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는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들어설 정도 영남지역의 행정, 군사 상업의 요충지였다. 사진은 상주중앙시장 입구. 상주시 제공

‘상주의 다른 이름은 낙양(洛陽)이며 산이 웅장하고 들이 넓다. 충청도, 경기도와 통하고 낙동강과 임(臨)해서 김해, 동래와 통한다. 말과 배가, 육로와 물길이 남북에서 모여들어 무역하기에 편리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상주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상주를 중국 수당(隋唐)시대 수도 낙양과 비교한 것은 조선시대 상주의 도시 위상과 문화, 전통이 그만큼 높았음을 나타낸 것이다.

신라시대엔 상주(上州) 또는 상주(尙州)로 불렀는데 이는 도시 중에서도 상석(上席)이요, 숭상(崇尙) 받을 도시로 통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주도 현대 들어와 산업화 물결에 밀려 쇠퇴를 거듭하고 있다. 1970년대 27만을 헤아리던 인구는 이제 10만 이하로 떨어졌고, 상주를 지나는 경북선 철도는 하루 10회(김천 5회, 영주 5회)만 운행할 뿐이다.

이 상주의 영화와 쇠락을 한자리에서 지켜본 곳이 있으니 바로 상주중앙시장이다. 상주시장은 경상감영이 들어섰던 조선시대부터 한말, 일제시대를 지나는 동안 상주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중앙시장을 찾아 상주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보았다.

상중 중앙시장의 장날 노점 모습.

◆조선시대-일제강점기 경북북부 경제, 행정의 중심=올해로 상주시장의 물리적 나이는 109세다. 시장 벽에 쓰여진 ‘Since 1912’가 이를 입증한다. 1912년 이면 일제강점기인데 일제시대 상주는 이미 영남의 유통, 상업도시로 성장했다. 1909년 기록에 따르면 ‘2, 7일에 장이 섰는데 멀리 부산과 대구, 김천에서도 상인들이 찾아왔다’고 기록돼 있다.

1920년대 상주읍내장은 180칸 장옥 규모로 이미 성장해 있었다. 이에 따라 장터는 태평로 근처에서 읍성 남문 밖으로 옮겨가게 된다.

일제시대 상주는 다시 한번 도약 기회를 맞는다. 1931년 김천과 영주를 있는 경북선(115 km)이 개통된 것이다. 철도 개통 이후 상주는 경북북부의 교통중심지, 상업 요충지로 번성했다.

1930년대 후반 상주에는 모두 여덟 개의 시장이 개설되었다. 조선시대에 비해 시장 수(13개)는 줄었지만 거래액은 매년 급증하며 매머드급 상권을 형성해 갔다.

일제시대 중개인 65명이나 활동할 정도로 규모를 자랑했던 상주시장, 그러나 상주는 조선시대에 존재감이 더 컸다. 낙동강 수역에 위치해 서울과 김해, 동래, 부산에 있는 수운(水運)의 중심지였고, 대구·안동과 한양을 있는 육로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이런 지리·경제적 요충을 기반으로 조선초기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경상감영이 들어서 경북의 행정, 군사, 교통, 경제의 요충지로 기능했다.

고대 사벌국(沙伐國) 시대부터 1500여년 동안 경북의 중심으로 자리를 지켜온 상주도 1970년대에 들어 불기 시작한 도시화, 산업화 바람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농현상으로 22만(1975년)이었던 인구는 2010년 9만8,000명으로 줄었고, 그에 비례해서 시장세도 점차 위축되었다. 거기에 1990년대 들어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등장, 온라인 마케팅 활성화 등이 겹치면서 장세는 급격히 쇠락해갔다.

방송사에서 맛집을 취재하고 있는 모습.

◆고려분식, 동신통닭 등 전국구급 맛집=상주시장의 슬로건은 ‘명실상주’다.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한자성어와 지명의 결합인데 ‘이름값을 하는 시장’이라는 이미지가 잘 와 닿는다.

현재 시장은 16개 동이 배열되어 있고 이 구획에 따라 150여개 점포가 배치돼 있다. 도심 시장으로서 기본적으로 상설시장 형태지만 오일장(2, 7일) 기능도 겸하고 있다.

시장상인회 김정호 회장은 “오일장이 겹치는 날이면 주변에 노점 트럭과 마을 어르신 행상이 대거 몰려 제법 장날 분위기가 난다”며 “도농 시장답게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 곡물과 곶감, 사과, 배 같은 과일, 채소들이 주로 거래된다”고 말한다.

상주시장의 큰 특징은 유명 맛집들이 브랜드파워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이중 가장 유명한 곳은 1981년에 개업해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려분식’이다. 얼마 전 ‘생활의 달인’에 소개돼 전국구 맛집 반열에 올랐다. 김밥, 쫄면, 만두, 돈까스가 대표 메뉴다. 워낙 셀럽 점포인 탓에 20~30분 대기는 기본이다.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시장통옛날국수’도 필수 방문 맛집이다. 칼국수, 팥죽, 수제비가 메인요리지만 마니아들은 ‘곶감얼큰칼국수’를 꼭 챙겨 먹는다. 얼큰한 국물 사이에서 곶감의 단맛이 묘한 배합을 이뤄 독특한 풍미를 완성한다.

곶감을 넣은 통닭으로 유명한 ‘동신통닭’도 곶감 마케팅으로 성공한 케이스. 양념 소스에 곶감을 갈아 넣어 쫀득하고 달달한 맛이 특징이다. 후라이드, 양념, 간장을 따로 팔기도 하지만, 한 마리로 세 메뉴를 통합한 ‘삼색 치킨’이 더 유명하다.

어린이들이 시장 견학을 나온 모습.

◆수준 높은 홍보전략으로 시장 이미지 높여=상주중앙시장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수준 높은 홍보전략과 이미지 메이킹이었다. ‘삼백도시’(쌀, 누에, 곶감)로서 도시브랜드를 시장에 접목했고, 상인들도 곶감요리, 감소스 등 특산품을 개발해 여기에 호응했다.

상인회에서 시장 대표음식을 추천한 ‘상주중앙시장의 오미(五味)’도 맛집 붐과 연동해 시장 지명도를 키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돼지국밥, 수제떡, 보리밥, 생칼국수, 통닭을 묶어 디자인을 입히고 콘텐츠화 한 것인데 아마 시장 유동인구 증가와 관광객 유치에 일등공신이 아닌가한다.

김정호 회장은 “이런 ‘핵점포 지정’ 사업은 여기서 제외된 점포들의 불만이 전제되는 일이어서 조정이 쉽지 않은데, 이런 마찰 없이 사업이 추진된 것은 성숙한 상인 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상주중앙시장은 주변의 인구 10만급 자치단체의 시장에 비해 거래규모도 크고 상권도 안정돼 있다. 이는 사벌국시대부터 이어온 역사, 전통과 문화 그리고 점포주들의 수준 높은 상인의식이 발현된 결과다.

농촌도시 위기 속에서도 이런 덕목들을 잘 이어간다면 상주(上州), 상주(尙州)의 전통은 물론 ‘상주’(商州)의 전통도 잘 이어갈 것이라 확신한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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