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봉황시장 내부 모습. 구미시 제공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고 설파했다.

‘조선인재반재영남, 영남인재반재선산’(朝鮮人才 半在嶺南, 嶺南人才 半在善山). 오늘날 이 말은 선산 읍민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구가 아닌가 한다.

선산은 영남 사림의 기반을 구축한 김숙자, 길재, 하위지, 김종직 등을 배출한 한국의 대표적인 추로지향(鄒魯之鄕)이다. 특히 선산에선 과거 급제자가 15명이나 배출돼 ‘장원방’(壯元坊)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파워 엘리트의 요람으로 일찍부터 자리를 굳혀온 선산, 그러나 오늘의 주제인 전통시장, 오일장으로 넘어가면 관련 기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조선 초기(태종)에 시장이 건설되었고, 그 전통이 근대까지 이어졌다’는 희미한 기록만 전해진다. 그러나 자료가 없다고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므로 다양한 퍼즐을 맞추다 보면 선산시장의 전통과 역사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인재향’(人材鄕) 선산을 지탱해준 경제적 기반, 오일장을 찾아 선산으로 떠나보자.

◆조선시대 낙동강 물길, 영남대로의 길목에 위치=신라시대 일선주(一善州), 숭선군(崇善郡)으로 불리던 선산은 고려시대에 들어와 선주부(善州部), 조선시대 일선현(一善縣), 선산군 등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는데 도호부는 부사(府使:종3품)가 파견되는 행정기관으로, 종2품 부윤(府尹)이 파견되는 안동, 상주보다는 읍격이 좀 낮았지만 주변의 일반 군현(郡縣) 보다는 도시 세가 훨씬 컸다. 지금으로 치면 경산, 구미, 김천 정도의 인구·경제규모를 갖춘 셈인데 상주와 김천사이 조그만 소도시가 도호부 급으로 발전한 데는 낙동강 수역에 위치했던 ‘덕’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선산의 동쪽엔 경상도의 젓 줄인 낙동강이 통과하고, 남쪽으로는 낙동강 지류인 감천이 합류한다. 바로 이 낙동강 수운(水運) 길목에 선산이 위치했는데 이런 입지는 조선 초기 선산을 경북의 중급 도시로 성장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선산에는 관청에서 운영하는 나루 여차니진(餘次尼津)이 있었다. 이 나루는 영남대로와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수륙(水陸) 물류와 교통의 요지로 역할을 했다.

김성우 대구한의대 교수는 “선산에서 상주 낙동나루터에 이르는 25km 구간은 낙동강과 영남대로가 나란히 달리는 구간”이라며 “이 구간은 낙동강 물동량의 50%, 영남대로 물류의 25%가 몰리는 경상도 대표적인 교통, 물류의 핵심이었다”고 평가했다.

조선시대 선산의 발전을 견인한 요인은 또 있다. 바로 조선시대 내륙 물류 교통의 핵심인 ‘영남대로’다. 선산은 영남대로의 허리에서 칠곡과 상주를 이어주던 역할을 했다. 특히 선산-상주 구간은 앞서 언급한 대로 영남대로와 낙동강이 통과해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선산 여차니진 나루터에는 즉석 장터로 연일 흥청=전통시대 나루터는 자체로 장터 기능도 함께 수행했다. 각지의 특산물과 여객이 몰리는 나루터에서 장터가 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더구나 여차니진은 관에서 운영하는 관진(官津) 이었기에 조세미, 염창(鹽倉), 조운창 등 건물들이 들어섰고 이런 시설을 관리하는 도선군(導船軍)이 파견돼 장터가 더욱 활성화되었다.

이하석 시인은 “부산에서 해산물, 소금을 싣고 온 배들은 물건을 다 팔고 나면 빈 배에 선산, 의성 등지에서 수확된 쌀, 보리, 콩, 팥, 기장과 면화, 광석, 목기 등을 사갔다”고 말한다.

박성배 상가연합회장도 “남해와 내륙을 오가던 낙동강 나루터에는 언제나 수십 척의 배들이 정박을 했고 이들이 가져온 물건을 거래하기 위한 장이 열렸다”며 “북부 산간지역 주민들은 여기서 해산물, 소금을 사고 대신에 농산물을 내다 팔았다 ”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나루터에는 장꾼들, 보부상, 아전, 노꾼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어 주막거리, 객사 등 영업이 활발했다.

물론 선산에는 나루터장터 외에도 현재 선산문화회관 근처에서 오일장이 열렸다. 주변에 우시장도 함께 섰다는 것을 보면 규모 역시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선산의 전통시장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이유는 나루터 시장이 큰 상권을 형성 했음에도 반짝시장·번개시장의 성격을 띠어 공인성(公認性)과 기록성을 담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선산읍과 여차니진은 직선거리로 5~6km나 떨어져 있어 당시 선산읍내 상권과는 따로 구분해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나루터 시장 자체가 배의 기항과 정박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는 점과 즉석시장 형태로 열렸기 때문에 장터 기능이 전통시장, 오일장보다는 세곡(稅穀), 염창의 운용과 관련된 국가 물류에 집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선산봉황시장 내부에 있는 노브랜드 상가 모습.

◆지금도 2, 7장날엔 유동인구 1~2만 명 모여=원래 선산시장은 현재 선산문화회관 근처에서 열렸다고 한다. 문화회관-구미문화원-선산읍 행정복지센터-단계교를 연결하는 약 600m가 난전이 열리던 곳이다. 그러나 선산읍의 상권이 점차 선산읍성 근처로 옮겨오면서 선산시장은 1993년 새 건물을 짓고 단계동길로 이전했다. 약 2000여평 부지에 상설시장 2개동에 100여곳의 점포들이 문을 열고 있다.

선산시장은 상설시장으로도 운영되고 있지만 장날(2, 7일)에 특히 손님이 많기로 유명하다. 오일장 활성화는 요즘 농어촌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선산은 그 현상이 유독 두드러진다.

박성배 상가연합회장은 “선산 장날의 유동인구는 1만~2만명을 넘어서 경북의 중소도시보다도 많다”며 “이는 선산에 엣 전통시대 문화가 잘 간직되고 있다는 특성도 있지만 선산이 구미, 김천, 군위, 상주와 가까워 시장 접근성이 좋은 점도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덕에 장날 선산읍성-완전교-수문교에 이르는 약 700m엔 인근에서 몰려든 노점들로 성황을 이룬다. 집에서 직접 재배한 농작물들이 대다수이고, 인근 공장에서 생산된 농기구, 의류, 생필품, 그리고 각종 식재료, 간식거리 등이 망라된다. 대략 어림잡아도 노점만 500여 곳에 상인 수도 700여 명을 훨씬 웃돈다.

박 회장은 “1970~80년대 선산시장은 인근 김천, 문경, 상주에서 온 장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며 “당시엔 노점도 지금보다 많았고 유동인구도 2~3만명을 훨씬 넘어섰다”고 말했다. 

전통시대 선산의 전통시장은 영남대로, 낙동강 수운 기반 하에서 성장한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 여기에 조선 초 15명의 급제자를 배출할 정도의 유림의 경제적, 사회적 기반도 선산의 시장, 유통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낙동강 연안도시의 든든한 경제적 기반이었던 낙동강 물길, 영남대로는 1905년 개통된 경부선, 마산선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하루아침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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