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골목] 대구 닭요리 전문골목 원조 평화시장

닭요리 전문골목 원조 평화시장 모습. 대구시 제공

2015년 대구치맥페스트벌 때 먹어치운 치킨의 마릿수는? 정답은 40만 마리다.

물론 닭만 먹어치운 게 아니다. 치킨과 늘 함께 따라다니는 맥주도 30만리터가 소진됐다.(대구 시민들의 닭사랑은 유별나다 못해 별종스럽기까지 하다.)

어느 순간 닭이 우리 문화, 삶, 식생활 속으로 훅 들어온 셈인데 알고 보면 닭과 대구와의 인연은 1500년 전 고대로 소급된다. ‘닭이 뛰노는 벌판’에서 세워진 나라가 달구벌이니, 닭은 대구의 뿌리이자 토템인 셈이다.

건국 배경, 신화에도 닭이 등장할 정도니까 닭은 가금(家禽)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존재임에 틀림없다.

현재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치킨 브랜드들도 대부분 지역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닭은 시민들의 기호(嗜好)를 넘어 대구의 거래 수단, 사업 파트너로도 자리를 잡은 셈이다.

대구 닭의 역사와 연원을 찾아 평화시장으로 떠나보자.

◆일제강점기 이후 양계산업은 대구의 주력 업종=1907년도 제작된 대구지도를 보면 서문시장 ‘닭전골목’ 지도가 나온다.

이 골목은 조선 후기 ‘계전곡’(鷄廛谷)을 계승한 것이다. 닭이 대구에서 매매 대상, 상업화의 수단으로 등장하는 것은 적어도 5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셈이다.

조선후기에 씨를 뿌린 양계산업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대구의 주력 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서문시장 전체 면적의 30%가 닭전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1910년대 일본은 미국의 근대 양계기술을 받아들여 양계산업을 번창시켰는데, 한국 병합 이후 대구에 양계 시설을 들여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갖춰진 대구의 양계 인프라는 미군정 하에서도 바통을 이어갔다. 치킨 등 닭요리 자체를 즐겼던 미군들이 자신들의 음식수요를 충당한다는 현실적 목적 외, 대구에 양계산업을 육성해 지역 경제를 일으킨다는 계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군정은 산격동에 ‘신기부화장’을 세우고 주변에 양계장, 닭도축시설, 육가공 업체를 함께 건립하며 양계산업을 대구의 주력 산업으로 키워나갔다.

이렇게 상업화 기반을 다진 양계 산업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도 반영돼 대구 육가공 산업의 기초를 다졌다.

평화시장 닭똥집골목의 닭요리들.

◆닭곱창, 닭발, 닭개장 등 닭요리 발달=1960년대 범어네거리 인근에 대규모 농장형 양계장이 들어서면서 1970년대 칠성시장을 중심으로 닭고기 가공업체들이 가동을 시작했다. 생산부터 가공-유통까지 양계산업의 전 분야가 갖춰진 셈인데, 특히 육가공 과정에서 많은 부산물이 생기며 대구 곳곳에 많은 닭요리 전문점들이 생겼다.

칠성시장 청과시장 주변으로 닭곱창골목이 형성되었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수성못 주변 포장마차에서는 닭발요리가 유명세를 떨쳤다.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린 닭똥집과 선지국과 함께 대구 대표 국물요리 닭개장도 대구의 메인 닭요리로 분류하기에 손색이 없다.

사실 부산물이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한들 정식으로 가공된 정육(正肉)을 당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뒷고기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싼 가격 덕이다. 그래서 당시 대구의 닭요리골목에서는 모두 서민층의 애환이 묻어난다.

평화시장 닭똥집골목도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던 도시품팔이꾼들의 생계 현장을 배경으로 형성된 시장이다.

평화시장 닭똥집골목 모습.

◆1990년대 중반 58곳 점포 들어서며 전성기 누려=35년째 시장을 지키고 있다는 한 상인은 “당시 막노동꾼들이 싸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술안주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닭똥집요리가 나왔다”며 “당시엔 한접시에 1천원으로 두 사람이 1천~2천원선에 술값을 해결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말했다.

원조 격인 ‘S통닭’이 골목에 자리를 잡자 뒤이어 P치킨, G하우스, D본부, P통닭 등이 잇따라 개업하며 평화시장의 1세대 라인-업을 구성했다. 이렇게 세(勢)를 확장한 골목은 1990년대 중반에 무려 58곳이 들어서며 전성기를 누렸다.

평화시장은 당시 칠성시장·대명시장의 닭곱창거리, 수성못 포장마차 닭발 등과 닭요리를 삼분(三分)하며 대구의 미식가, 술꾼들을 불러들였다.

단일 메뉴 스트리트로 호황기를 누리던 골목에 ‘이상 조짐’이 감지된 건 1990년대 중반. 카페 사장 출신의 한 젊은 여성이 골목에 A업체를 개업하면서부터. 당시 그 여성은 전통시장 상가 일색이던 골목에 카페식 인테리어를 도입하며 젊은층들의 관심을 끌었다.

레스토랑, 카페 분위기의 A업체가 골목에 등장하면서부터 젊은층들의 유입이 급속히 늘어났다. 특히 주변 대학가 학생들이 앞다퉈 골목을 찾았고, 시내에서 1차를 달린 젊은이들이 2차 원정코스로 인기를 모았다.

이 업체가 신세대 취향을 공략하면서 성공을 거두자 주변에 젊은 감성 분위기 점포들이 잇달아 들어섰다. 이후 시장은 중년층과 젊은층이 함께 ‘동거’하는, 신·구세대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발전해 갔다.

이렇게 대구에서 닭메뉴로 한세대를 풍미하던 평화시장 닭똥집골목은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 전통시장의 쇠퇴 분위기와 경기 침체, 코로나-19 사태 같은 악재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구의 대표적인 술집골목으로 전국적 유명세를 떨치며 닭요리 최대 축제인 치맥축제의 터전을 일구었으니 그 공이 작지는 않다.

이름(딹똥집)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지만 그 공적만큼은 (닭)벼슬감이 아닐까.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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