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황금시장은 조선시대에는 전국 5대시장으로, 일제 강점기땐 일본 상인들의 자본 중심지로, 1970년대엔 농산물 유통 중심지로 인기를 끌었다.

김천을 대표하는 상징은 무엇일까. 황악산, 직지사, 감천, 모두 김천 심벌로 손색이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삼도봉이 아닌가 한다. 경북, 충북, 전북의 3도 한가운데 우뚝 선 삼도봉 이야말로 교통도시, 상업도시로 성장해온 김천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1905년 경부선 개통과 1970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은 김천에게 선물이자 축복이었다. 국토를 굳게 떠받치는 두 간선(幹線)을 품으며 김천은 상업도시, 물류의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통요지라는 천혜의 입지도 때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되었다. 특히 김천의 경우가 그랬다. 김천시의 흥(興)과 위기, 김천 상권의 성(盛)과 쇠(衰)를 돌아보았다.

◆전국 5대 시장 명성=김천장에 대한 최초 기록은 ‘동국문헌비고’(1770년)에 나온다. 자세한 설명 없이 ‘김산(김천)에는 읍내장, 김천장, 아산장, 추풍장 등이 있었다’ 고만 나온다. 이중 김천장은 조선 중기부터 후기까지 대구, 전주 강경, 평양과 함께 조선시대 5대 시장으로 꼽혔다.
당시 김천장에서는 명란·창란·어비(魚肥)·유지(油脂) 같은 염장어류가 주 상품이 이었는데 이는 해안지방에서 들여온 생선을 소금을 쳐 가공한 것들이다.
전라도, 충청, 경상도를 모두 품고 ‘3도 시장’으로 불리던 김천장은 일제강점기 경부선철도가 닦이면서 다시 한 번 발전 기회를 맞았다. 1900년대 일제에 의해 시작된 경부선철도 공사는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였다. 공사판이 벌어지면서 김천에는 일본인 기술자, 일본 상인과 근로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물자와 사람이 물리는 공사현장에는 장이 서게 마련이고 이때 생긴 시장이 ‘김천장’이었다.
김천은 일본인들에게 기회의 땅이었고 지명(황금동)처럼 ‘엘도라도’였다. 일본인들은 김천장의 핵심 상권을 모두 차지하고 이 일대를 본정(本町, 거주지의 으뜸) 혼마치라고 불렀다. 1910년 한일합방 이전에 이미 김천에 일본인촌이 들어설 정도였으니 근처 왜관과 함께 일본 자본의 거점이었던 셈이다.
우시장, 어물전, 소금, 농산물시장으로 번창하던 김천장은 6.25 한국전쟁 때 불타며 잠시 위기를 맞았다. 이시기 김천의 전통시장도 이합집산을 거치는데 이때 황금시장이 김천의 남쪽 상권을 석권하게 된다.
주춤했던 김천의 상권은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전후해 또 한 번 대호황을 맞게 된다. 건설 특수라는 외부요인도 작용했지만 1960년대 김천은 이미 교통도시, 상업도시라는 도시 프리미엄을 극대화하며 자체 동력으로 발전을 거듭해가던 시절이었다.
1960~70년대 황금시장은 장날(5일 10일)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분주했다. 시장 뒤편 경부선 굴다리까지 수백, 수천의 노점이 들어서며 난장을 연출했다.
전 상가번영회장 손권만 씨는 “1960년대 황금시장엔 전국에서 고추, 마늘을 사기위해 장사꾼들이 몰려들었다”며 “상인들은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호남, 영남, 충청지역을 다니며 고추를 사들였다”고 한다. 장날이 되면 서울, 부산, 대구에서 고추를 사러온 트럭들이 뒤를 이었고 한 점포에서 8톤 트럭 서 너 대를 팔던 때도 있었다.
1970년대까지 최대 성수기를 누리던 황금시장은 1980년대 들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농(離農)으로 인한 농촌인구감소, 대형마트의 등장, 거기에 김천의 발전을 견인했던 경부선, 경부고속도로는 역풍이 돼 김천 경제를 위축시켰다. 이른바 ‘빨대 효과’로 도시 상권에 치명타를 안긴 것이다. 구매력이 큰 김천의 재력가들이 좋은 물건, 양질의 서비스를 찾아 1시간 거리 대구나 서울로 빠져나가면서 도심 상권은 위축됐다.

황금시장의 명소 국밥골목에서 파는 지례순대.

◆돼지국밥골목 명소=황금시장엔 1970~80년대 추억, 영화를 간직한 음식들이 많다. 대표적인 메뉴가 국밥이다. 돼지국밥엔 대부분 뒷고기가 들어가는데 돈이 되는 정육들은 제값으로 팔고 나머지 부산물들이 국밥의 재료가 된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 피, 껍데기, 머리까지 국물에 고아 최대한 많은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황금시장엔 국밥뿐만 아니라 흑돼지삼겹살, 연탄석쇠불고기, 피순대, 돼지껍데기까지 온갖 종류의 돼지 요리들이 가득하다. 골목에서 ‘지례순대집’을 운영하는 이영하 씨는 피순대는 당일 도축한 선지에 야채를 채워 집에서 직접 만든다고 말한다. 선지 특유의 냄새는 초보자들에게는 ‘낯선 체험’이 되겠지만 마니아들에겐 ‘미식(美食)의 향기’로 다가갈 것이다. 재료들은 모두 지례산 흑돼지를 쓴다. ‘꺼먹돼지’로 불리는 토종 흑돼지는 체구가 작고 성장이 느린 대신에 일반 돼지고기와는 확연히 다른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이 외에도 과일, 채소, 잡화, 생선 등 160여 점포가 성업 중이다. 시장의 터줏대감 격인 ‘진흥떡방아간’에서는 정성껏 빚은 영양떡, 시루떡, 인절미, 송편, 방울정편, 보리정편이 사계절 손님을 맞는다.
김천시는 영호남을 아우르는 교통도시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한때 조선의 5대 시장, 왜상들의 자본 거점, 농산물의 집산지로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였지만 현대화, 산업화 물결에 밀려 골목시장으로 점점 쇠락해 가고 있다.
호황기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칠순, 팔순의 어르신들은 ‘어게인 1970년’을 꿈꾸지만 기대처럼 쉽게 성사될 것 같지는 않다. 1965년대 23만이었던 인구가 현재는 14만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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