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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경북 전통시장] (37)문경중앙시장“1970년대 문경중앙시장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죠”
문경중앙시장은 도심 상권을 배경으로 한 현대적 쇼핑 공간 느낌과 옛 전통시장의 향수를 모두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시장 입구 모습. 문경시 제공

한국의 물류, 교통, 시장 역사에서 문경처럼 변화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온 곳도 드물다.

조선 후기 문경새재는 영남과 서울을 잇는 도로,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었고 서울과 충청, 영남의 문화가 만나는 문화의 교차로 였다.

17세기부터 영남과 충청, 서울을 잇던 문화·유통의 통로로서 영남대로는 20세기 후반 이후 급격히 위상을 상실했다. 바로 현대 물류 수단의 총아인 철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1905년 경부선의 개통은 한국의 교통, 물류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놓았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보름에서 한 달까지 소요되던 물류 기간은 하루로 단축되었고, 비용도 수십 분의 1로 줄어들게 되었다.

한때 대한민국 물류, 유통의 대동맥으로 자리를 잡았던 영남대로는 산새들 한가로이 노니는 관광지로 변했고, 이제 역사·지리학자들의 학문적 영역 속에서만 남아 있다.

문경의 경제사, 유통 역사를 말할 때 1960~90년대 석탄산업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석탄은 ‘검은 황금’으로 불리며 국가 기간산업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거의 반세기 동안 문경의 경제, 사회,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건설한 경북선, 문경선, 가은선은 문경에 인부와 화물을 집중시키며 문경 경제의 활력소로 기능했다.

조선 후기부터 약 300년간 대한민국 유통, 교통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문경을 찾아 그 화려했던 흔적을 더듬어보았다.

◆1950~90년대 석탄산업으로 막대한 부(富) 축적=영남대로의 쇠퇴, 철도의 등장 이후 문경시의 교통, 상업 도시의 위상도 따라서 약화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쇠락을 거듭하던 문경은 어느 순간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데, 그 계기는 바로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석탄산업 이었다.

평안계(平安系), 대동계(大同系) 지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문경은 철, 동, 아연, 납, 중석, 휘수연(몰리브덴) 등 금속 광물과 석회석, 형석, 활석 등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특히 문경은 국내 최초로 시멘트 공장이 세워진 지역이고, 1950~90년대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대성, 봉명, 은성광업소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70년대만 해도 30여 개 탄광이 포진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당시엔 면(面) 단위에서도 극장이 들어설 정도였고, 탄광촌 주변 주점·홍등가에는 밤새 취객들과 아가씨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화석연료가 기름, 가스 등으로 대체되면서 석탄산업은 하루아침에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한때 30곳이 넘던 탄광은 1985년에 시작된 ‘석탄산업합리화’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대부분 폐업 운명을 맞았다.

일제강점기 이후 석탄산업이 문경의 곳간을 넉넉히 채워주었다면, 철도의 개설은 문경이 경북의 교통, 유통도시로 성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문경에는 경북선(1924년), 문경선(1954년)이 건설됐다. 이들 철도들은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수탈수단으로 기능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석탄 등 광물 수송에 크게 기여했다.

1960~80년대 점촌역은 문경, 가은 방면에서 채굴된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화물열차들이 줄을 지어 서있고 점촌역 일대에는 석탄광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온 사람들로 늘 북적됐다.

그러나 화려한 철도망을 자랑하며 경북의 석탄산업을 이끌던 철도들은 석탄산업의 사양화 이후 운행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거나 일부는 폐선 운명을 맞기도 했다.

문경중앙시장 ‘오! 미자네 청년몰’ 모습.

◆1950년대 역세권 배경으로 상설시장으로 뿌리내려=영남대로 길목에서 활발한 경제 활동을 펼쳤던 문경엔 일찍부터 전통시장이 발달했다.

‘임원경제지’ ‘동국문헌비고’에 의하면 문경엔 1770년대 송면장(松面場)을 비롯 3개의 오일장이 섰다는 기록이 보이고, ‘경상도읍지’엔 1880년대 읍내상장, 읍내하장, 유곡장(幽谷場), 농암장(籠巖場)이 열렸다고 쓰여져 있다. 한말엔 ‘진남(鎭南), 호남(戶南)에 장이 서 곡물, 채소, 가축이 거래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최근까지 문경장(2, 7일), 가은장(4, 9일), 동로장(3, 8일), 농암장(5, 10일)이 열렸는데 지금은 시장 기능이 대부분 사라지고 문경과 가은 등지에서만 상설장이 운영되고 있다.

문경중앙시장은 1950년대 이후 본격적인 상설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당시엔 경북선, 문경선, 가은선 등 철도 들이 막 들어서며 문경에서 석탄산업이 기지개를 펼 때이다.

문경중앙시장 최원현 상인회장은 “1960년대 초반 문경시 인구가 15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도시가 활력에 넘쳤다”며 “점촌역 일대는 경북선, 문경선에서 내리는 화물 인파로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점촌역 앞에 들어섰던 중앙시장은 문경의 전통시장 중심지이자 유통의 핵심 이었다. 40년 넘게 점포를 운영했다는 김홍식 씨는 “1970~90년대 문경중앙시장은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닐 정도로 돈이 많이 풀렸다”며 “상인들 사이에서는 문경중앙시장이 문을 닫으면 대구 서문시장도 안돌아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말한다.

문경시 제공 문경중앙시장 시장 내부 모습.

◆사과, 오미자, 약돌돼지 등 특산품 거래 활발=현재 중앙시장엔 상가 144곳이 운영 중이다. 그러나 도심에 위치해있고, 노점을 금지한 탓에 오일장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상인회 김홍식 씨는 “문경중앙시장은 도심 상설시장으로서 상권을 유지하고 전통시장, 오일장 상권은 근처 점촌시장으로 모두 넘어갔다”고 말한다. 

문경중앙시장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문경의 전통시장 역사가 잘 간직된 곳이고, 신선한 현지 직송 청과, 미곡과 생활용품 등을 잘 구비하고 있다.

최원현 상인회장은 “문경중앙시장은 도심 상권을 배경으로 한 현대적 쇼핑 공간 느낌과 옛 전통시장의 향수를 모두 누릴 수 있는 곳”이라며 “사과, 오미자, 약돌돼지 등 문경지역 특산물을 모두 한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경지역 역시 대형마트의 등장, 온라인 거래 활성화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젊은 세대들의 전통시장 외면으로 상권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이에 문경시와 상인회는 2018년 청년들의 상업 공간인 ‘오! 미자네 청년몰’을 개장해 시장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청년몰엔 각종 맛집, 미용, 특산물판매점, 아트센터들이 들어서 도심복합문화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 회장은 “문경은 조선 후기 국방, 교통, 유통의 중심지로 주목을 받았고 현대에 들어와선 석탄산업이 활성화되며 많은 부침(浮沈)이 있었다”며 “이 과정에서 지역의 전통시장, 오일장도 함께 성장, 퇴조를 반복한 특이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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