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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경북 전통시장] (15)고령대가야시장한때 낙동강에 세곡선, 소금배 북적... 지금은 오일장 명맥만 유지
한 때 고대 고령은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국제무역의 한 축이었고, 근대에는 세곡선, 소금배가 붐비던 낙동강 유통, 물류의 요충지였다. 사진은 고령대가야시장. 고령군 제공

지금은 한적한 농촌도시, 문화유적 도시로 비켜서 있지만, 고대 고령은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국제무역의 한 축이었다. 근대에는 세곡선, 장삿배가 낙동강 나루를 오가며 영남내륙 조운(漕運)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다.

5세기 대가야는 중국 남제(南齊)에 사신을 파견해 ‘보국장군본국왕’(輔國將軍本國王)이라는 작호를 받았을 정도로 국제도시의 위상을 갖추고 있었고, 일본에 수출된 가야의 철은 화폐처럼 쓰이며 최고 교환가치로 통용되었다.

당시 대가야 경제, 통상의 지리적 배경은 낙동강이었다. 고대 낙동강은 남해-일본-백제-중국을 연결하는 무역로의 시작이었고, 근대 낙동강은 대구경북의 물자와 수송을 담당하는 영남 유통, 물류의 핵심이었다.

고대-근대 물류 유통의 중심으로 기능했던 강(江)은 산업화 이후 철도, 고속도로 등 육로로 대체되면서 설자리를 잃게 되었다. 낙동강의 쇠락은 강변도시 급속한 위축을 불러왔다. 대표적인 곳이 고령이다. 1966년 인구 7만6000을 자랑하던 고령은 현재 3만여 명으로 위축되며 자치단체 소멸을 걱정할 처지가 되었다. 대가야의 영화, 낙동강 번영의 흔적이 서려 있는 고령 대가야시장으로 떠나 보자. 

◆고대 대가야엔 낙동강-남해-일본-중국 교역로=1992년 부안 변산반도 ‘죽막동 유적’을 발굴하던 연구팀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가야토기 때문이었다.

부안은 백제의 한복판인데 가야토기가 왜 이렇게 많을까. 의문은 금세 풀렸다. 4~5세기 가야와 백제는 우호관계를 유지했고, 이런 선린(善隣)을 기반으로 남해-백제-일본-중국의 해상교역을 공유 했던 것이다.

이 항로를 따라 가야의 철이 일본으로, 일본의 해산물이 남해안으로 들어왔다. 고대 4세기 무렵 흥했던 이 해상로는 신라에 의해 삼국통일이 이루어지면서 아쉽게 닫히고 말았다.

역사 속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낙동강 수로는 조선시대 들어와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된다. 대구에서 고령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물길은 조선시대 20여 개의 나루터가 들어설 정도 수운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특히 고령군 개포나루, 사문진나루는 근대 낙동강 물류에 큰 획을 그은 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시대 이들 나루엔 세곡선이 수없이 드나들었다. 고령나루가 한창 번창할 때는 조운선과 소금배, 장삿배들이 2~3겹으로 정박할 정도였고 이들 세운(稅運)과 상품을 저장하기 위한 큰 창고들이 들어섰을 정도였다.

사문진, 개포나루에 들어온 상품들은 보부상들에 의해 상인, 소비자들에게 옮겨졌다. 당시 17개 나루에서 활동하던 보부상들의 규모는 상당했고 나중에 ‘고령 상무사’(高靈商務社)라는 전국 단위 상단(商團)으로 발전했다.

고령상무사는 고령장을 중심으로 기와, 도자기, 해산물 등을 전국으로 유통시켰다. 좌사계, 우사계로 분파될 정도로 세를 형성했던 고령상무사는 일제 상권 침탈에 따라 점차 쇠락해갔다.

조선 초기부터 장시가 들어서 500년 넘게 시장 전통이 이어지고 있지만 고령군 역시 산업화시대 농촌인구 감소와 유통구조의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뒷고기 전문점 '가는날이 장날'.

◆한때 읍면마다 섰던 오일장 대부분 폐지=현재 고령대가야시장은 260여 곳의 상설점포와 노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때 읍내장, 성산시장, 덕곡시장, 꽃질시장, 다산시장, 도진시장 등을 거느리며 번창했던 시장들은 현재 대가야시장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시장 상인 이복연 씨는 “대가야시장의 전신인 읍내시장은 한때 인근 도시에서 장꾼들이 몰려들어 보행이 힘들 정도로 붐볐지만, 지금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낡고 노후화된 건물, 부족한 구색, 상인들의 고령화도 시장 침체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런 우울을 떨쳐버리기 위한 시장상인들의 ‘반격’도 만만찮다. 효율성과 편의성만 중시된 대형마켓, 온라인 시장에 맞서 나름의 전략으로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시장상인회 김종호 회장은 “시장은 단순한 상품거래를 넘어 삶의 이야기와 정을 공유하는 ‘관계’의 장소”라며 “시장에서 우리 고객들과 나누는 친밀도와 소통력은 대형 유통업체에서는 흉내조차 못 낼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할매국수집’의 대표 메뉴 수구레국밥. 한상갑 기자

◆수구레국밥, 뒷고기, 고로케 등 맛집 소문=대가야시장의 대표 맛집은 ‘고령할매국수집’이다. 대표 메뉴는 ‘수구레국밥’. 고령할매국수집의 역사는 무려 73년. 처음 문을 연 최순덕 할머니는 은퇴하고 지금은 며느리인 이복연 씨가 23년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고령은 우시장(고령가축시장)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고령 할매국수집은 소도축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활용한 먹걸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할매국수집 외에도 부산물을 활용한 맛집들이 많다. 가장 유명한 집이 ‘가는 날이 장날’과 ‘오는 날 장날’이다. 두 식당은 모두 뒷고기를 취급하는데 상호를 둘러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전한다. 자칫 라이벌 관계로 감정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두 식당은 재밌는 상호를 공유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외에 TV ‘1박 2일’에 소개되었다는 ‘도너츠집’(상호 없음)과 시장 입구에서 감자고로케를 파는 ‘개진감자고로케’도 유명 맛집 반열에 올라있다.

이런 토속적인 맛집과 정겨운 장 풍경 덕에 장날(4, 9일)이면 성주, 왜관은 물론 대구에서 일부러 원정 쇼핑, 관광을 오는 어르신들이 많다.

김종호 상인회장은 “전화 한 통이면 현관까지 물건이 배달되는 편리한 쇼핑을 즐기는 문화가 있는가하면, 시외버스를 타고 먼 거리를 일부러 찾아오는 ‘슬로’ 쇼핑문화도 엄연히 존재한다”며 “아마 이 틈새 어딘가에 우리 전통시장의 갈 길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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