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철도 1호선 영대병원역 입구에 위치한 명덕시장은 봉덕시장과 함께 대구 돼지국밥골목의 양대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선산, 청송, 상주, 영천, 밀양, 예천, 금호, 안동...

대구시 남구 명덕시장에서 성업 중인 돼지국밥집 들이다. 하나 같이 지명(地名)을 차용하고 있다.(돼지국밥집 이름에 지명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차차 알아보기로 한다.)

도시철도 1호선 영대병원역 1번 출구에 위치한 명덕시장은 점포 44개로 이루어진 상가 건물형 소형시장이다. 1976년에 들어섰으니 벌써 45년 역사를 자랑한다. 이 시장은 영남대병원, 영남이공대, 대구고, 병원과 대명5동, 봉덕1동 주택가를 배경으로 골목상권을 유지해왔다.

명덕시장의 특징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돼지국밥 특화 시장으로서 존재감을 뽐낸다는 것. 시장의 중심인 영대병원역 1번 출구에서 북쪽 출구까지는 약 80미터. 그 사이에 국밥집이 10곳이나 된다. 전체 점포수가 44곳이면, 국밥집 비율은 23%다. 단일 골목 특정 메뉴의 밀집도로는 전국 최고가 아닌가한다.

봉덕시장과 함께 돼지국밥 골목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명덕시장으로 떠나 보자. 

◆돼지국밥 집에 지명이 많은 이유=큰 가마솥에 고기를 넣고 국을 끓여내는 국밥은 우리 민족의 공동체 문화와 깊이 닿아있다. 전통 음식인 설렁탕이 조선시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음식 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왕이 직접 주재한 이 제사엔 축제장 곳곳에 큰솥을 걸어놓고 왕과 신하가, 관리와 농민이 함께 음식을 나누었던 것이다.

공동체 문화와 함께 국밥이 등장한 또 하나의 배경은 6·25 전쟁이다. 전쟁통에 식량이 귀하던 시절 상인들은 미군부대에서 나온 돼지뼈, 부산물을 끓여 국수나 밥을 말아 냈는데 이게 돼지국밥의 출발이었다. 피난민이 가장 많이 몰렸던 부산, 밀양, 마산 등에 국밥집이 특히 발달한 이유가 이를 잘 설명한다.

한국전쟁 당시 대구에도 피난민들이 밀려들었다. 지금의 북성로 공구상 거리, 서성로 일대엔 제법 큰 국밥골목이 들어섰다. 초창기에 서성식당, 수성식당, 김천식당, 대구식당이 골목을 지켰고, 지금은 8번식당, 이모식당, 밀양식당이 대구 국밥집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하루 택시 300여대가 이 골목을 드나들었는데 기사들에게 1천원 할인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업용 차량이 몰려들면서 주차난, 소음 등 민원이 빈발하자, 국밥집 상권은 앞산 대덕식당 쪽으로 넘어가버렸다.

국밥집에 지명, 동네 이름이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도축장의 입지와 관련이 있다. 최근 고령국밥집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고령도축장의 후광 덕이고, 김천국밥집의 약진도 김천시 응명동 도축장의 덕을 많이 받고 있다. 

1976년에 들어선 명덕시장은 올해로 개점 45년째를 맞았다.

◆명덕시장 돼지국밥 골목 유래=서성로, 봉덕시장 국밥골목이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시(戰時) 푸드’ 였다면, 명덕시장의 국밥골목은 1970년대 산업화시대 ‘헝그리 푸드’를 대변한다. 1974년도 한국의 1인당 GDP는 540달러. 명덕시장이 들어설 때 우리는 아직 식량 자급을 해결하지 못한 아시아 최빈국 시절이었다.

이 시대 명덕시장은 서민들의 경제 현장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다들 생활고로 살림이 넉넉지 않던 시절 시장은 동전 몇 개로 민생고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었다.

이런 궁핍한 환경을 배경으로 대표적 서민음식인 국밥집이 성업 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변에 영남이공대, 영남대의대, 영남대병원 등 학교, 기관이 들어선 것도 국밥집에 흥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돼지국밥은 용돈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에게 가성비 좋은 식사요, 업무에 시달리던 병원 직원들에겐 속을 풀어주던 해장이자 술안주였다.

영천식당의 돼지국밥. 봉덕시장이 돼지머릿고기와 푸짐한 양으로 승부한다면, 명덕시장은 깔끔한 국물과 다양한 부위의 고기로 어필을 하고 있다.

◆봉덕시장과 함께 대구 국밥골목 양대산맥=남구의 모퉁이 시장에 처음 국밥골목의 뿌리를 내린 곳은 영천식당이었다. 1980년대 후반 시장에 돼지국밥 식당이 하나 들어섰다. 식당 주인은 넉넉한 고기, 탁월한 맛과 상술을 기반으로 단시간에 시장 식당가를 장악해 버렸다.

식사시간마다 식당 앞에 긴 줄이 들어서자 주변에 유사 가게들이 하나둘씩 들어섰고 이 점포들이 모여 ‘국밥 스트리트’를 형성했다. 10곳이 넘는 국밥집들이 꾸준히 상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식당 마다 맛과 메뉴를 개발해 각기 단골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명덕시장의 핫 아이콘이었던 영천식당은 2000년대 초 ‘대박 맛집’ 명성을 내려놓고 식당에서 손을 뗀다. 이 식당의 명성과 맛을 그대로 이어 받은 분이 현재 영천식당 주인인 이상도(68) 대표다. 서글서글한 성격의 이상도 대표는 친화력과 원조집 맛을 배경으로 20년 가까이 맛집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입지가 입지인지라 식당의 단골은 80%가 병원의 의사와 직원들이다. 상당수가 20~30년된 단골들이다.

명덕시장 국밥 골목은 봉덕시장 국밥과 곧잘 비교되는데 이는 각자 고정 팬을 거느리고 있을 뿐 아니라 팬심 또한 두텁기 때문이다. 이상도 대표는 “봉덕시장이 돼지머릿고기와 푸짐한 양으로 식단을 꾸리는 반면, 명덕시장은 깔끔한 국물과 다양한 부위의 고기로 승부를 걸고 있다”고 말한다. 어쨌든 두 시장은 각자의 맛과 특색을 배경으로 ‘대구 1위 국밥골목 타이틀’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시장과 골목의 명성은 쉽게 쌓이지 않는다. 점포는 끊임없이 맛을 개발하고, 시장은 인심을 베풀며, 손님들은 그 맛을 존중해야한다. 그런 신뢰를 기반으로 골목의 명성이 자리를 잡는다.

현재 명덕시장의 돼지국밥 명성은 20여 년 동안 맛을 일군 식당들의 노력의 결과이자, 그 맛을 찾아 원근(遠近) 각지에서 찾아온 단골들의 발품 덕이다.

50년을 이어온 국밥골목 전통이 다시 50년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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