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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 추억 가득 대구의 전통시장!] 북구 동대구시장1970년대 대현·복현·신암동 주택가 생필품 공급지로 출발
북구 동대구시장 입구 모습. 한상갑 기자

‘대학자다즉 현인다이’(大學者多則 賢人多耳:크게 배우는 자가 많으면 현인이 많은 것)에서 유래된 ‘대현’은 바로 경북대의 건학(建學) 이념이다.

1975년 한학자 류석우 옹이 경북대의 양현(養賢)을 기원하며 던진 덕담이 동(洞) 이름(대현동)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동대구시장이 있는 대현동 일대는 이름처럼 ‘크게 배운 현인’과 큰 관계는 없어 보인다. 다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북대생들이 시장에 자주 찾아오면서 류석우 옹의 창학 이념을 가끔씩 떠올리게 하는 정도로서 의미를 갖는다.

대구 전통시장의 기원을 연구할 때 동대구시장은 좋은 자료가 된다. 보통 재래시장은 옛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있든지, 아니면 대규모 인구 유입으로 인해 자연 발생적으로, 또는 관공서가 개입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동대구시장은 민간사업가가 상가 건물을 지어 분양함으로써 생겨난 시장 형태다.

1970년대 민영에, 분양형 전통시장 형태는 당시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한다. 대구 전통시장의 역사를 새로 썼던 동대구시장으로 떠나보자.

 

◆1970년 민간사업자가 상가건물 지어서 분양=대현동은 1975년 신암동에서 분동(分洞)되어 나왔다. 마을의 뿌리는 신암동인 셈이다. 마을 앞으로 새내(신천)가 흘렀는데 신천 유역 중 바위가 많은 곳이라 하여 신암동(新岩洞)으로 불렸다.

신암동과 대현동의 지명과 강(江)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 동대구시장의 탄생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원래 지금의 동대구시장자리에는 1960년대부터 전통시장이 개설돼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설립 연원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6·25 직후 토착형 마을 상권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장터에 현재의 동대구시장(복합상가)이 건립된 건 1970년도. 이 당시엔 전국에서 전통시장들이 막 들어서기 시작할 때였다. 경제 개발 덕에 국민소득이 늘어나 상품 수요가 늘어났고 소득 수준에 걸맞은 새로운 쇼핑공간의 필요성이 제기 되던 때였다.

당시 대현동, 신암동 일대 인구유입이 늘고 시장 수요가 생기자 한 사업가가 이 ‘판세’를 읽고 현대식 상가를 지었다고 한다.

점포가 100곳이 넘는 중급 상가였지만 분양이 완료되며 대현동, 복현동, 신암동 일대의 쇼핑 거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신천을 경계로 동쪽엔 칠성시장이, 서쪽에 동대구시장이 자리 잡으면서 두 시장은 나름 상권을 유지하며 성장해 갔다. 칠성시장이 대구의 도심에서 매머드 상권을 형성하며 서문시장과 ‘빅2’로 성장했다면, 동대구시장은 대현동·신암동 일대서 생활밀착형, 마을 상권을 형성하며 자리를 잡았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1970년부터 1990년 후반까지 전국의 전통시장은 대부분 전성기를 구가했다. 시장의 배후엔 늘 인구가 넘쳤고, 모든 유통, 상권도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돌아갈 때였다.

동대구시장 내부 식당가 모습.

◆2000년대 재건축 바람 불며 유동인구 급증=모든 시장이 그렇듯 2000년대 들어 동대구시장도 위기를 맞았다. 버튼 터치만으로 당일 배송이 되는 온라인 마케팅시대, 시장이 설 자리는 좁아져 갔다. 인근 주택가를 배후 상권으로 성장한 동대구시장의 위기는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상가의 외진 점포가 매물로 나오고, 경영난을 버티지 못한 상인들이 하나둘 상가를 떠났다.

그 무렵 전통시장에 예기치 못한 ‘훈풍’이 불어왔다. 대현동 노후주택단지에 재건축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2006년 대현 뜨란채를 시작으로 신암동 청아람, 대현 이편한세상, 대현 한신 휴플러스, 대현 센트럴파크, 신천 자이, 신천 가람타운 등 아파트 단지가 대거 들어섰다. 직선거리 700~800m 내 들어선 아파트만도 열 곳이 넘는다. 아파트 입주는 유동 인구 증가로 이어져 시장의 상권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시장 주변에 경북대, 신암초교, 대구공고, 동신초교 등 학교가 많은 것도 시장 흥행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시장상인회 정재헌 회장은 “학생들은 자체로 시장의 고객(분식점 등)이기도 하지만 이 학생들을 위한 생활경제 한 축이 따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즉 학생들의 도시락 반찬이나 간식은 물론 의식주 전반에 큰 시장수요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동대구시장 외부 도로변 모습.

◆미완의 실험으로 끝난 ‘전통시장 청년장’=아파트 재건축으로 고객들이 늘었다고 시장이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시장의 주통로나 도로변은 점포들이 활성화되었지만, 시장의 내부나 상권이 외진 곳에는 현재도 빈 점포가 상당수 있다.

이에 상인회에서는 2016년 ‘청년창업 전통시장 청년장’을 개장하며 상가 활성화에 나섰다. 12명의 청년 상인들이 쌀가공, 한과, 와플, 튀김, 수제돈가스 점포를 열며 의욕적인 출발을 했다.

개장 초기 ‘나에게 꼬치라’(꼬치집), ‘흥청망청’(맥주·과일), ‘청춘정미소’ ‘오리패고 닭잡고’ ‘손님 구함’ 등 재치있는 상호, 카피로 화제를 모으며 시작 했지만 아쉽게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일단 젊은 층들이 전통시장을 외면하는 추세에서 이들의 호기심을 잡아끌 임팩트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온라인·비대면 세상에 오프라인 상권이 이미 한계 이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 대구시내 전통시장엔 4~5곳이 청년몰이 들어서 있지만 산격종합시장 청년몰 등 몇 곳 외에는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하다.

패스트푸드나 프랜차이즈점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전통시장을 외면하고 있고, 또 젊은층의 시선을 시장으로 끌어들일 이렇다할 동기, 유인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 세워진 동대구시장은 ‘상가 분양형 전통시장’으로 첫발을 내딛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또 전통시장의 위기라는 흐름 속에서도 ‘아파트 재건축’이라는 호재를 만나 큰 부침(浮沈)없이 상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특이한 케이스다. 북구의 ‘별종’ 동대구시장이 전통시장의 위기 속에서 또 어떤 변신을 모색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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