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주전통시장 입구.

성주는 고대 가야연맹 중 하나였던 성산가야가 있던 곳이다. 부족, 성읍 정치체제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절 고대 소국(小國)이 들어설 정도였다면 낙동강 연안에서 제법 큰 세력을 형성했음이 분명하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고려를 거쳐 오는 동안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성주는 조선 태종 때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 되며 전국 무대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왕의 태실(胎室)을 3곳이나 유치한데다,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까지 건립되면서 16세기 성주는 경상도 5대 도시(경주, 상주, 진주, 안동, 성주)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조선 중기 이후 한강(寒岡) 정구, 김우홍과 같은 대학자들이, 조선 후기엔 영남학파를 계승한 이진상, 심산(心山) 김창숙 등이 학맥을 이어갔다.

가야산과 소백산맥의 후광을 없고 동쪽으로 비옥한 평야를 펼친 성주는 일찍부터 쌀, 보리, 콩, 면화, 땅콩, 참외, 수박 등 특산물의 산지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성주는 이런 특산물과 물산(物産)의 풍요를 업고 전통시장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10개 읍면의 주요 면(面)마다 지역 상권을 기반으로 한 5일장이 섰던 것으로 보인다. 

◆1887년에 오일장 들어서며 성주 경제 중심으로=조선후기 영남의 주요도시로 각광받던 성주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철도, 고속도로 등 주요 간선 교통로의 유치에 실패하면서 부터다.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 구마고속도로 등 도로망에서 벗어나면서 경북도의 대부분 제조업 투자는 근처에 구미, 김천, 대구 등지로 몰리게 되었다. 현재 성주에는 160여 곳의 공장에 5천 명 정도의 근로자들이 근무 하고 있지만 대부분 영세한 식료품, 섬유공장들이다.

이런 낙후된 분위기 탓에 지역 청소년들은 주변 칠곡이나 대구로 놀것을 찾아 원정을 다닌다고한다. 우스갯소리로 ‘성주에는 2013년에 롯데리아가, 2014년에 이디야, 2016년에 다이소가 들어섰다’는 소리가 들린다.

성주시장 군청 홈페이지 기록에 보면 성주군엔 1800년대 주요 면(面)에 자연 시장이 생기고 1887년에 본격적으로 오일장이 들어섰다고 나온다. 이 오일장은 점차 관(官)의 관할, 보호를 받는 정기시장으로 발전하며 상업시설로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성주장터는 일제시대 파리장서운동, 4·2 만세운동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며 유통공간을 넘어 성주 군민들이 정신적 요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60년대 인구 12만4천여명, 시장 전성기 누려=한말 성주는 회연서원, 도산서당, 성주문묘 명륜당이 들어설 정도로 낙동강 연안에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이런 역동적인 경제흐름은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계속 되었다. 한말 웅군(雄郡)의 전통과 위세가 이어지며 1960년대 성주군의 인구는 12만4000여명에 이르렀다.

이 정도 인구면 자체 동력으로 군재정이 돌아가고, 시장도 군의 물동과 수요만으로 수지(收支)를 충분히 맞출 수 있다. 지금도 초전시장, 용암시장, 벽진시장을 가보면 상당히 큰 규모의 장옥(場屋) 시설들이 남아 있어 당시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 신선한 농산물, 축산물, 건어물과 각종 생활잡화가 활발하게 유통되었고 무엇보다 당도와 향이 뛰어난 성주참외가 전국구 명품 과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까지 인구 10만을 유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던 성주시장은 1980년에 7만7,000명에서 현재 4만3000여명으로 축소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2, 7일 장날 성주시장엔 인근 노점, 트럭행상, 쇼핑객들이 몰려나와 북새통을 이룬다.

◆2, 7장날엔 노점, 행상, 손님들로 북적=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지만 최근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비대면, 온라인 거래가 늘어나면서 상인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이런 우울한 시장 모습도 2, 7일 장날엔 활력의 공간으로 변한다. 성주군청의 한 관계자는 “평일 성주시장의 유동인구는 2천여명 내외지만 장날이면 5배 이상 손님들이 몰려든다”고 말한다. 취재를 위해 7일 시장을 방문했는데 주차를 위해 20분 동안 시장 주변을 배회 했을 정도로 인파가 붐볐다. 시장 입구부터 몰려든 손님, 노점상들로 보행이 불편할 정도였다.

시장지원센터의 이창진 코디네이터는 “평소에 한산하던 시장도 장날이 되면 인근 노점상, 행상 트럭과 과일·채소를 들고 나온 할머니들로 붐빈다”며 “칠곡, 구미, 김천은 물론 대구에서도 어르신들이 오일장의 향수를 찾아 일부러 찾아온다”고 말한다.

봄철을 맞은 시장 좌판엔 두릅, 달래, 쑥, 냉이 등 산나물과 참외, 딸기 등 과일들도 쏟아져 나와 장날 분위기를 더 하고 있었다.

성주시장의 또 하나 특징은 전통 식당과 푸짐한 먹거리들. 시장 입구엔 닭강정, 닭발요리가 손님들을 유혹한다. 뼈없는닭발, 닭강정, 닭똥집이 1인분에 5천 원이다.

60년 전통의 국밥집 ‘고바우식당’도 허기진 쇼핑객과 술손님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선지국밥, 돼지국밥이 6,000원이고 막걸리 안주로 제격인 돼지껍데기가 한 접시에 1만원이다.

대구에서 일부러 성주로 왔다는 윤정태(57) 씨는 “장볼거리가 있으면 일부러 성주시장까지 놀기 삼아 온다”며 “장터에서 닭발, 돼지고기와 곁들이는 막걸리 한 잔은 최고의 맛이자 낭만”이라고 말한다.

◆성주시장과 지역 관광자원 연계한 전략 모색을=1960년대 경북 서남부 지역의 대표 시장으로 풍요를 누리던 성주시장, 성주군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 힘입어 아케이드 시설, 주차장 등 현대화 사업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 타시군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오일장의 활성화도 이런 성과가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성주시장이 넘어야 할 과제는 많다. 대표적인 것이 장날과 평일의 현격한 유동인구 격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다. 현재 성주시장 장날과 평일에 손님 왕래 수는 거의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일부 점포는 평일에 아예 문을 열지 않는 곳도 있다.

또 성주군 관광자원과 전통시장을 연계한 전략을 개발해야하는 점도 앞으로 풀어야할 숙제 다.

상인회 한 관계자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구-칠곡-성주를 운행하는 250번 버스를 무료화 하거나, 셔틀버스로 투입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성밖숲-독용산성-성주호-성주시장을 연계한 관광 패키지 상품을 개발해 관광과 시장투어를 접목시키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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