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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경북 전통시장] (31) 김천 평화시장6·25 직후 피란민들이 김천역 앞서 난전 펼치며 시장 형성
김천 평화시장은 삼국시대부터 역참도시 전통을 이어와 그 역사만 해도 1200년 이상이 된다. 사진은 평화시장 내부모습. 한국관광공사 제공

이름부터 ‘평화’로운 평화시장은 전국에 7~8곳이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평화시장(동대문, 청계천 일대), 부산 평화시장(범일동)과 대구 평화시장(신암동)과 이번에 소개할 김천 평화시장(평화동)이다.

이들 평화시장의 공통점은 광복 직후, 한국전쟁 때 월남한 피란민들이 형성한 시장이라는 점. 이들은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모두 평화시장으로 명명(命名)했다고 한다.

일종의 ‘평화’를 슬로건으로 내건 프랜차이즈시장인 셈인데 이 시장들은 연대의식을 공유하며 각 지역의 전통시장으로 뿌리를 내렸다.

해방직후 김천역 일대에는 각처에서 몰려든 귀향 동포와 월남 피란민들이 임시 포장을 치고 난전을 열었다. 전후 포연(砲煙) 속에서 시장을 일군 평화시장은 1960~70년대 지역 전통시장 상권의 주축을 이루며 황금시장과 함께 김천의 양대 전통시장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평화시장 일대는 신라 때부터 역원(驛院) 번창=일찍부터 영남 내륙의 중심도시로 성장한 김천은 상주와 성주, 선산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충청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접경지역에 위치해 고대부터 군사, 경제, 교통의 중심지로 주목을 받아왔다.

사통팔달의 교통도시 김천엔 고대부터 역(驛)이 발달했다. ‘고려사 병지역참조’(高麗史 兵志驛站條)에 첫 등장하는 김천의 역(驛)은 조선 세종대 이르러 ‘김천도’(金泉道)라는 광역 역참으로 승격하게 된다.

이때부터 김천도는 본 역인 김천역을 비롯 추풍령역, 무계역(성주), 범어역(대구), 약목신역 등 17개의 속역(屬驛)을 거느리며 역참(驛站)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 당시 김천역엔 아전, 역졸, 일꾼들이 1천여 명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역촌을 형성했다고 한다. 현재 국도 3호선, 4호선 등 김천을 통과하는 주요 간선도로들은 전통시대 역참의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김천 역원(驛院)의 중심이었던 김천역의 위치가 남산동 김천초등학교 일대에 위치했다고 하는데 현재 평화시장의 위치와 거의 같다.

한때 김천시는 ‘역원(驛院)도시 김천’을 콘셉트로 평화시장을 ‘평화역참 시장’으로 개명하기도 했다. 이는 평화남산동 일대가 신라시대부터 물류, 교통의 중심지였고 조선시대 역참(驛站)도시로 융성했던 전통을 잇는다는 취지에서였다.

◆황금·평화·감포·부곡·중앙시장 등 5곳 전통시장 성업=1960~80년대 전통시장이 활성화되었을 때 김천엔 골목마다 재래시장이 골목상권을 담당했다.

산업화시대 이후 현재 김천에는 황금시장, 평화시장, 감포시장, 부곡시장, 중앙시장 등 5개의 상설시장이 운영 중이다.

조선시대 전국 5대장 중 하나였던 김천장의 전통을 이은 황금시장은 초창기에는 마늘, 고추, 양파, 잡곡 등 농산물이 주거래 품목 이었으나 김천 상권 최요지 이점을 살려 종합시장으로 부상했다. 요즘 하루 평균 이용객은 1천 명 정도지만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인근에서 몰려든 노점상들과 장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1954년 개설돼 68년 전통을 이어온 감호시장은 한때 김천의 메이저 시장 중 하나로 분류되었으나 6.25 전쟁 통에 시장 건물 상당수가 불에 타는 아픔을 겪었다. 화재 탓에 상권이 분산되고, 그나마 단골손님들도 다른 시장으로 발길을 돌려 지금은 변두리 시장으로 변했다.

현재 감호시장은 의류점포, 식당 몇 곳이 영업을 하고 있는 정도이고 장날(5, 10일) 외에는 크게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1969년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부곡동 개발의 후광으로 생겨난 부곡시장도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1980년 현대식 건물로 새단장한 부곡시장은 현재 1층(30곳) 2층(20곳)에 50개 점포가 운영 중이다.

◆대성암본가초밥, 돼지국밥집 등 맛집 유명=조선 시대 역원(驛院)의 전통을 잇고 있는 평화시장은 김천역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선시대 김천역엔 공물(貢物), 세곡(稅穀)들이 우마에 실려 전국으로 실려 갔고 이를 감독하는 역졸, 아전, 장꾼들의 흥정소리로 밤낮을 밝히던 곳이었다.

황금시장에 주도권을 내주고 잠시 주춤하던 김천역 일대는 6.25 동란을 맞아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역전(驛前)시장으로 다시 한 번 부흥의 전기를 맞았다. 김천역을 배경으로 난전(亂廛)을 펼치던 상인들은 1978년 김천시에서 정식으로 시장 개설허가를 얻어 공설시장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설립 당시 176개 점포를 거느리며 매머드 상권을 구축했던 평화시장은 40여년이 지난 지금 110여곳 중소시장으로 위축되었다.

그래도 김천역을 중심으로 한 대로변 상권과 배후의 전통시장이 조화를 이루어 브랜드를 쫓는 젊은이들은 대로변 상가에서, 바로 뒤편 시장골목에서는 노점들이 각자 상권을 지키며 공존하고 있다.

평화시장은 오랜 역사와 시간만큼 맛집들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대성암본가초밥집’ 이다. 1939년 창업해 3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다.

정창호 대표는 쌀도정 상태와 날씨를 체크하고 기온과 습도까지 고려해 그날그날 레시피를 달리한다고 한다. 대표메뉴로 생선초밥, 유부초밥, 김초밥, 어묵탕, 우동, 소바가 있다.

토종 왕순대를 1만 2천원(소자)에 받는 마포국밥, 5~6가지 뒷고기와 순대를 1만원대에 넉넉히 내주는 유정식당도 시장의 맛집 반열에 올라 있다.

김천 평화시장은 삼국시대부터 역참도시 전통을 이어왔으니 그 역사만 해도 1200년 이상이 된다. 전국에서도 유래가 드문 ‘밀레니엄 시장’인 셈인데 평화시장이 1천년 시장 역사를 잘 계승하기를 기원한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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