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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목 & 이 점포] 대구 교동시장 ‘신창사’ 윤해남 대표“소총 빼고 다있다” 한때 휴가 군인들 군화·군번줄 사러 ‘북적’
교동의 대표적 밀리터리숍 신창사에는 500여종에 1만여 점의 물건을 취급하고 있다. 윤해남 대표가 여러 군용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밀리터리’(military)의 사전적 의미는 군사, 군대를 뜻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밀리터리의 어감은 군대, 군사보다는 군대와 관련된 취미 활동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밀리터리 덕후’다.

적게는 총기, 컴뱃나이프(도검), 군장, 전투식량, 수통 등에 관심을 갖는 ‘장비 덕후’ 부터 퇴역 항모(航母)나 전차(戰車)를 사 모으는 외국의 ‘진성 덕후’까지 종류와 레벨도 다양하다.

6.25 동란 포연(砲煙)에 쌓였던 한국에서 전운(戰雲)이 걷힌 건 70년 가까이 된다. 이제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우리나라지만 아직 분단국가로서 군사적 긴장감이 남아 있다는 점, 전국 곳곳에 육해공군 부대가 실존한다는 점에서 전쟁은 아직 우리에게 진행형으로 인식된다.

이렇듯 제한된 영역에서 특수한 형태로 존재하는 밀리터리 문화가 일상, 생활공간으로 침투(?)한 곳이 있다. 대구 교동시장의 밀리터리 상가다.

전성기 때 10여 곳을 거느리며 번성했던 ‘밀리터리 스트리트’는 현재 3곳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교동에서 40년 동안 밀리터리 숍을 운영해온 신창사 윤해남 대표를 만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960~70년대 교동시장엔 미제 물건, 군수용품 유통=교동시장의 밀리터리 숍의 역사는 6·25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 대구역엔 미군수품 보급창고와 PX가 있었고, 당시 교동 일대는 피란민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

당시 미군부대 군인, 군무원들이 군수 용품을 시장에 풀고, 주변 미군부대에서는 미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른바 양키시장이 형성됐다.

신창사 윤해남 대표가 이 골목에 자리를 잡은 건 1980년대 초. 그때만 해도 밀리터리 숍은 3~4곳이 전부였고 대부분 통조림이나 화장품을 파는 양키 잡화점이 대부분이었다.

윤 대표는 “1970년대만 해도 교동 골목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껌, 초콜릿, 꼬냑, MRE(전투식량), 워커, 야전삽 등이 차고 넘쳤다”고 말한다.

1960년대 이런 생필품, 잡화류, 군수용품들은 대부분 미군부대 주변에서 흘러 나왔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시장 판도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1976년부터 한미 팀스피리트훈련이 시작되면서 밀리터리 업계에 거대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당시 팀스피리트 훈련이 끝나면 미군들은 소모품과 거추장스런 장비들을 모두 정리하고 최소한의 군장만 꾸려서 귀국했는데, 업자들은 훈련이 끝날 때마다 이 물건들을 창고에 대량으로 받아두었다가 정리, 분류해서 팔았다.

훈련이긴 하지만 실전을 전제로 한 모의 전투여서 미군들의 장비, 군수 용품은 대부분 실전용, 오리지널 첨단용품들이었다. 보통 밀리터리 마니아들은 ‘실전용’ ‘오리지널’에 집착하는데, 이는 이들 군수용품들이 야전, 야생이나 거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소재나 기능성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다.

매장 안에는 수통, 군모, 해먹, 배낭, 군용양말, 철모, 야상침대, 방독면, 항공점퍼 등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휴가 나온 장병들 군화, 군번줄, 군복 사서 귀대=1970~80년대 대구 교동시장에선 ‘탱크 빼고 다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통규모를 자랑했다. 그 시절엔 도검류 같은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장비도 은밀하게 거래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모든 거래가 투명화 돼 대부분 합법적인 물건만 취급한다.

현재도 국군 전투복의 거래는 엄격하게 통제된다. 업자들도 국방, 기밀과 관계되는 물건들은 아예 거래도 알선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군수품이 넉넉지 않았던 1970~80년대엔 군장비, 소모품들이 많이 거래 되었다. 당시 휴가를 나온 군인들은 귀대할 때 골목에 와서 군화, 군복, 군번줄, 수통, 탄띠 등을 사 가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 부대 내 분실사고가 많아 부족분을 채워 놓거나, 분실·훼손에 대비해 여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국방예산, 군 살림이 넉넉해진 지금 휴가 군인이 교동시장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군수품이 넉넉지 않았던 1970~80년대 당시 휴가를 나온 군인들은 귀대할 때 골목에 와서 군화, 군복, 군번줄, 수통, 탄띠 등을 사 가는 경우가 많았다. 매장 모습,

◆500여종에 1만여 밀리터리 용품 판매=군장병들이 모두 사라진 교동시장, 요즘엔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현재 전국의 밀리터리 마니아들 숫자는 대략 1백만명 정도. 신창사에도 수십년씩 거래를 하는 ‘진성 단골’들이 꽤 많다.

취재 당일에 만난 한 전직 경찰관은 탄띠, 군화, 수통, M1 소총 대검 칼집을 사갔다. 현재 집에 소장하고 있는 밀리터리 용품 만 수십 박스가 넘고 여기에 억(億)대를 쏟아부었다고 한다.

‘왜 밀리터리에 이토록 열광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 세계를 모르는 사람에겐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 한다’며 인터뷰 자체를 피했다.

수렵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냥꾼들도 신창사에 고객층을 형성하고 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전문 수렵인은 군화, 야상, 사냥용칼, 군용 색(Sack)을 놓고 흥정하고 있었다.

이 엽사는 “사냥과 전투가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실전 복장으로 무장하고 있다”며 “실제로 야생, 산속에서 활동하기에 내구성, 기능성 면에서 미군 전투복, 군화 만한 게 없다”고 말한다.

현재 신창사에는 500여종에 1만여 점의 물건을 취급하고 있다. 수통, 군모, 해먹, 배낭, 군용양말, 철모, 야상침대, 방독면, 항공점퍼, 기름통, 방한 장갑, 각반, 스패츠, 야전삽부터 망원경, 재크나이프, M80 탄약통 등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이중 오리지널과 이미테이션 비율은 약 7대 3. 마니아들은 무조건 ‘오리지널’을 고집하고 취미나 특수직업 봉사자들은 견고하고 실용적인 물건이면 어떤 것이든 개의치 않는다.

코로나-19 그늘은 어김없이 밀리터리 숍에도 찾아 들고 있다. 일단 밀리터리 동호인들이 단체, 대외활동이 줄어들면서 이들의 구매 활동이 현저히 위축됐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 중단된 한미군사훈련도 밀리터리 업계에 큰 손실을 입혔다. (군사훈련이 활발해야 경기가 돌아가는 업종이 있다는 것도 난센스다.)

윤 대표는 “전쟁이나 평화는 국제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우리가 알 수는 없고, 빨리 코로나 19가 종식돼 우리 골목에도 밀리터리 동호회원들이 골목을 활보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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