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중앙시장은 1900년대 초에 개설돼 약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중앙시장 주 출입구 중 하나인 4문. 한상갑 기자

문명교류사에서 신라처럼 흥미로운 곳도 드물다. 바로 실크로드와 관련된 유물 때문이다.

1973년 발굴된 경주 황남대총에서는 12점 이상의 흑해, 지중해, 중앙아시아 로마양식 유리그릇들이 출토되었다. 당시 신라엔 유리 제작기술이 없었으니 이 그릇들은 유라시아 지역에서 온 것들이 분명하다.

계림로 14호분에선 ‘계림로 보검’이 발견됐다. 이 검에는 신라에는 없는 누금(鏤金, granulation)기법이 적용됐다. 이 양식의 검은 카자흐스탄, 중국 신장 위그루에서도 발견돼 유라시아의 끝단 신라가 실크로드 경로에 당당히 포함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세계를 향해 문명교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신라인의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장터 DNA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유라시아를 넘나들던 고대 신라인의 장터 DNA는 경주에서 다시 발견되고 있다. 현재 경주엔 중앙시장, 성동시장, 불국사공설시장, 안강시장, 건천시장 등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도시 세에 비해 시장 규모도 크고 상권도 안정되어 있는 편이다. 경주의 한복판에서 경주 상권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경주 중앙시장을 돌아보았다.

◆5세기 전후 경주에는 벌써 ‘시장’ 등장 기록=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해 5세기 이전부터 시장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소지왕 12년(490)에 설립되었다는 경도시(京都市), 지증왕 10년(590) 들어섰다는 동시(東市) 등 기록들이 그것이다.

전성기 신라는 수도 중심부엔 17만호 이상이 거주해 인구가 100만에 이르렀을 정도 도시세를 유지했다. 시내엔 기와집이 즐비했고 숯으로 밥을 지었다고하니 이 당시 경주의 풍요성을 짐작할 만하다.

이런 경제력을 기반으로 월성, 동궁엔 대식국(大食國) 상인들이 거리를 누비고, 감포·울산항엔 아라비아 상인들이 비단과 향료, 그릇들을 실어 날랐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도 장시(場市)에 대한 기록이 자주 보이는데 사평장(1, 6일), 구어장(3, 8일), 읍내장(2, 7일), 부내장, 대창장 등 개시(開市) 기록이 나타난다.

일제강점기에도 오일장의 장세(場勢)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특히 조선시대 경주부(慶州府)의 근거지였던 부내장(府內場)은 대구의 부내장과 더불어 영남의 2대 시장에 손 꼽혔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 일제강점기에 경주가 상업도시로 위상을 떨친 데는 중앙선과 대구선의 경주 통과 영향이 가장 컸다. 당시 도로교통이 부진하던 시기 대부분 물류, 화물 운송은 철도가 담당했는데 철도역이 들어선 지역은 일찍부터 교통, 상업도시로 쉽게 성장할 수 있었다.

더욱이 1930년대 포항과 일본 서북부를 있는 동해횡단항로가 개설되며 경주엔 포항으로 향하는 화물, 여객들이 집중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상업, 물류도시로 발전을 거듭해 갈 수 있었다.

시장 내부 모습.

◆1900년대 중부·성건동 상권 기반 중앙시장 개설=경주 중앙시장 역사는 1900년도 초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경부선이 건설되며 경주는 영남 남부 상업도시로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1918년 개통된 대구-경주-포항 간 대구선도 경주를 물류 도시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기차 역의 개통은 화물과 여객의 집중을 부르고 이는 상업도시로 발전과 직결된다.

이 시기 경주에는 전통시장이 들어서게 되는데 대표적인 곳이 경주역을 기반으로 한 성동시장과 중부동 상권에 기반을 둔 중앙시장이었다. 흔히 경주역의 위쪽에 자리한 성동시장을 ‘윗시장’, 역 아래 쪽에 위치한 중앙시장을 ‘아랫시장’이라고 불렀다.

성동시장이 대규모 역세권을 기반으로 한 공설시장 성격이었다면, 중앙시장은 중부·성건동 주택가와 경주시외버스터미널·고속터미널에 상권을 기반으로 한 민간시장 성격이었다.

1900년대 보부상 시절부터 전통을 이어오던 중앙시장은 1983년 현재의 자리에 현대식 상가 건물을 짓고 정식 개설되었다. 시장의 전체면적은 11,053㎡, 11개동에 약 700여개의 점포와 100여명의 노점상들이 현재 영업 중이다.

중앙시장 야시장 풍경. 경주시 제공

◆2016년 개장한 야시장 경주의 핫플레이스로=중앙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상품 중 하나는 돔배기. 대구, 영천, 경산 등 영남권 전통시장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돔배기는 신라시대부터 제사상에 오른 음식으로 유명하다. 옛날 통일신라시대 대구 불로동, 경산 임당고분군에서 상어 뼈가 출토돼 관심을 끈 바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백년가게’로 공식 지정된 ‘대남통닭’도 중앙시장의 빠뜨릴 수 없는 맛집 중 하나. 1989년에 오픈 한 후 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매운 고추를 넣어 얼큰한 맛이 일품인 땡초마늘치킨과 양념치킨, 프라이드치킨이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

현지인이 많이 찾는다는 ‘울산소머리곰탕’도 중앙시장에 필수코스. 30년 전통에 돼지국밥과 암뽕도 함께 취급한다. 국산 한우머리고기만을 쓰며 누린내, 잡내를 완벽하게 잡아낸 깔끔한 국물로 유명하다. 하얀 국물에 고기가 넉넉하게 들어가 수육을 별도로 시키지 않아도 반주를 곁들일 수 있다. 가게 안에 다른 집 보다 유독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한 블로거는 ‘이게 바로 맛집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라고 표현하고 있다.

낮 시간에 맛집을 찾아 나서는 일은 밤에는 필요 없게 된다. 바로 중앙시장의 명물 야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정식으로 개장한 야시장은 시장 북쪽편 길가에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20여개 매대를 펼쳐놓았다. 케밥, 칼국수는 물론 육전, 새우튀김, 문어꼬치, 닭강정 등 요리가 준비돼 식성대로 메뉴를 선택하면 된다. 최근 상인연합회는 ‘만원의 행복 빅4’ 상품권을 출시해 관광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네 칸으로 나눈 그릇을 들고 점보 내 네 가지 메뉴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즐길 수 있다. 시장 중앙에 테이블을 마련해 관광객들은 시장에서 열어 주류, 요리, 음료를 구입한 후 함께 즐길 수 있다. 

정동식 경북상인연합회장은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낮에 유적지를 둘러보지만, 밤엔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말을 듣고 힌트를 얻었다”며 “다행히 현재 야시장은 전국적인 명소로 떠올라 타지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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