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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경북 전통시장] (23) 경주 건천전통시장일제시대 건천역 들어서며 영천-경주의 물류, 유통 중심지로
장날 인파로 붐비는 건천전통시장. 한상갑 기자

마른 강, 바닥을 드러낸 하천?

‘건천’(乾川)이란 지명을 또 올리면 ‘삭막한 황무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사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름이 주는 도시 이미지와는 달리 건천은 역사, 문화적으로 유래가 깊은 곳이다. 신라 시조가 육부촌을 세울 때 세 번째로 점지한 땅(모량부)이고, 혁거세가 하늘로부터 받은 금자(金尺)를 뺏기지 않으려고 가짜 무덤(금척고분군)을 만들어 숨겼다는 곳이다.

또 백제군의 침공을 선덕여왕의 기지로 막아냈다는 여근곡(女根谷), 옥문지(玉門池)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신라 건국 초기 경주의 주요 근거지, 요충지로 기능했던 건천은 역사 속에서 잠시 잊혀지게 된다. 삼국 통일 후 신라가 전국으로 팽창하며 한반도 전체를 경영하는데 분주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건천은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일제 강점기였다.

1910년대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 강화와 미곡, 자원 수탈을 위해 대대적인 철도, 도로 등 교통망 확충에 나선다. 조선중앙철도부설계획에 의해 설립된 ‘중앙선’도 이 중 하나였다. 이 철도가 개통되면서 청량리-경주 사이 간이역이었던 건천역은 안동, 영천과 경주를 연결하는 유통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 철도가 열리면서 건천엔 인구와 화물이 몰려들었고 이들의 의식주 해결을 위한 시장이 들어서게 된다.

건천시장의 농기구 판매 노점 모습.

◆1914년 일제강점기 건천역 들어서며 여객·화물 집중=건천시장 설립연도는 1914년. 앞서 언급한대로 일제의 무단 통치가 본격화 되면서 식민 수탈이 심화되는 시기다.

이 시기 일제는 청량리와 경주를 연결하는 중앙선을 개설했다. 경부선이 서울-대전-대구 부산으로 연결 되는 여객·화물 중심 철도 운송체계 였다면, 중앙선은 청량리와 양평-원주-제천-영주-안동-영천-경주를 연결하는 화물 위주 노선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 철도를 따라 시멘트, 무연탄, 목재 등 화물이 운반되었다. 식민지수탈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 중앙선엔 40~50량씩 연결된 화물 열차들이 쉴 새 없이 중부 내륙을 오갔다고 한다.

이 시기에 들어선 건천장은 역을 오가던 화물 인부, 일본인 상인, 철도직원들의 의식주 수단으로 기능했다. 건천역 자체가 간이역이었기 때문에 왜관이나 대구처럼 일인(日人)숙소, 유곽같은 대규모 시설이 들어선 것 같지는 않고 음식, 숙소제공에만 충실했던 것 같다 .

자료를 뒤져봐도 당시 건천장의 규모에 대한 기록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역 광장에 시골 아낙네들이 행상을 펼치고  역 주변에 주막이나 여관을 따라 인부, 직원들이 식사, 술자리를 찾는 정도였던 것 같다.

영천과 경주 사이 작은 마을 건천이 존재감을 뽐낸 이유는 광범위 도로교통망을 끼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지역민들이 산업도로라고 부르는 4번국도, 20번국도도 통과한다. 이런 도로망 기반 하에서 건천의 전통시장은 지역 물류와 유통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잠시 건천의 도시 위상을 높여주던 이들 교통망은 세월이 흐르면서 곧 ‘독배’가 되어 날아오게 된다. 이른바 ‘빨대 효과’였다.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지역의 유지들이나 큰손들이 경주, 대구, 영천으로 원정 쇼핑을 가면서 지역 경제가 되레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또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대형마트의 등장, 이농(離農), 농촌인구 감소도 건천의 상권을 급속히 위축시켰다.

이에 경주시는 2015년부터 시설현대화사업을 벌여 시장을 새롭게 단장했다. 사업비 25억원을 투입한 이 프로젝트 덕에 건천시장은 지상 1층 4동 규모의 현대식 시설로 거듭나게 되었다.

건천시장 동쪽에 있는 노점상거리.

◆5, 10 장날엔 인근 장꾼, 노점상들로 혼잡=경주시의 집중투자와 지역민들의 관심, 교통도시의 전통이 남아서인지 건천엔 아직도 오일장 전통이 잘남아 있다. 5, 10 장날이면 시장 입구의 도로는 물론 동쪽 주차장 근처엔 인근에서 몰려든 장꾼, 노점상들로 혼잡을 이룬다.

시장에는 의류, 신발, 제철 과일·채소부터 해산물, 건어물, 철물, 농기구까지 온갖 상품들이 장터를 가득 메운다. 노점, 트럭들이 각기 구역에서 정리·정돈된 매대(賣臺)를 설치한 것으로 보아 인근 오일장을 순회하는 전문 노점상들인 것 같다.

등산복, 등산화를 싣고 온 한 노점상은 “건천장은 주차가 편하고 시장이 쾌적해 인근에 다른 오일장이 겹쳐도 꼭 이곳으로 온다”고 말한다.

어느 오일장이 다 그렇듯 시장을 찾는 분들은 대부분 60~70대 어르신들이다. 꼭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기분전환 삼아, 장터 구경 삼아 시장으로 들른다.

장터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왔는데 메뉴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며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입맛에 끌리는 반찬을 사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골어탕’의 어탕.  사진 출처=이랑주 시장 큐레이터

◆‘시골어탕’ ‘시장식당’ 등 전국구급 맛집 성업=경주의 조그만 읍시장에 맛집이 있을까? 건천시장은 이런 조롱(?)에 일침을 날리는 시장이다. TV 맛집에 소개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건천시장엔 TV에 소개된 식당이 두 곳이나 있다. 전국 맛집으로 촉수를 펼치고 있는 방송국 PD들의 안테나에 포착됐다는 것은 자체로 맛 검증을 마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골어탕=제일 먼저 맛객들이 발길 끄는 곳은 시장 입구에 시골어탕이다. 2017년 2TV ‘생생 정보’에 소개되어  몇 년 동안 탐방 인파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방송초기 장날엔 번호표 뽑고 대기줄을 설 정도로 인파를 자랑했다. 블로거들의 방문 후기에 보면 ‘해장하러 왔다가(국물 맛에 반 해 술을 들이키다)기어서 나왔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천년초 메기를 재료를 쓰며 어탕수제비, 어탕칼국수, 추어탕, 메기매운탕이 주 메뉴다.

▶영남식육식당=한우 전문점 영남식육식당 역시 2017년 TV ‘맛있을지도’에 소개된 맛집이다. 현지 축산 농가와 직거래로 부채살, 안창살이 120g에 2만원. 일반 식당보다 30% 이상 저렴하다. 특별한 맛이나 서비스보다 ‘신선한 한우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 후식으로 먹는 된장국수, 소고기뭇국도 필수 메뉴로 꼽힌다.

▶시장식당=위의 맛집들이 방송 소개를 통해 전국 맛집 반열에 올랐다며 시장식당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토종 맛집이다.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과 넉넉한 양’ 때문이다.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돼지수육 한 접시에 1만원이다. 현지인들은 여기에 경주생막걸리를 곁들여 먹는 것을 최고의 조합으로 친다. 막걸리와 수육으로 텁텁해진 입은 잔치국수로 입가심을 한다. 쫄깃한 면발과 진한 멸치육수가 조화를 이루는 국수, 칼국수는 현지 주민들을 연중 시장으로 불러들인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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