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현장 기획/시리즈
[정 듬뿍·추억 가득! 경북 전통시장] (16)포항 구룡포시장일제 강점기엔 어업수탈 기지, 지금은 대게, 과메기, 횟집 명소로
구룡포는 근처의 호미곶, 근대역사거리, 전통시장을 묶어 한 번에 돌아보기에 좋은 관광코스다. 사진은 구룡포시장 내부 모습. 한상갑 기자

최근 구룡포읍의 일본인 가옥거리가 부상하고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블랙 투어리즘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최근 한일관계를 떠올릴 때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포항에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883년 ‘조일통상장정’이 체결된 후 부터다. 장정(章程)이 맺어진 후 일본인들은 본격적으로 조선 해안에서 조업을 시작했다.

구룡포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되는 천혜의 어장으로 일본 어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1908년 한일어업협정서가 체결되면서 오카야마현과 가가와현 어부들이 어선 80척을 끌고 구룡포 일대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일본인 가옥거리가 시작되었다.

조약까지 맺어 가며 바다를 건너 온 일본 속셈은 두말할 것도 없이 어업권 침탈이었다. 군산이 쌀수탈을 위한 미곡기지, 목포가 소금·면화 조달기지였다면 구룡포는 어장 수탈을 위한 어업기지였다. 가난한 세토(瀬戸) 내해(內海) 어민들에게 구룡포는 말 그대로 황금의 땅 이었다.

일본인들의 이주가 시작된 지 100년 후, 언제부턴가 근대문화거리가 관광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2012년엔 대한민국 경관대상까지 받았다.

다크투어리즘으로 보아 넘기기엔 뭔가 이상한 느낌이 앞선다. 일본 기생이 사미센을 뜯던 골목은 누더기 조선 아낙이 생선을 팔던 자리고, 지금도 남아있는 일심정(一心亭) 2층 베란다는 일본인 취객이 조선인을 희롱했던 자리다.

 ‘일본인가옥거리’가 구룡포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긴 하지만 왜색, 일본풍의 범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다크투어리즘인지 블랙 투어리즘인지 정체성이 애매한 구룡포항, 전통시장 일대를 돌아보았다.

구룡포의 대표 특산물 중 하나인 과메기. 포항시 제공

◆1930년대 전성기 땐 요정에 기생만 150명=일본인 어업기지였던 구룡포는 1920~30년대 방파제가 만들어지면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최고 전성기인 1930년대 구룡포엔 1000척 이상의 상선, 어선이 포구를 가득 메웠다. 본토의 가난한 어부였던 일본인들은 당시 조선에서는 인기가 없었던 고등어, 정어리, 꽁치를 일본에 팔아 큰돈을 벌었다. 어업으로 돈을 번 일본인들은 점차 상선, 해양유통, 통조림가공,  철공소까지 경영하며 큰 재산을 형성했다. 

이후 일본인들의 구룡포 이주가 급증하면서 포구 일대에 일본인 집단부락이 형성됐다. 신작로를 따라 상가, 백화점, 기생집, 요리집, 우체국 등이 들어섰고 경치가 뛰어난 뒷산에는 신사와 관공서가 들어섰다.

성어기 어부들이 항구로 몰리면서 밤마다 누각에서는 풍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때 요정에서 일하는 기생수가 150명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에 얼마나 돈이 넘쳐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44년 구룡포의 일본인들은 구룡포항 조성과 신사 건립을 기념해 신사로 오르는 양쪽 계단에 고액 기부자들의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불과 1년 뒤에 ‘리틀보이’와 ‘팻맨’ 원자탄 두 방에 일본이 패망의 길로 접어들 줄은.

일본인들이 떠나자 그 비석들은 모두 시멘트로 덮여져 돌려 세워졌다. 대신 거기엔 순국선열 위패를 봉안한 ‘충혼각’을 세우는데 기부 한 한국인의 이름이 새겨졌다. 하나의 비석의 앞뒷면에 나란히 새겨진 두 이름, 여기서 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구룡포시장에서 대게는 수율(속이 찬정도)에 따라 1만원에서 2만5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해방 후 동해안수산물 집산지로 명성=일제강점기 때 수산물 수탈기지였던 구룡포는 일본인들이 물러간 후 동해 수산물 거래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된다. 해방 후에는 정기시장이 들어서며 대구, 청어, 꽁치, 오징어, 미역 등 수산물의 집산지가 되었다. 포구에 산더미처럼 싸인 해산물들은 영덕, 경주, 영천 등지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교환, 거래되며 성시를 이루었다.

1960년대부터는 전통 5일장이 형성돼 동해안 어촌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고, 1970년대 일본인들이 떠난 자리엔 통조림공장, 조선소, 목공소들이 영업하며 상권을 유지했다. 

현재 구룡포시장은 여느 해안가 시장처럼 도농복합 형태를 띠고 있다. 즉 과메기, 오징어, 가자미, 미역, 전복 등 해산물과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싱싱한 채소들과 거래되고 있는 구조다.

구룡포를 대표하는 특산물은 뭐니뭐니해도 대게다. 현재 ‘대게 원조 도시’ 타이틀을 두고 영덕, 울진, 구룡포 등이 경합을 벌이고 있지만 위판장 판매 집계로는 단연 구룡포가 앞선다. 연간 700톤이 유통되니 사실상 전체 대게 물량의 절반이 구룡포를 거치는 셈이다.

시즌과 조금 벗어나 있지만 지금 구룡포시장엔 아직 대게가 많이 나와 있다. 은정수산의 이춘택 대표는 “현재도 대게가 많이 잡혀 1만원에서 2만5천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며 “주말에 들르면 저렴한 가격에 대게를 맘껏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구룡포 하면 과메기를 빼놓을 수 없다. 겨울이면 포구 곳곳은 과메기를 말리는 풍경으로 요란하다. 주로 꽁치가 재료로 쓰이지만 풍흉에 따라 청어가 그 자리를 대신 할 때도 있다.

구룡포시장 권수원 상인회장은 “요즘은 포장 기술이 발달해서 사계절 과메기를 맛볼 수 있지만 과메기 진짜 맛은 겨울에 쪽파, 미역, 마늘, 풋고추와 곁들여 먹는 맛이 최고”라고 말한다.
대게, 과메기와 함께 구룡포시장의 명물로 등장하는 것은 모리국수. 향토시인 권선희의 소개로 한 모리국수집이 알려지면서 구룡포는 전국적인 국수 명소가 되었다.

그날 잡은 생선 중 남은 것을 얼큰한 양념과 함께 국수에 끌여내는 이 요리는 원래 어민들이 쉽게 요리해 허기를 달래던 음식이었다. 옛날처럼 긴 줄이 늘어서지는 않지만 요즘도 장날이나 주말이면 전국에 국수 마니아들을 포항으로 불러들인다.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이 근대골목거리에서 촬영을 하면서 구룡포는 또 한 번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근대거리, 장안동 골목, 충혼각 언덕엔 드라마 촬영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다. 관광객들은 그 자리에서 주인공들과 같은 포즈를 취하며 드라마 속으로 잠시 빠져 든다.  동백이가 운영한 ‘카멜리아’는 인스타그램에서 5만 번 이상 검색되며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이제 5월부터 대게 금어기가 시작된다. 대게 시즌이 끝나기 전에 구룡포시장에 들러 맛있는 대게, 회요리와 포구 풍광에 한번 빠져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저작권자 © 디지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상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