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북구 읍내동의 칠곡시장. 1965년 2월에 들어섰으니 57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한상갑 기자

1990년대 이후 유통산업은 몇가지 사건을 계기로 획기적인 변화 시기를 맞는다.

첫째는 1996년 유통시장 개방이고, 둘째는 IMF 경제 위기로 인한 소비 양극화, 세번째는 인터넷, 홈쇼핑 등 온라인·전자통신 상거래의 등장이다.

유통시장 개방은 대형마트와 SSM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소비시장 양극화는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을 고급화와 저가(低價)·합리적 구매로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인터넷과 온라인마케팅의 등장은 소비자 구매의 시공간 장벽을 허물어 기존 거래, 유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았다.

인터넷, 모바일 통해 24시간 쇼핑을 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대도시의 한 켠에서는 리어카 노점과 광주리 행상이 등장하고 꼬깃꼬깃 현금이 유일한 결제수단인 곳이 있다. 바로 대도시 주변에 서는 오일장들이다.

드론 배달, 해외 직구를 하는 21세기 첨단시대에 전통시대 오일장이 도심에 선다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현재 대구의 반야월, 동촌, 화원, 현풍 등지에서 매주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유통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북구 읍내동의 칠곡시장(오일장)을 돌아보았다.

◆지천, 동명사이의 교통, 물류 중심...1965년 시장 개설=우선 ‘칠곡’(漆谷)이라는 지명은 옛날 읍내, 관음, 관문, 동천, 태전, 구암동 등이 칠곡군에 소속되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1981년 이 지역이 대구시로 편입 되었으니 이제 ‘북구’라는 행정 명칭으로 불려야 하지만 수십년 동안 주민들의 입에 붙어버린 이름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일부에서는 금호강을 경계로 ‘강남’과 ‘강북’으로 부르자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법적, 행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 읍내동에 시장이 들어선 것은 1965년 2월. 시장이 위치한 읍내동 일대가 지천면과 동명면의 중간에 자리해 교통, 물류의 중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주위에 관음동, 동천동 등 전통 취락들이 상권을 받쳐주는 점도 시장 입지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시장 내부 모습. 현재 62곳 점포가 성업 중이다.

◆2001년 대형마트 등장 후 전통시장 직격탄=평화로운 전원 마을이었던 칠곡은 1979년 택지조성사업이 시작되며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대규모 택지 조성, 인구의 집중은 전통 시장에 최고의 호재였지만 그 열매를 누릴 기회를 잡지 못했다. 유통시장 개방 이후 대형마트들이 북구 곳곳에 들었기 때문이다.

2001년 북구 동암로 들어선 홈플러스칠곡점은 개점 당시 칠곡의 상권을 무서운 속도로 빨아들였다. 대형마트는 골목 상권만 피폐화 시킨 것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쇼핑행태, 문화까지 바꿔 놓았다. 넉넉한 주차장, 쾌적한 시설에 원스톱쇼핑까지 가능해지면서 아파트 주부들은 대형마트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갔다.

그러나 ‘골목상권 킬러’로 불리던 대형마트도 인터넷·온라인 상거래흐름 앞에서 시장의 주도권을 내놓아야 했다.

이런 유통시장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칠곡시장 상인들도 나름대로의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칠곡시장의 현 상황은 열악하다 못해 존립을 걱정할 처지다. 우선 전통시장들이 홈쇼핑, 온라인마케팅 등 급격한 쇼핑 문화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선거리 400여m에 위치한 홈플러스칠곡점도 현실적으로 칠곡시장의 가장 큰 위협이다. 젊은층, 주부들이 아직도 대형소매점 주요 고객으로 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칠곡시장 측은 2014년 정부의 전통시장 현대화 계획에 의해 비가림 시설과 점포 62곳을 개설하며 재도약에 나섰다.

◆1, 6 오일장에는 아직도 장날 분위기 물씬=지난 21일 1, 6 오일장이 서는 칠곡시장을 찾았다. 구수산 자락을 돌아서자 도로가에 노점들이 눈에 띄었다. 주로 과일·채소·생선 등 생필품들이 주를 이루었고, 칼갈이·열쇠 수리 같은 전통형 노점도 눈에 띄었다.

노점에서 만난 한 상인은 “지금은 날씨가 너무 춥고 농가의 채소, 과일들이 나오지 않을 철이라 어르신들을 볼 수 없다”며 “봄·가을이 되면 지역 어르신들이 손수 재배한 과일·채소들을 리어카나 카트에 끌고와 노점을 펼친다”고 말했다.

시장 안내간판이 있는 출입구 쪽으로 가자 여기 대로변에도 노점상 30여곳이 좌판을 펼치고 있었다.

배추와 시금치 몇 단을 들고 나온 한 아주머니는 “평일에는 노점도 적고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장 분위기가 나지 않지만 1, 6 오일장에는 인근 마을 어르신들이 대거 몰려들어 제법 장날 분위기가 난다”고 말했다. 특히 봄·가을 성수기나 명절 직전엔 구미, 군위, 칠곡, 경산 등 행상들이 몰려들어 대혼잡을 이룬다고 한다.

정문 출입구 쪽에도 노점상 30여 곳이 좌판을 펼치고 있다.

◆취재 후기=아마존에서 직구를 하는 세상에 대도시 한편에서 이런 오일장, 오프라인 장터가 성행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칠곡시장 상인회 장대익 회장은 “아무리 세상이 비대면, 온라인 마케팅으로 흘러가도 어르신들은 자신만의 구매방식을 찾아 시장으로 온다”며 “어르신들에게 시장은 쇼핑공간 외 주민들과 소통하고 향수를 공유하는 삶터 같은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한다.

약 200평 시장 건물엔 모두 62개 점포가 성업 중이다. 도심 외곽지라서인지 방앗간, 채소, 잡화류와 식당가들이 들어서 있다. 간식 중에는 강정, 떡집, 누룽지 같은 전통음식들이 많았는데 아마 이는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의 기호에 맞춘듯 했다.

식당가의 한 상인은 “젊은이들은 주로 식사를 목적으로 분식이나 양식을 찾지만 어르신들은 시장 골목골목을 누비며 한과, 강정, 떡 같은 전통식품을 주로 찾는다”고 말한다.

대형마트의 등장, 대세로 떠오른 비대면·온라인 마케팅 등 악재가 겹치며 중소도시의 전통시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도시 주변에서 전통시장이 그것도 오일장이 건재하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의 의식 속에 ‘장터 DNA’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저작권자 © 디지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