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은 조선시대 전국 3대 시장 중 하나로 불릴 만큼 상권의 규모를 자랑했다. 사진은 대로변 시장 입간판. 대구시 제공

대구를 떠받치는 ‘기둥’을 말할 때 서문시장도 당당히 한켠에 이름을 올린다. 서문시장은 상거래, 물류 같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3·1운동 당시엔 만세운동의 거점으로서 정신적 상징성을 갖는다.

물론 서민들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민초들의 의식주를 담당해왔고, 다양한 장터 문화를 통해 삶과 희노애락을 함께했다.

문헌 상 서문시장의 역사는 조선 중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전기까지 뚜렷한 존재감이 없던 대구는 1601년(선조 34)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영남의 정치, 경제, 문화, 행정의 중심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성장을 거듭해온 서문시장은 마침내 서울시전, 평양장과 함께 전국 3대 시장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 경제사에 환 획을 긋게 되었다.

상거래 공간을 넘어 대구 유통·물류의 뿌리, 한국 경제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한 서문시장으로 떠나 보자. 

◆달성토성 세력, 서문시장 일대서 고대왕국 꿈꿔=서문시장의 공식 출발은 임진왜란 이후 경상감영이 들어선 시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구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문시장의 기원을 이렇게 단순히 도식적으로 볼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서문시장 위치한 달성토성은 대구의 모태요, 기원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흔히 달성을 ‘대구 고대사 타임캡슐’이라고 부른다. 약 1.3 km 타원형 성곽은 청동기시대는 주거(住居) 터이자 요새였고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관아, 병영이자 민가 터였다.

달성 주변엔 100개 이상 대규모 고분군이 널려 있었는데 이는 대구 중심부에 금동관이 출토될 정도로 큰 정치세력이 존재했다는 뜻한다. 100여기의 고분을 축조할 정도라면 당연히 그 무덤을 쌓을 인구, 정치권력과 경제력이 존재했다는 것을 뜻하고 이는 군장(君長), 부족집단을 넘어 ‘국가’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이 달구벌 세력은 신라 팽창기 경주 세력의 수하(手下)로 들어갔지만 달성토성 세력이야말로 고대부터 현재 대구의 원형질, DNA의 근원이었다.

달성토성과 현재 서문시장 일대는 고대 달구벌 세력들이 고대 왕국을 꿈꾸던 공간적 배경이자 정치·경제적 기반이었던 것이다.

서문시장의 국수골목은 ‘누들로드’로 부릴 만큼 전국 국수 마니아들의 성지로 통한다. 한상갑 기자

◆17세기 대동법 실시 후 전국 3대 시장 명성=조선 초기 서문시장은 대구읍성 북문 밖에 자리 잡은 조그만 향시(鄕市)에 불과했다. 임진왜란이후 대구에 경상감영이 들어서면서 대구는 영남의 정치, 경제, 국방의 거점으로 도약을 거듭했다. 대구의 도약은 필연적으로 관급(官給), 물류, 유통 같은 상업·경제활동을 필요로 했고 서문시장은 그에 대한 대안이었다.

작고한 권병탁 전 영남대 교수는 저서에서 ‘대구는 경상도의 심장부에 위치해 사통팔달로 각지와 열려 있고, 임란 이후 경상 좌·우도가 통합되면서 낙동강 수운(水運)도 눈부시게 발달했다’고 적고 있다. 북쪽으로는 영남 북부 일대 물자들이 육로를 통해 들어왔고, 하류 쪽에서는 부산, 남해 해산물과 왜물(倭物)의 수운이 영남내륙까지 이어졌다.

17세기 대동법의 실시는 서문시장이 전국 3대 시장으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임난 이후 조정은 기존의 조세를 지방 특산물(공물) 대신 쌀이나 면포로 대신 내게 했는데 이 일로 민간에 상업이 장려되고, 고을마다 향시가 서서 상업이 크게 흥하게 되었다.

여기에 조운선(漕運船), 보부상들이 등장하고 유통, 물류가 발달하며 대구는 일약 영남 경제의 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상권의 신장을 배경으로 조선 후기엔 ‘서문시장에 가면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시(場市)가 흥했고 마침내 서문시장은 전국 3대 시장으로 도약하며 조선 유통, 상업, 물류의 중심이 되었다.

서문시장 4지구 내부 모습. 한상갑 기자

◆일제, 3·1만세운동 이후 서문시장 강제로 이전=일제강점기에도 서문시장은 발전을 거듭했다. 권 교수는 ‘서문시장은 대구 근교 향시의 심장부로 작용했고 2, 7 장날에는 영남의 상인들뿐만 아니라 서울, 평양, 원주, 공주, 광주에서도 대상(大商)들이 찾아 들었다’며 ‘그들은 시장북로 일대 여각(旅閣), 객주에 투숙하며 장기간, 대규모로 거래를 이어 갔다’고 적고 있다.

서문시장은 3·1 운동기 대구만세운동의 중심지로 떠오르며 일제의 집중적인 탄압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서문시장을 물리적으로 폐쇄한 일이다. 당시 서문시장은 읍성의 서문 밖 인교동 일대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당황한 일제는 장터를 강제로 이전하게 된다. 일제는 당시 늪지였던 성황당 못을 메워 여기에 서문시장을 개설했다.

최진문 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은 “일제의 표면적인 이유는 구(舊) 장터가 협소해 넓은 터로 옮긴다’는 명분이었지만 만세운동의 성지로 여겨지던 시장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못을 메우기 위해서는 많은 객토가 필요했는데 그 흙은 달성토성 주변 봉분들을 허물고 그 봉토를 실어다 썼다. 일제 입장에서는 만세 터도 없애고 문화유산인 고분군도 허물었으니 일거양득이었던 셈이다.

일제시대 식민정책에 의해 고초를 겪었던 서문시장은 6·25 동란 속에서 전쟁 특수를 맞으며 또 한 번 도약 기회를 맞는다. 이때 섬유산업을 일구던 대구는 각종 직물공업을 발전시켰고 이덕에 서문시장은 전국 최대 규모 포목 도매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57년 당시 서문시장의 하루 거래액이 대구시장 15곳의 총거래액의 절반을 차지했다고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이후 영남의 중심 상권으로 도약한 서문시장은 일제강점기, 6·25 전쟁을 겪어오며 수많은 부침을 거듭해왔다.

1980~90년대까지 대구경북의 중심상권으로 명성을 유지해 왔지만 서문시장 역시 1993년 유통시장 개방과 급격한 인구감소의 외풍을 피해 가지 못했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 대형마트들이 들어서고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등 온라인 매체들이 등장하며 급격한 상권의 쇠락을 맞게 되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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