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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영남 전통시장]  ㊽ 달성군 시장의 역사조선시대 화원은 중계무역항, 일제때 달성엔 오일장 ‘성황’
조선시대 초기 화원엔 일본 상품을 보관하던 ‘왜물고’(倭物庫)와 ‘화원창’이 있어서 일본-부산과 서울을 연결하는 중요무역 통로로 기능했다. 이는 달성이 조선전기 공무역(公貿易), 중간무역의 중심지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은 사문진나루터. 한상갑 기자

고대 역사를 논할 때, 특히 문명의 전파 경로를 얘기할 때 강(江)은 언제나 그 중심에 선다. 적게는 지역의 물산(物産)의 유통을 담당하는 교통로로, 크게는 문명과 문명을 이어 주는 교역로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선사시대를 말할 때 낙동강과 금호강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고대 북방계 청동기, 철기문화가 두 강을 거쳐 일본으로 흘러갔고, 거꾸로 남해·일본의 해양문화가 대륙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작용했다. 고대 불로동 고분군에서 상어뼈가 출토되고 연암산 금호강 주변에서 정어리뼈가 발굴된 것은 고대에 벌써 강을 통해 해양세력과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다.

달성군은 대구경북의 젖줄인 두 강이 합수되는 지점에 위치해 고대부터 풍부한 문물의 통로이자 유통의 터미널로 작용했다.

◆조선시대 화원은 일본-부산-서울 연결하던 무역로=조선시대 달성군 화원현에는 화원창(花園倉)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창’(倉)은 전국 각 지방에서 조세로 걷은 미곡(米穀), 특산물을 수납하던 조창(漕倉)으로, 서울로 운송하기 위해 하천의 포구나 진(津)에 설치되었던 국영 창고를 말한다.

화원창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해외 무역의 한 기지로써 역할이었다. 세종 1년(1419년)에 대마도 정벌 이후 중단되었던 대일무역은 1423년 부산포, 삼포를 개항하면서 재개 되었는데 이때부터 일본의 상품이 부산-낙동강을 거쳐 사문진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화원은 일본-부산과 서울을 연결하는 중요무역 통로로 기능했는데, 일종의 세관, 무역창고 같은 역할이었다.

당시 일본 상품을 보관하던 ‘왜물고’(倭物庫)는 사문진 근처에 위치했는데 이로써 달성이 조선전기 공무역(公貿易), 중간무역의 중심지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부산 개항장에 부려진 일본 상품들은 양산에 동원진(東院津)에서 배에 실려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화원으로 보내졌는데 이 기간이 대략 7~8일 걸렸다고 한다.

화원창의 왜물(倭物) 중 구리, 철, 소목(蘇木) 같은 국가 소용품은 배편으로 서울 용산으로 수송됐고, 곡식·어염(漁鹽) 같은 생필품들은 상당수 사문진에서 하역돼 민간에 유통되기도 했다.

이때부터 화원창과 사문진나루터는 세곡선(稅穀船), 보부상, 상인, 노꾼들이 바삐 드나드는 중계무역항이자, 국제시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군내 12곳 오일장 성황=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달성군 지역의 시장이 열리기 시작한 건 1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 화원면, 하빈면은 대구에 속했는데 화원장(3, 8일), 현내장(5, 10일), 현풍 읍내장(2, 7일), 차천장(5, 10)이 열리고 있었다.

1885년부터 읍내장, 차천장에는 보부상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무명을 파는 면전(綿廛), 생선·과일을 파는 어과전(魚果廛), 포목을 파는 포전(布廛)을 다니며 고령, 성주, 창녕, 경산, 청도 등지와 거래를 열었다.

당시 이들은 창녕의 상무사 소속이었는데 대구, 달성군 경제 규모가 커지자 독립해 별도의 상단(商團)을 꾸렸다.

달성군 전통시장에 대한 자료는 일제시대 대구지, 달성지 등에 조금씩 나온다. 특히 달성군에서 기록한 ‘시장대장’(市場臺帳)에는 군내 각 시장의 개시(開市)일부터 시장에 점포 배치도, 주요 거래품목, 인접 시장과의 거리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

◆유통 근대화 바람 이후 4~5곳만 남아 명맥 유지=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 달성군의 전통시장 수는 공식적으로 12곳이다. 1958년 달성군지 기록을 보면 12곳이던 오일장 수는 10여년이 지나면서 10곳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규모가 적었던 백안장, 동곡장 등이 시장 기능이 쇠퇴하며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하빈면의 상곡장, 월배장 등이 부락세가 커지며 새로운 오일장으로 등장한다. 이들 오일장은 1960년대까지 지역의 상업활동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해왔다.

1970년대 이후 불어온 유통 구조 근대화 바람은 오일장에 가장 큰 위협요소로 작용했다.

도심엔 상설시장, 백화점, 대형 유통센터, 슈퍼마켓, 연쇄점, 농협 공판장들이 잇달아 들어서며 전통시장 상권을 위협했다.

보부상, 장꾼들 하루 이동거리인 30~40리를 기준으로 세워졌던 오일장도 교통이 발달함으로써 이런 원칙들이 무너지며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다 최근 코로나 19 열풍으로 불기 시작한 비대면 거래, 온라인 마케팅, 홈쇼핑 등도 가뜩이나 위기에 몰린 전통시장의 입지를 자꾸 좁혀가고 있다.

현재 달성군의 오일장은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을 겸하는 화원 전통시장 ▶논공읍 금포시장길에서 열리는 논공시장 ▶현풍 백년도깨비 시장 ▶논공읍 북리에서 열리는 논공 중앙시장 등 4곳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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