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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영 작가의 '문학으로 배우는 우리 역사'>조선시대, 해외여행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기록의 중요성회사로부터 보상 받기 위해 조선을 기록했던 '하멜표류기'
사소한 기록이 역사가 될 수 있다

예전과 달리 해외여행 떠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휴가는 물론이고 추석 같은 명절에도 해외로 많이 나간다. 하지만 몇 백 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이런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특별한 임무가 아니면 국경을 넘는 일은 중죄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고(故) 이은성 작가의 소설 <동의보감>에 허준이 중국으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 그러나 육지로 이어진 나라요. 개인의 욕망이 아무리 치열할지라도 개인의 자격으로 국경을 넘는 일은 쌍방이 사죄(死罪)로 다스리고 있는 한 조선 사람 중 무사히 국경을 넘는 자격은 극도로 한정돼 있다. ……

결국, 허준은 온몸에 휘감기는 눈보라와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을 뚫고 북경에 도착했다. 이시진이 쓴 방대한 의학서 <본초강목>을 보기 위해서였다. 물론, 개인이 아닌 중국 사행단의 의원 자격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이런 것을 볼 때, 어의로써 왕의 측근에 있던 허준도 해외로 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물며 평범한 사람이 국외로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조선시대, 흑산도 홍어 장수 문순득이 필리핀을 다녀왔다는 기록이 있다. 자세히 말해, 오키나와, 필리핀, 중국을 거쳐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동남아 순방이었다. 조선시대,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라 기록을 좀 더 찾아보았다. 순조 9년(1809년) 6월 26일, 조선왕조실록에 필리핀에 대한 얘기가 등장한다. 게다가 문순득의 여행을 좀 더 자세히 기록한 책도 있었다. 바로 정약전이 쓴 <표해시말>이다.

정약전은 유배지 흑산도에 살면서 문순득의 얘기를 듣고 <표해시말>을 썼다. 문순득은 단순 여행 목적으로 해외에 간 것이 아니었다. 1801년 12월, 문순득은 배를 타고 홍어를 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폭풍우를 만났다. 배를 조정하는 돛과 키가 부셔져 배가 표류했고, 파도에 떠밀려 열 하루만에 어떤 섬에 도착했다. 바로 지금의 오키나와 현(당시 류큐)이다. 이렇게 목숨을 겨우 건진 문순득은 오키나와에서 1년정도 생활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다시 표류를 당했다. 이번에는 배가 필리핀 루손섬까지 떠내려갔다. 문순득은 이곳에서 1년 정도 살다가, 마카오 상선을 타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난징, 베이징, 의주를 거쳐 고향인 우이도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장장 3년2개월에 걸친 긴 여행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 만큼 향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많은 사람이 표류를 당해 먼 곳으로 떠내려갔다. 하지만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약전은 이런 얘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 책에는 당시 오키나와의 풍속, 언어, 필리핀 문화의 특징 등, 그 나라에서도 희귀한 역사 자료가 기록되어 있다.

기록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책이 있다. 바로 헨드릭 하멜이 쓴 <하멜표류기>이다. 스페르베르호는 풍랑을 만나 난파되고 하멜과 일행은 ‘켈파르트 섬’에 다다른다. ‘켈파르타 섬’이 바로 지금의 제주도이다. 하멜 역시 조선에서 10여년 넘게 살다가 탈출해서 네덜란드로 겨우 돌아갔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회사의 보상은 전혀 없었다. 하멜은 너무 억울해서 회사에 임금을 요구했다. 하멜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선에 머물게 된 까닭도 따지고 보면 회사 업무 중 생긴 사고가 아닌가? 하멜은 자신이 소속된 회사에서 13년 치 임금을 받기 위해 조선에서 본 것, 있었던 일을 객관적으로 적어 보고했다. 결과는 하멜의 승리였다. 이것이 바로 기록의 힘이다. 물론, 하멜이 적은 글은 단순한 보고서였기 때문에 <하멜 표류기>에는 문학적 표현을 전혀 볼 수 없다. 하지만 기록 측면에서 보면, 이런 것이 <하멜표류기>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오늘날,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조선시대의 예절과 관습, 백성의 모습, 생활, 풍속 등이 정보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사소한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문순득의 여행에 대한 기록을 정약전이 적지 않았다면, 하멜이 조선에서 살았던 기억을 보고서로 적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이런 소중한 기록을 구경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혹시, 이번 여름에 멋진 곳을 다녀왔다면, 이런 추억을 기록으로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 짧은 여행이라도 추억을 떠올리며 글로 남긴다면 의미 있는 기록이 될 수 있다. 사소한 기록이라도 글로 남기면, 역사가 될 수 있다. <표해시말>이나 <하멜표류기>처럼…….

아동문학가 정종영 didicat@naver.com

디지털경제  de@deconom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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