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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 52년만에 문닫는 대백, 지켜주지 못해 미안!

①30대 이상 대구 사람들에게 대구백화점은 단순한 건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980~90년대 젊은이들의 약속장소는 그냥 ‘대백 앞에서 보자’ 였다. 대구백화점은 월요일 휴무, 동아백화점은 화요일 휴무'라는 의미의 '대월동화'라는 말도 유행했다. 대구백화점 본점이 개점 5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대백의 영업중단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대백 앞’은 대구시민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통했다. 대구백화점 제공)

②롯데, 현대, 신세계 등 메이저 백화점의 지역 진출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대백은 지난해 코로나19 까지 겹쳐 전반적인 상황이 악화됐다. 특히 지역에서 유동성이 가장 높은 동성로에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본점 경영 환경에 큰 타격을 입혔다. (1975년 봄, 대구백화점 본점 외관)

③이런 대내외 환경이 악화되면서 대백은 브랜드 철수 요청을 비롯, 마진 인하, 판촉사원 인건비 증대, 매장 인테리어 공사비 부담 등을 요구 받으면서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④대백도 자구 노력을 게을리 했던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조직 구성을 슬림화 하고, 임원 급여 삭감 등 고정비용을 줄이면서 지속적인 자구책을 실행에 옮겨왔다. (과거 동성로 모습 우뚝 솟은 대백 본점 건물 주변을 저층 건물이 둘러싸고 있다. 대구백화점 제공)

⑤대백의 역사는 1944년 ‘대구상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중구 교동시장 인근에 문을 열었다가 삼덕동 사옥을 거쳐 1969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동성로 본점을 개장했다. 대구에서 에스컬레이터까지 갖춘 현대적인 의미의 백화점은 대백이 처음이었다. 1980년대 대백 회원카드는 부의 상징으로도 통했다. (대구백화점의 모태인 1950년대 대구상회.)

⑥대백의 전성기는 1993년 9월 중구 대봉동 프라자점을 열면서 부터. 오픈 당시 ‘백화점으로선 너무 넓은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기우였음이 바로 입증됐다. 이듬해 3월 신천대로가 개통하자 프라자점에 진입하려는 차량이 수성교까지 밀릴 정도였다. 대백프라자 모습.

⑦전성기 시절 대백은 현재 대구지역 1등 백화점으로 등극한 신세계도 울고 가게 했다. 신세계는 1973년 현재 대백 본점 인근에 매장을 냈다가 대백과 동아백화점의 아성을 뚫지 못하고 1975년 철수했다. 외환위기를 전후로 부산의 태화백화점, 대전의 동양백화점 등 지역 백화점이 도산하는 상황에서도 대백은 향토 백화점의 지위를 지켜왔다.(신세계백화점 대구점)

⑧대백의 앞길에 그림자가 드리운 건 2003년 롯데가 대구역에 롯데백화점을 열면서부터. 당시 롯데는 대백이 한 번도 유치하지 못한 명품 브랜드 ‘샤넬’을 입점시켰다. 이후 샤넬은 대구신세계백화점 개점을 앞두고 철수했다가 지난 달 12일 대구신세계에 입점했다.(롯데백화점 대구점)

⑨롯데의 진출에도 나름 선방하던 대백은 2011년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쇠퇴해갔다. 설설가상으로 2016년 12월 대구신세계백화점이 진출하면서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섰다. 신세계가 문을 열면서 루이비통, 구찌, 보테가 베네타 등 주요 명품브랜드가 대백프라자점에서 철수했기 때문이다.(현대백화점 대구점 ‘샤넬’ 구매 행렬. 매일신문 제공)

⑩대백이 70년 넘게 지역에 우수한 일자리와 사회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 이윤으로 지역 경제를 떠받쳐 왔다는 점에서 향토기업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 그 자체였던 대구백화점. 추억에 묻힌 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까? 그리고 대백이 있던 도심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박소민 기자  deconom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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