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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영남 전통시장] ㊿ 대구시 서대구시장1970년대 두류, 내당동 주민들 쇼핑 공간, 지금은 겨우 명맥만...
반고개 네거리 근처의 ‘서대구 시장’ 입간판. 실제 시장은 여기서 아래쪽으로 100m 아래에 있다. 한상갑 기자

반고개 네거리에서 한독요양병원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길가에 ‘서대구 시장’이라는 큰 입간판(조형물)이 보인다. 전통시장 하면 보통 아케이드가 설치된 집합상가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곳엔 이런 시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인터넷에 자료를 검색해보니 ‘1970년대 개설된 전통시장’이라는 단편 자료만 나와 있을 뿐 시장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보이지 않았다.

필자도 1980~90년대 이곳에 자주 드나든 추억이 있어서 시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30여년 만에 둘러보니 한산한 골목에 술집 몇 곳만 영업을 하고 있을 뿐 시장 실체에 대한 행방이 묘연했다.

50년 전통 ‘고령국밥’ 집에 물으니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 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후 필자의 눈앞에 비로소 누추한 시장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서대구시장의 실체가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일단 외관이 너무 허름해보였다. 요즘 웬만한 시장에 설치된 아케이드도 없었고 천장은 ‘갑빠’로 얼기설기 덮어 놓은 모습이었다. 상가의 절반은 비어있거나 휴업 상태였고 50미터 남짓한 메인 통로를 밝혀 주는 건 흐릿한 조명들이었다.

30년 전 필자가 드나들었던 서대구시장은 진짜 전통시장이 아닌 현재 명덕로 2길 술집 골목이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30~40대 대구토박이들도 서대구시장의 실체에 대해 잘 모르고 그냥 옛 한독병원 근처의 ‘술집 골목’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대구시장은 한 때 100곳 이상 점포를 거느린 중급 시장이었지만 유통시장 개방, 대형소매점 등장, 홈쇼핑·비대면 마케팅 등에 밀려 상권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옛날 반고개는 장꾼들이 쉬어가던 휴게소=서대구시장의 공간적 배경은 반고개다. 1960~70년대 대구 시세가 외곽으로 확장되기 전 반고개는 도농(都農)을 가르는 경계였다.

대구의 주 도심이 지금의 중구와 서구, 남부에 한정되던 시절이어서 반고개를 넘으면 바로 전원 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반고개는 조선시대 서문시장으로 향하던 상인, 시민들이 넘던 고개로, 당시엔 풀이 우거져 상인들이 우마(牛馬)를 풀어놓고 쉬게 하던 일종의 휴게소 같은 자리였다.

지명의 유래와 관련해서도 많은 설이 전한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바람(반)고개 ▷도적들이 많아 고개를 반(半)도 넘기도 힘들다고 반고개 ▷밤나무가 많아서 밤(栗)고개 라는 설 등 여러 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반고개엔 1980년대까지 고령, 성주 등 시외로 가던 간이 버스승강장이 있었다. 북부정류장을 출발한 버스가 서문시장에서 장꾼들을 태운 후 성주로 가는 손님들을 위한 임시정류소였다. 시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2000년대 초반 만해도 반고개 정류소엔 잡화점, 매점과 매표소를 겸한 정류장이 있었다”며 “완행은 물론 직행버스까지 운행 될 정도로 대구와 서부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2000년대 들어 이곳을 운행하던 시외버스 업체가 사라지며 2008년 정류소가 있던 자리는 다른 점포가 들어섰다. 지금은 0번과 250번 버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서대구시장이 들어선 1970년대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1970) 되고 3공단이 준공(1968) 되며 대구 시역(市域)이 급속히 팽창하던 때였다. 대구 도심 시가지가 반고개를 넘어 내당, 두류동 등지로 확산하던 시점이었다.

대구 도심이 외곽으로 뻗어나가며 이 일대엔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늘어난 인구와 교육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내당초교, 구남중, 대구보건고, 내서초교 같은 학교들이 들어섰다. 주택가가 형성되고 인구가 밀집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서대구시장은 이런 필요에 대한 해답이었다.

시장 뒤편의 상가 복합건물.

◆한때 점포 100여곳 거느린 서구의 ‘중급 시장’=서대구시장은 3층 상가건물로 건설되었고 전체 모양은 ‘ㅁ자’ 형태를 하고 있다.

한때 주변 상가까지 100곳 이상 점포를 거느린 중급 시장이었지만 이곳 역시 유통시장 개방, 대형소매점 등장, 홈쇼핑·비대면 마케팅의 등장 등 외풍을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2005년 내당동 홈플러스의 입점은 서대구시장에 큰 타격을 입혔고, 최근 온라인 마케팅 위주 쇼핑 문화의 변화는 시장에 결정타를 날렸다.

현재 시장엔 20~30곳의 점포가 아직 영업을 하고 있다. 개장 50년이 지나며 건물이 대부분 노후 되었고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슬럼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취급품목도 잡곡, 야채, 과일, 방앗간, 떡집 등 ‘올드 취향’이 대부분이었고 신세대, 젊은층을 위한 아이템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모두 밝게 웃으며 기자의 취재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한 상인은 “보기엔 모든 것이 부족한 것 같아도 나름대로 시장은 잘 굴러가고 있다” 말한다. 30~40년간 함께 추억과 향수를 공유하는 어르신 단골들이 꾸준히 시장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점포 주인도 “우리도 이 시장을 언제까지 꾸려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오랜 단골들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지 않겠느냐”고 쓸쓸히 웃었다.

시장을 나오며 주변을 살펴보니 사방으로 건설 타워크레인들이 늘어서 건축 자재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달구벌대로 동쪽엔 이미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있고, 내당역-반고개역 주택가 역시 대규모 재건축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턱밑까지 밀려온 재건축 물결 앞에서 전통시장이 버틸 수 있을 것인지,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시장을 지켜줄 것인지, 서대구 시장이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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