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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피플] 금강경 필사 팔공산온천관광호텔 이선기 회장15년째 금강경 240번 필사, 완성품은 모두 이웃에 보시(報施)
팔공산온천관광호텔 이선기 회장이 자신의 금강경 필사, 금물부채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자유당 때 정치 깡패 임화수가 사형 집행 직전 읊조린 말은 금강경 몇 줄이었다고 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을 화두로 내 건 금강경은 ‘지혜의 바다’로 불리며 많은 불자들의 애송경으로 유명하다.

5,149자 라는 방배한 양 때문에 소리 내어 일독 하는데도 30~40분이 소요된다. 이 어렵고 방대한 경전을 필사(筆寫) 하자면 내공, 체력, 숙련도에 따라 대략 4~5일은 걸린다고 한다.

‘가장 느린 독서’라는 필사, 말은 그럴 듯하지만 어려운 한자를 그것도 붓으로 써내려가는 과정은 지난(至難)의 수행임에 틀림없다.

이 ‘가장 힘든 독서법’을 15년째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대구 팔공산온천관광호텔 이선기 회장이다. 이 회장은 필사한 금강경을 소장 하거나, 판매 하지 않고 지역 사회에 보시(報施)하는 일로 더 유명하다. 이렇게 퍼져나간 금강경 필사본은 약 200여점. 글자로만 약 100만 자에 이른다.

'닳아버린 붓이 30여 자루는 되지 않겠냐'는 이 회장의 금강경 사경(寫經) 작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서예는 언제, 어떤 계기로 입문하게 되었나.

▶15년쯤 집사람이 서예를 시작했는데, 어깨 너머로 따라 하다가 같이 하게 됐다. 대학 때 산업미술을 전공했는데, 그 때 쓰던 팔레트붓과 서예붓이 서로 통하는 것을 느꼈다. 틈틈이 쓴 글씨를 남석 이승조 선생에게 보였더니 “당신은 서실에 나올 것도 없고 그냥 혼자서 쓰고 싶은 대로 써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엔 유명 서예가 서책을 펴놓고 따라 쓰는 훈련을 주로 했다. 하루 5시간 이상 치열하게 매달리니까 글꼴이 갖추어지고 서체가 제자리를 잡아가는 걸 느꼈다.

-금강경 사경(寫經)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글씨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금강경 사경이었다. 사경은 ‘눈으로 읽고 입으로 독송(讀訟)하며 마음에 새기는’ 수행이다. 화가 나거나 주변 일로 마음이 불안할 때 붓을 잡으면 바로 안정이 되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던 구절도 몇 번 쓰다 보면 어느새 성찰의 문이 열리며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경전 말씀 따라 ‘하이고 수보리 어의운하’(何以故 須菩堤 於意云何)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부처와 마주 앉아 있는 듯한 경지를 느끼곤 한다.

-어렵게 필사한 경전을 이웃과 나눈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처음부터 경전 보시(報施)를 하려고 한 건 아니다. 몇 년 전 동화사에서 한 행사를 할 때 집사람이 내가 쓴 경전을 가지고가 소지(燒紙) 공양을 했다. 초창기 사경한 작품들이었다. 두루마리를 태우는 것을 본 스님, 불자들이 ‘보살, 처사님들 장례 때 복장경(腹藏經)으로 쓰겠다’며 경전을 가져가면서 보시가 시작됐다. 이제까지 금강경은 모두 240번을 썼다. 단순 집게로도 120만 자가 넘는다.  경전이 내손을 떠나면 그 작품이 표구, 병풍이 되어 안방에 걸리든, 망자의 저승길 유품이 되든 그건 전적으로 받아간 사람의 몫이다.

-사경은 물론 달마대사, 부채 선물로도 유명하다는데.

▶우연한 기회에 김해에서 열린 한 부채전시회에 가게 되었다. 부채를 보는 순간 ‘선물용으로 딱 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금강경 5,149자를 모두 쓰면 12폭이다. 소장자도 병풍을 만들든지 표구를 하든지 해야 해 활용에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부채는 이런 제약 없이 아무에게나 줄 수 있어 기증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 부피나 작업 강도로 치면 부채가 훨씬 쉽지만 비용으로 치면 부채가 훨씬 작업비가 많이 든다. 금물로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채 그림에 들어간 금물값 만도 수백만원은 족히 된다. 직업이 호텔 CEO다 보니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아온다. 특히 정치인들이 많은 데 부채나 달마대사 그림을 선물로 주면 너무 좋아한다. 일부는 소문을 듣고 부채나 달마도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이선기 회장이 제작한 금물부채.

-금물 작업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부터 금니(金泥) 작업을 한 건 아니다. 초창기엔 한지에 붓으로 그림이나 글씨를 썼다. 어느날 부채 글씨를 쓰다가 제일 마지막 공정에서 먹물 한방울이 떨어져 작품을 망친 적이 있다. 낭패감에 빠져있는데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왜 난 흰 바탕에 검은 글씨만 생각했을까, 검은 바탕에 글씨를 쓸 수도 있는데. 이 고민이 작품으로 구체화된 것이 금글씨 부채다. 부채도 이제까지 약 500 개를 만들어 주위에 나눠줬다.

-언제까지 이런 고행을 계속 할 것인가.

▶흔히 필경을 ‘신구의’ (身口意) 3업을 다스리는 행위라고 한다. 몸가짐을 바로하고 입으로 독송(讀訟) 하며 마음으로 음미하는 수행이란 뜻이다. 지금도 마음이 격정으로 차오르거나, 무언가에 흔들릴 때는 조용히 붓을 잡으면 온 신경이 붓끝에 모아지며 순식간에 삼매경으로 빠져든다. ‘사경(寫經) 나누기’는 나에게 이타(利他) 행위 이전에 이기(利己) 행위다. 큰 재물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나누고 경(經)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 건강이 허락되는 한 신심(信心)이 나에게 머무는 동안은 고독한 사경 작업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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