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시장은 1912년에 첫 장(場)이 열렸고 일제강점기에도 화양장, 풍각장, 유호장, 동곡장, 이서장 등 장이 설 정도로 영남 상업의 중심지였다. 한상갑 기자

경북 남부내륙의 소도시 청도, 인구 4만의 자치단체다. 뚜렷한 산업기반도 없고 소싸움, 반시, 사찰 몇 곳이 도시 이미지를 대표한다. 삼한시대 이서국이라는 소국이 청도 일대를 기반으로 존재했다는 사실 정도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화양읍 일대에 터를 잡았던 이서국은 경주 세력의 팽창기 때 신라에 병합되었다. 한 때 신라를 선제공격 했을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었던 이서국은 주변 압독국, 골벌국과 함께 신라에 복속 되었다.
소설가 정완식 씨는 ‘AD 297년 화양 들판에 안개가 내려앉았다. 그날 폐성(吠城)에서 이서국의 몰락을 지켜본 감나무는 꽃에서 배태(胚胎)를 지웠다’ 며 이서국 멸망과 불임(不姙)의 감나무를 연결해 청도 ‘씨 없는감’ 기원을 은유적으로 풀어냈다.
오늘 장터 여행은 이서국의 도읍지이며 소싸움, 반시의 고장 청도로 떠나보자.

◆조선시대부터 영남 상업도시=청도는 조선시대 이미 10곳 이상 시장이 섰을 정도로 영남 상업의 중심지였다. 옛날부터 영남대로의 길목에서 부산, 밀양과 대구를 있던 교통도시였고,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경부선과 고속도로가 도시를 관통하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1912년에 첫 장(場)이 열렸고 일제강점기에도 화양장, 풍각장, 유호장, 동곡장, 이서장 등 9곳에서 장이 섰다 .
청도시장 역시 전통 시장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까지 성수기를 누렸고, 당시 시장을 찾는 장꾼들이 3천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경산, 대구는 물론 부산, 밀양, 창녕에서도 도매상들이 밀려들었다. 특히 청도에서 생산되는 산나물, 약초, 과일을 사기 위해 대구와 부산에서 중간상인들이 몰려 왔다. 대구 상인들은 약재, 섬유·공산품을, 부산 상인들은 소금·생선·해산물을 청도에 풀었다.
청도시장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장날(4, 9일) 열리는 번개시장. 장날 오전 5시 쯤 되면 시장 인근 골목길은 크고 작은 노점들이 들어선다. 목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전날 밤부터 짐을 내려 놓기도 하고, 거리가 먼 농촌주민들은 새벽 3시부터 경운기, 트럭을 타고 오기도 한다. 시장 입구에는 손수레, 카트, 함지박 좌판이 대열을 이룬다.
시장에서 만난 권순식(57) 씨는 “평소에 청도시장은 가게들이 반도 문을 안 열어 왕래하는 손님이 별로 없지만 유독 장날만큼은 각지에서 온 장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말한다. 이 덕에 장날 좌판은 마을 주민들의 사교장이 된다. 오랜만에 만나 친지의 안부를 묻고 때론 혼기가 찬 자녀들의 혼담을 늘어놓기도 한다.

시장의 유명한 맛집인 여정식당의 옻닭 상차림.

◆옻닭집 ‘여정식당’ 전국서 찾아와=풍각시장에 소머리국밥 있다면 청도식당엔 옻닭집(여정식당)이 있다. 이 집은 박정늠(81) 할머니가 50년 동안 가게를 일군 곳이다. 가오리무침회, 옻토끼탕도 있지만 이 집의 메인메뉴는 옻닭이다. 옻 자체도 보양 기능을 하지만 이곳에서는 구기자, 모과, 밤, 대추 등 13가지 약재를 넣어 함께 끓인다. 옻국물은 무제한 리필로 제공된다. 요즘은 연로하신 박 할머니 대신 아들과 며느리가 식당을 맡아서 운영한다.
한 달 전 ‘아침이 좋다’에 할머니와 효자 아들 휴먼스토리가 방영되면서 식당 앞엔 한 시간씩 대기 줄이 섰다고 한다.
며느리가 들려준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TV 방영 빨’이 떨어질 무렵 아들 부부는 어느 날 새벽 가게 들어 닥친 손님들 보고 놀라게 된다.
“아침에 장사 준비를 하려는데 갑자기 손님들이 들이닥치는 거예요. 부산, 대구, 밀양, 경산에서 온 손님들이 가게 앞을 칭칭 감고 있었어요. 알고 보니 그 날 새벽 방송에 우리 가게 재방송을 했는데 그걸 보고 손님들이 밀어닥친 거였어요.” 첫 방을 뛰어넘는 재방 위력에 놀랐지만 그 역시 한 달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운전에서 자유로운 분들은 옻동동주를 추천한다. 식혜인 듯 약술 인 듯 맛이 오묘하다. 이 술 역시 옻나무와 10가지 약재가 배합해 막걸리 고유의 맛과 약향이 조화를 이룬다.
청도 명물 중 하나가 역시 감이다. 타 지역에서 감은 홍시나 단감으로 한정되지만 청도에서는 반시, 감동동주, 감쿠키, 감짱아찌, 감말랭이, 감와인 등 다양한 특산물을 자랑한다.
이서국의 멸망을 지켜본 감꽃들이 배태(胚胎)를 지워 씨 없는 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작가의 상상인 것 같다. 사실 감나무는 접목(接木)으로 육묘가 이루어지니까 감씨와 감나무의 생물학적 존속 여부는 무관하다. 오히려 과육에 씨를 없앰으로 해서 명품 감으로 거듭났으니, 따지고 보면 오늘날 청도감의 인기에는 ‘이서국 감’들의 음덕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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