 때문이다.
1606년(선조 39년) 조선 조정은 ‘태백산로’라 불리던 ‘봉화로’ 토목공사에 나선다. 사고 건설 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길 닦기였다.
광주(경기도)-이천-충주를 지나 죽령-풍기-봉화로 이어지는 이 도로는 거리로만 오백리(약 200km)에 달했다. 물론 당시도 죽령까지는 영남대로가 연결되어 있었고, 한강·남한강 수계와도 연결되었으니 실제 공사 구간은 그렇게 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태백산로, 봉화로가 의미를 갖는 것은, 이 길이 뚫리면서 한양과 봉화가 원스텝으로 통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사고는 일반 관청과 달리 왕조의 종묘처럼 신성 공간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봉화의 도시 위상은 급속히 올라갈 수 있었다.

◆1960~70년대엔 금광, 텅스텐 광산으로 번창=봉화로는 노선이 직선에 가깝고 기복이 적어 최상의 교통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이 길은 죽령을 넘어 경상도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송파진 등 한강 유역 상인들에게 매우 요긴했다.
봉화로 개통 이후 강원도와 접경한 산악 오지였던 봉화는 조선후기 이후 군(郡)으로 당당히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시장상인회 김석만 총무는 “이 태백산로 구간에는 광주장, 곤지암장, 이천장, 장호원장, 충주장, 단양장 등이 열렸고 봉화와 이들 장터와는 교류가 활발했다”며 “충주의 조창(漕倉)엔 한강을 거슬러 온 생선배와 소금배가 정박했고, 동해안에서 넘어온 생선과 봉화 태백산의 광물, 농산물이 모여들었다”고 말했다.
현대에 들어와 봉화는 또다시 산업도시로 도약하게 된다. 이번엔 광산이었다. 구한말부터 봉화는 무연탄, 금광, 중석으로 유명한 광산 도시였다.
춘양면 우구치리에는 1925년 금광 개발을 위해 뚫어놓은 금정수도(터널)이 아직도 남아 있다. 금정광산의 흔적이다. 1960~70년대 금광이 한창일 때에는 광산 직원만 3천명에, 상주인구가 1만2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마을에 여관과 극장이 있었고, 상설시장 열렸으며, 색주가는 밤새 불야성을 이루었다.
소천면 옥방광산에서 생산되는 백중석도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다. 1950년대는 연간 400톤 이상 생산되었으며 해외에도 소문이 나 일본, 독일로 수출되었다.

봉화시장엔 지금도 130여개 점포가 성업 중이다. 2, 7일 장날에는 근처에 떠돌이상인과 노인들이 몰려들어 제법 장날 분위기가 난다. 사진은 코로나 19 전 시장 모습. 봉화군 제공

◆1980년 봉화시장 설립, 옛 전통 이어가=북부지역에서 가장 큰 상권을 형성하던 봉화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은 광산들이 연달아 문을 닫으면서부터. 더욱이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며 1966년 12만 명이었던 인구는 1988년에 9만7,000명, 2005년 3만2,000여명으로 줄었다.
70%가 넘는 인구감소를 겪으며 도시의 활력과 역동성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봉화 르네상스’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1980년 봉화읍 내성리에 세워진 봉화공설시장은 아직도 옛 영화를 간직한 채 재래시장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개장 당시만 해도 봉화장은 영월과 삼척, 울진 등에서 장을 보러 올만큼 장세를 떨쳐 ‘들락날락 봉화장’이라는 유행어가 생기기도 했다. 지금도 130여개 점포가 성업 중이고 장날에는 근처에 떠돌이상인과 노인들이 몰려들어 제법 장날 분위기가 난다. 
봉화군 공보팀의 문미리 씨는 “평소에 썰렁하던 시장도 장날(2, 7일)에는 유동인구가 몇 배나 늘어 제법 장터 분위기가 난다”며 “철 따라 고추, 참깨, 수박, 잡곡류 등 농산물과 생활용품들이 주로 거래된다”고 말했다.
코로나 19가 모든 걸 거둬 가버린 요즘은 그나마 찾아오던 시민, 관광객의 발길도 막아버렸다. 상인회 김석만 총무는 “요즘은 오후 9시만 되면 대부분 상가는 철시하고 도시에 정적만이 흐른다”며 “마치 옛날 읍면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공민왕의 피난처로, 태백산 사고지로, 광산도시로, 위기 때마다 변신을 거듭하며 도시 발전을 이끌었던 봉화. 이 우울 속에서 봉화는 또 어떤 카드로 반전을 준비하고 있을까.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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