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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경북 전통시장] (21) 예천 중앙시장조선시대 예천엔 소금배, 세곡선 왕래...중앙시장엔 옛 영화 흔적만
예천시장은 중앙시장과 상설시장이 복판의 도로를 경계로 마주하고 있다. 상가는 약 70여곳으로 아담하지만 식당, 반찬, 해물, 야채, 과일, 분식 등 모든 생필품들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한상갑 기자

예천의 정체성을 잘 대표하는 유적 중 하나가 ‘삼강나루’다. 보기에 낭만적인 풍광으로 비처지지만 삼강나루는 조선시대 영남지역의 조운(漕運), 세곡, 교역품이 남한강 수계를 거쳐 서울로 통하던 수운(水運)의 통로였다.

삼강나루 한 켠엔 1960년대까지 운영되던 삼강주막이 있다. 보기에 남루해도 이곳은 당시 보부상, 노꾼, 길손들이 묵던 숙소이자 유통의 거점이었다.

얼마 전 삼강주막 근처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됐다. 유물 중 특히 주목을 끈 것은 화산암 성분의 석기들이었다. 전문가들은 화산지대가 아닌 예천에서 화산암 성분 석기가 발견된 것은 북방에서 전래된 외부 문화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삼강리 일대는 구석기시대부터 북방 계열과 한반도 남해안 세력이 드나들던 교역의 통로였다는 얘기가 된다.

오늘 방문할 예천 중앙시장은 회룡포-삼강주막을 거쳐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수운(水運)의 한 통로인 한천(漢川)에 자리 잡고 있다. 영남 내륙의 수로, 물류 벨트의 한 축을 담당했던 예천으로 떠나 보자.

◆조선시대 낙동강-내성천엔 소금배, 세곡선 왕래=앞서 선사시대 삼강주막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언급했지만 현대로 넘어와 유통, 물류의 입장에서 예천은 그렇게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다.

우선 시세(市勢)가 약해 일정 규모 이상의 상권을 형성하기 힘들었고, 둘째는 영남의 산간 내륙에 위치해 물류나 교통에서도 소외됐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상주, 문경이 새재를 통해 서울로 통하는 육로(陸路) 상권을 열어갔고, 봉화나 청송이 동해와의 연결성을 통해 내륙-해양 사이 중계상권을 확보했던데 비해 예천은 뚜렷한 지정학적 역할을 찾기 힘들었다. 단지 주변에 영주, 문경, 상주, 안동 등 대도시 사이에서 유통의 통로와 중계 상권지로 기능하며 중소상권을 유지해왔다.

예천이 이 정도나마 상권을 유지하고 도시세를 키워간 것은 낙동강의 음덕이 컸다. 강이 물류의 중요기능을 수행했던 조선시대 예천과 안동은 낙동강-내성천으로 연결 돼 소금배와 세곡선의 출입이 빈번했다.

예천의 곳곳엔 노꾼들과 보부상, 나그네들을 위한 나루터가 들어섰고 이들의 숙식을 위한 주막이 발달했다. 이 때문에 예천 전통시장들은 현재의 예천읍 지역보다 용궁이나 풍양면 등 나루터 지역에서 먼저 자리를 잡았다.

시장의 내부 모습. 예천의 명물 참기름집이 10여곳이 성업중이다.

◆1980년대 초 주택가 생필품 공급위해 장터 열려=이제 오늘의 목적지 예천 중앙시장으로 들어가보자.

경북 북부의 주변 도시에 머무르던 예천에 한줄기 서광이 비치게 되는데 그것은 1928년에 개통된 점촌-예천 철도였다. 3년 뒤 1931년엔 예천-안동 노선이 개통되며 예천은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교통망 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경북선 덕에 예천은 물자의 집산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고, 생활권도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또 1960~80년대 탄광산업의 발달로 열차 화물과 근로자들이 모이며 예천은 호황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이 특수는 1990년대 이후 탄광산업의 쇠퇴와 주변에 고속도로들이 잇따라 개통되면서 반짝 호황에 그치고 말았다.

예천 중앙시장이 들어선 건 1980년대 초. 아마 지금 예천읍 일대에 신시가지가 건설되고 노상리, 노하리, 백전리 일대 주택단지가 들어서며 시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중앙시장은 그에 대한 대안이었다.

보통의 전통시장이 수백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시장 설립 배경에 관련한 화려한 스토리텔링을 자랑하지만 중앙시장은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다. 행정적 필요에 의한 관(官) 주도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전체 면적은 7,000㎡로 보통 주변 군 단위 시장에 비해 작은 편이다. 딱 예천 군민들이 생필품을 조달하는 자급형 시장 규모다.

예천시장은 중앙시장과 상설시장이 복판의 도로를 경계로 마주하고 있다. 이름이 다르다고 시장 기능이나 상권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오랜 관습에 의해 따로 구분하여 부를 따름이다. 상가는 70여곳으로 아담하지만 식당, 반찬, 해물, 야채, 과일, 분식 등 모든 생필품들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시장 동편의 노점상거리. 2, 7장날이면 인근의 노점상들이 모여 제법 큰 장세를 형성한다.

◆예천 참깨로 짠 참기름 전국서 주문 밀려=시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미각을 자극한다. 전통 방식으로 기름을 짜는 방앗간이 10군데 쯤 된다. 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제유소’는 한자리에서 30년 넘게 기름을 짜고 있다. 깨볶는기계, 건조기, 압축기까지 모두 옛날 기계를 그대로 쓰고 있다. 기계들이 거의 골동품 수준으로 연식이 오래된 탓에 모든 공정도 수작업으로 이루어지지만 이 방식에 익숙한 단골들이 찾아주는 덕에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주인은 “예천은 땅이 비옥하고 강수량이 적어 참깨 재배에 좋은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며 “덕분에 예천 참깨는 알이 굵고 향이 뛰어나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고 말한다.

참기름 외 콩, 팥 같은 잡곡류와 고추(청양) 등 야채들도 시장의 주요거래품들이다. 이는 예천역 근처 도심 외에는 대부분 밭, 평야지대라서 잡곡, 채소, 생산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평소 한산하던 중앙시장도 2, 7일 장날은 북새통을 이룬다. 몇해전 좁은 장터에 상권을 놓고 시장 상인들과 노점상들이 갈등을 빚다가 시장의 동편 주차장, 공터에 외지 상인들을 위한 노점을 따로 마련해 갈등을 없앴다. 이 덕에 장날이면 예천의 토박이들은 물론 문경, 영주, 봉화, 청송의 노점들도 한꺼번에 몰려들어 큰 장세를 형성한다.

손수 재배한 가죽나물과 풋고추, 상추를 팔러 나온 한 할머니는 “장날은 우리 같은 노인네들에겐 사람 구경하는 날”이라며 “다 팔아도 3~4만원 남짓 하지만 이렇게 시장에 나오면 하루해가 금방 가버린다”고 말한다.

고대부터 한반도 남부의 수운, 물류의 중요 기능을 수행했던 예천의 한천, 내성천, 낙동강은 근대 이후 육로ㅡ 철도교통이 발달하며 이제 그 흔적만 남아있다.

지금은 회룡포, 삼강주막처럼 관광지로 조성돼 물새가 날고, 은빛물결 반짝이는 낭만의 공간으로 변했다. 그래도 삼강나루 한켠에 기대어 눈을 감으면 북방 노꾼들의 거친 노동요와 남해 소금배 상인들의 시끌벅적한 흥정소리를 추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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