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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경북 전통시장] (38) 연재를 끝내며경북도 22개 시군 오일장 장터 역사, 맛집 빼곡히
사진은 포항 죽도시장 모습. 한상갑 기자

‘일주일 7일’의 현대적인 주(週) 개념이 도입되기 전에 전통사회의 휴일 개념은 장날이 대신했다. 유럽에서도 페스티벌, 카니발 같은 마을 행사 때 농민, 노예들을 비롯한 전 구성원은 노역에서 잠시 벗어나 축제를 즐겼고, 광장 한 켠엔 벼룩시장 같은 장터가 함께 열렸다.

전통시대 장(場)은 지역과 날짜를 달리해 오일장으로 열렸는데 이는 보부상이나 짐꾼들이 하루 이동거리를 기준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구미중앙시장과 선산장과의 거리는 약 20km인데, 이 오십리 길은 보부상들의 하루 동선(動線)으로 적합한 거리다.

장날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상행위만 벌어진 게 아니라 여흥을 돋우는 씨름판이나 각설이, 판소리 같은 문화 공연도 함께 열렸다.

그래서 전통시대 주민들은 꼭 사고 팔 물건이 없어도 이 장터 자체를 즐기기 위해 저자로 나왔다. 얼마 전 안동시에서 공모한 ‘옛 사진 공모전’ 출품 사진을 보면 1960년대 풍산읍 마애나루터 사진이 나온다. 사진엔 5~6명의 초부(樵夫)들이 땔감나무지게를 지고 도강(渡江)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별로 팔 물건이었던 한 농부는 땔감을 장에서 팔아 친구들과 국밥 한 그릇, 막걸리 한 잔으로 허기와 노고를 달랬을 것이다. 물론 귀가 길 농부의 손에는 가족들을 위한 갈치나 고등어 꾸러미가 들려 있었을 것이다.

 

또 오일장은 농촌 사회 사교의 장으로도 기능했다. 전통시대 장터는 인근 마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안면을 익히고 안부를 묻는 자리였다. 장터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경조사나 주민들의 진로, 거취 정보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전통시대 장권(場圈)은 혼인권(婚姻圈)과 함께 통용되기도 했다. 혼기를 앞둔 처녀 총각들의 정보가 시장에서 교환되었고, 만남이나 상견례로 이어지기도 했다. 장터 주막에서 만난 지인(知人)끼리 술기운에 혼사에 합의하면 실제로 혼인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장터마당은 정치, 사회의 장으로도 기능했다. 대중집회를 열어 여론을 모으는 장소였고 벽서(壁書), 괘서(掛書), 방서(榜書) 등 언론 행위의 중심지로도 역할을 했다. 3·1만세운동이 대부분 장날을 통해 벌어진 것도 이런 성격을 잘 대변한다.

영주 365시장 모습.

경북의 유통, 전통시장의 역사를 연구할 때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단서, 코드들을 찾아보는 것도 지역 전통시장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고대 영남권에서 유통, 물류시장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낙동강·금호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 고대의 유통, 물류는 강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강을 ‘수상(水上) 고속도로’라고 불렀다.

고대 경북의 수상 물류는 낙동강과 금호강 수계(水系)를 통해 주로 이루어졌다. 이 두강은 작게는 화물 운송의 통로로, 크게는 수도권 문화를 남해·해상 세력과 연결하는 문화의 통로로 기능했다. 이런 수상 운송 전통은 선사시대부터 한말까지 이어져 오다가 철도, 신작로 같은 현대적 교통수단이 등장하면서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조선시대 부산과 대구-경북-충북-한양을 연결했던 영남대로도 대구 경북의 유통, 물류, 전통시장은 물론 인문학이나 국방·행정에 이르기까지 국가통치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영남대로는 자체로 육로, 운송의 대동맥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서 언급한 낙동강, 금호강등 수운(水運)과 연결해, 지리적 이익을 도모하고 경제적 시너지 효과를 높였다. 조선 정부는 영남대로와 강이 만나는 지점마다 포구(浦口)를 설치해 운영했다. 화원나루터, 선산(여차니진)나루터, 왜관나루터, 삼강나루터 등은 화물 운송의 연결 루트인 동시에 지역 상인들의 집합지, 물류 기지, 장터로 기능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건설된 철도들도 대구·경북의 유통, 물류 체계에 영향을 미쳣고 각지 전통시장의 형성에도 기여했다.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구·경북은 남쪽엔 평야가 잘 발달해 미곡 생산이 활발했고, 북쪽으로는 석탄, 중석, 아연 등 지하자원이 풍부했다. 이를 안정적으로 실어 나를 철도, 도로의 건설은 시대적 요구였다.

이 시기 대구·경북엔 경부선을 비롯 경동선(대구-하양), 영동선, 경북선, 가은선 등이 건설돼 지역의 물류, 유통을 견인했다.

이외 일제강점기 이후 건설된 신작로와 산업화시대 건설된 고속도로도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구경북엔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구마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같은 SOC등이 물류 라인으로 자리매김하며 지역 발전을 이끌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철도, 도로가 어디를 관통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운명도 함께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국가 기간 도로망이 들어오면 대단위 화물, 여객운송 길이 열리면서 지역경제 활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공장이나 공단 건설 유치가 훨씬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본래 경부선 철도가 ‘추풍령-충주-상주 라인’으로 계획됐다가 유림의 반대로 ‘추풍령-김천-대구-경주’라인으로 바뀐 일화는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영남 지역 발전이 북부(안동, 상주, 영주)에서 남부(김천, 구미, 대구, 경주)로 넘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철도, 고속도로, 신작로 등을 유치하면서 지역 중견 도시로 발전했던 도시들도 사회의 변화와 산업의 발전에 따라 흥망성쇠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문경, 영주 등이 화려한 철도망을 기반으로 광업도시로 발전했지만 석탄이 가스, 기름으로 대체되면서 급격히 도시세가 쇠락했고, 왜관, 현풍, 상주, 선산, 예천처럼 나루터를 기반으로 경제를 일구었던 도시들도 철도가 건설되며 하루아침에 유통 주도권을 철마에 내주고 말았다.  

산업화, 이농현상으로 인한 농촌사회의 쇠락과 1996년 유통시장 개방으로 인한 소비 패턴의 변화도 농촌의 전통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북도 농촌도시들의 인구 변화 추이를 보면 최전성기인 1960~70년대보다 현재 절반 이상 감소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1960년대 15만8천명이었던 문경시 인구가 현재 7만 명선으로 떨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TV 홈쇼핑과 코로나 19 이후 온라인-비대면 마케팅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오프라인 시장이나 농촌 지역 장터는 직격탄을 맞았다.

1960~1990년대까지 장날엔 밀려드는 장꾼들로 어깨가 치이고 난전(亂廛)마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는 얘기는 이제 촌로들의 구전(口傳)이나 옛 어르신들의 영웅담에서만 회자된다.

경산 자인시장 풍경.

그럼에도 오랜 취재와 답사를 통해 우리 농촌의 정서에 오일장 DNA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가장 큰 성과였다. 현재 경북 22개 시군(울릉군 제외)에는 오일장이 적게는 1~2곳, 많게는 5~7곳이 유지되고 있다.

경주에는 중앙시장, 성동시장, 건천시장, 안강시장 등이, 포항에도 죽도 시장, 구룡포시장, 흥해시장, 북부영일대시장, 청하시장, 오천시장 등이 아직도 건재하다. 이곳 장터에선 아직도 장날이면 각지에서 노점들이 밀려오고 장터엔 인근 농가 어르신들이 재배한 과일, 채소 리어카, 광주리가 시장을 메운다.

북적거리는 장터를 바라보며 짓던 미소는 다음 질문에서 쓴웃음으로 바뀌고 만다. ‘과연 10-20년 후 다음 세대에서도 농촌의 장터들이 살아 있을까?’ 다음 세대엔 어떤 상거래에 어떤 시스템이 등장해 우리의 유통, 물류, 장터 시스템을 규정하고 있을까.

아마 다음 세대의 우리 실생활은 AI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구매 의사를 결정하고 결제하고 배달되는 전 과정이 순간 이동에 가까운 속도로 처리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장날 문화는 AI에 의해 모든 기능이 대체되고 우리의 장터 DNA는 기약 없는 동면(冬眠) 속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이 시리즈엔 경북도의 시장과 명물 점포 등 40여 곳을 담았다. 3년 가까이 경북의 전통시장을 답사해 현지 모습과 장날 풍경을 렌즈에 담았다. 직접 현장을 다니며 자료를 수집해 취재를 진행했기 때문에 현장성, 고증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충실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본인이 유통이나 전통시장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경북지역의 유통시장과 관련한 이론·학문적 담론을 담는 데는 미흡했다.

더구나 전통시장의 미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혹 뒤에 전통시장에 대해 연구할 후학(後學)이 있다면 이런 성과와 한계를 참고로 했으면 한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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