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현장 기획/시리즈
[문화 & 피플] ‘라일락뜨락 1956’ 권도훈 대표상화 생가터에 한옥 카페... 올봄 라일락 시즌 땐 연일 만원
‘라일락뜨락 1956’ 권도훈 대표가 라일락 나무 앞에서 카페의 내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T.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황폐한 사회상황을 묘사한 이 시는 뜻밖에 다음 줄에서 ‘라일락’을 등장시키며 시상(詩想)을 묘한 반전으로 이끈다.

‘잠든 (라일락)뿌리를 봄비로 깨우며’ 인류를 구원과 생명의 길로 안내하는 시인의 은유(隱喩) 에서 독자들은 시대적 우울에서 잠시 벗어난다.

대구에는 유독 라일락 군락지와 고목이 많다. 이 나무를 많이 심은 것에 그치지 않고 오래토록 가꾸고 감상했다는 뜻이다. 계산성당, 달성공원, 청라언덕, 신명고 등지에는 직경 50cm급 라일락들이 해마다 4월이면 진한 꽃향기를 안개처럼 뿌린다.

꽃이 피고 짐은 일상이고 반복적인 일이지만, 올해 4월 유독 심한 라일락 앓이를 한 곳이 있다. 바로 대구시 중구에 있는 ‘라일락뜨락 1956’ 카페다. (이곳은 상화시인의 생가터로 정원엔 수령 200년이 넘은 라일락 한그루가 있다.)

정원에서 라일락꽃이 피고 진 2주 동안 이 카페엔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찾아와 꽃을 맞았고, 커피 한잔으로 보랏빛꽃이 퇴장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라일락뜨락 1956 권도훈 대표를 만나 상화시인과 라일락꽃의 운명적 만남에 대해 들어보았다.

◆상화 생가에서 라일락 보고 ‘한옥 카페’ 영감 얻어=권 대표와 이상화 생가와 만남은 3년 전 근대골목 투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산동 상화고택만 알고 있던 그에게 또 다른 상화 생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문로 2가 생가 터를 방문한 그에게 작은 라일락이 눈에 들어왔다. 곧게 서지도 못하고 길게 옆으로 누운 나무에 4~5개 가지가 위로 뻗어 힘겹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기형에 가까운 나무였다.(상화가 시로써 일제에 저항했다면 이 나무는 몸을 비틀어 그 뜻을 함께 했을 것이다)

“수령이 200년 이면 이 나무는 상화의 유년시절과 성장기를 지켜봤을 겁니다. 유년 시절엔 목마처럼 타고 놀았겠고, 청년 시절엔 이 나무 그늘에서 시를 끄적였겠죠. 상화 육필원고나 행적도 소중하지만 상화의 유년시절을 지켜본 이 나무야 말로 진정한 상화의 유품이 아닐까요?”

마침 바리스타에 관심이 있어 적당한 카페 후보지를 물색하던 권 대표는 주저하지 않고 이 생가를 사들였다. 지은 지 60년이 넘는 한옥을 개조 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60년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집에 깃든 공학과 철학을 살펴야했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의 콘셉트는 ‘모던(modern)한 한옥’. 양립(兩立)하기 어려운 이 주제를 위해 권 대표는 6개월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한옥 천장에 진흙을 노출시켜 거친 질감을 강조하는 한편 벽면은 깔끔한 흰색 면으로 꾸며 대비효과를 줬다. 오래된 나무 기둥들도 그대로 살려 건물의 원형과 자연미를 한껏 살렸다. 반년의 노력 끝에 ‘라일락뜨락 1956’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상화 커피 입소문, 전국에서 마니아들 찾아와=라일락 나무와 상화의 생가에 반해 덜컥 카페까지 질러(?)버린 권 대표는 이런 상징들을 하나씩 카페에 아이템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제일 먼저 선 보인 것은 ‘이상화 커피’. 상화 생가와 카페 본업인 차를 네이밍한 상품이었다.

상화는 일본에 유학했던 모던보이 였으니 일찍부터 커피를 접했을 것이라는 상상과 라일락향, 생가의 추억을 차 한잔에 담아 보자는 구상이었다.

“일본 이바라키현 히타치나카시에 ‘도쿠가와 장군 커피’라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1998년도에 방영된 드라마 ‘도쿠가와 요시노부’에서 커피를 대접하는 장면에 힌트를 얻어 한 커피 회사가 만든 제품입니다. 이 드라마가 일본 전역에서 인기를 끌면서 이 커피도, 이바라키현도 덩달아 유명해졌죠.”

‘잘 만든 커피 하나가 한 마을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데에서 착안한 상화 커피는 바로 이 도쿠가와 커피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상화 커피 원료는 만델링(Mandheling)을 쓴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재배되던 최고급 커피로, 도쿠가와 커피 재료도 만델링을 썼다. 만델링을 약한 배전(로스팅 강도) 단계인 풀-시티(Full-City) 로스팅해 신맛은 거의 없고 쓴맛과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상화 커피가 소문이 나면서 커피 전문가나 마니아들이 전국에서 찾아와 만델링의 진한 풍미에 빠져든다.

‘라일락뜨락 1956’ 내부 모습. 매일신문 제공

◆전시회, 공연 등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코로나-19 창궐 중 권 대표가 벌인 이벤트, 퍼포먼스도 지역 사이에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구에 코로나가 발병한 초기 당시 거점병원이었던 동산병원은 전국에서 모여든 의료진들이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의사들이 커피 공급이 차단돼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권 대표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더치커피 제조장비를 구입해 양산(量産)에 들어갔다. 수류탄 모양의 더치커피 ‘희망커피 폭탄’은 이렇게 탄생했다.

2020년 2월 권 대표는 외부접근이 차단된 의료진들에게 커피 ‘투척’에 나섰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커피 ‘투하’는 대가대병원, 동산의료원 등에 10차까지 이어지며 지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밖에 봄이면 입춘첩을 직접 제작해 카페 손님에게 나눠준 일과 라일락 뜨락에서 무관객으로 콘서트, 연극, 클래식 공연을(유투브 생중계) 연 일은 카페가 단순한 영업시설에 그치지 않고 지역 사회에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카페인 문화예술인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잦다. 한옥에서 회화적 상상을 펼치고, 라일락 나무를 보며 시심을 떠올렸다는 블로거들의 후기도 눈에 띈다.

특히 올 라일락 시즌인 4월에 가장 손님이 붐볐다. 보랏빛 꽃잎이 유난히 선명하고, 향도 유난히 짙었기 때문이다.

“올 4월은 가히 ‘라일락 홍역’이라고 부를 만 했습니다. 2~3주 동안은 서빙하느라, 손님 맞느라 정신없이 보냈으니까요. 내년 4월에 다시 라일락 시즌이 오면 카페에서 ‘라일락 축제’를 열어 지역민들과 꽃향기와 한옥의 정감과 상화 시심(詩心)을 함께 나눌 계획입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저작권자 © 디지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상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