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하양꿈바우시장 모습. 한상갑 기자

‘강 물결(河)이 은빛 거울처럼 햇살(陽)에 부서지는 곳’. 이름처럼 하양은 금호강의 선물이다.

고대 경산 압독국의 외곽도시였다가 고려시대 하주(河州)가 되었다. 이름에 주(州)가 붙은 것으로 보아 마을 규모가 제법 컸던 것으로 보인다. 1742년 화성(花珹)으로 불렸다가 1895년 현재 이름인 하양(河陽)이 되었다.

지명에 강(河)과 꽃(花)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무학산 밑자락과 금호강, 넓은 들을 따라 꽃들이 성곽을 두른 듯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하양은 강과 꽃, 들판, 평야가 골고루 발달했고 이를 기반으로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었다.

평화로웠던 전원도시 하양이 영남 중남부의 물류, 유통, 상업도시로 성장한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 1917년 일제는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대구와 영천 사이 대구선을 건설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하양은 대구 동부와 영천을 연결하는 물류, 화물 거점도시로 성장을 거듭해갔다.

동대구를 기점으로 동촌·반야월·청천·하양·금호를 거쳐 영천으로 연결됐던 대구선은 서쪽으로는 경부선과 동쪽으로는 중앙선, 동해남부선과도 연결되며 대구경북의 물류 중심으로 도약했다.

대구선 개통 이후 하양엔 화물과 여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유동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의식주를 충족하기 위한 시장을 필요로 했는데,  하양시장은 바로 이 필요에 대한 대안이었다.

'센베이'라고 불리는 옛날 과자.

◆대구선 개설 이후 하양은 물류, 교통도시로 발전=1930년대 들어 일제의 조선통치 방식은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대전환기를 맞는다.

이 당시 조선총독을 지냈던 우가키 가지시게(宇垣一成)는 일본의 대륙 진출을 앞두고 동북아 경제정책 기조를 ‘일본은 정(精)공업, 조선은 조(粗)공업’으로 재편성 했다. 조선을 본토의 정밀공업에 종속된 낮은 기술수준에 공업지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이 시기에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이 진행되면서 조선은 병참기지화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버린다.

하양에 전통시장에 들어선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일제는 1910년대 영남권의 식민정책, 군수물자 조달의 필요성에 의해 철도를 개통했다. 석탄, 목재, 곡물 등의 운송과 조달을 위해서다. 

경산시지에 보면 ‘하양에 오일장이 서면 진량, 와촌은 물론 청통, 금호 반야월, 영천에서 물산과 사람이 모였다’고 나와 있다. 금호강을 끼고 있으니 수운(水運)을 통해 영천, 대구는 물론 낙동강 수계로 연결이 쉬웠고 철도가 놓이며 울산, 포항 등 동해남부선과도 화물수송이 활발해졌다.

전통시대 하양장은 어물전, 청과시장, 우시장이 특히 유명했다. 지금은 영천시장의 랜드마크가 된 돔배기도 당시 하양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시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어린 시절 돔배기 반토막이면 밥 한 그릇을 먹을 정도로 귀한 음식 이었다”며 “짭조름한 맛에 특유의 감칠맛과 고소한 맛이 생각나 자주 시장에 들른다”고 말했다. 

전통시대 하양시장의 명물은 우시장이었다. 30년 전만 해도 하양에 금락교 근처 우시장엔 인근 대구와 영천 청통, 금호, 대창 경산 등지에서 온 장꾼들로 성황을 이루었고 우시장 주변에는 소들을 재워주는 우사, 마굿간과 일꾼들의 숙사가 있었다고 한다.

우시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주막, 국밥 집. 하양 우시장에도 국밥집이 크게 성행했다. 지금도 시장 주변에 중남식당, 원조할매곰탕 등 국밥 집들이 전통을 잇고 있다.

아쉽게도 하양 우시장은 1990년대 진량으로 옮겨갔고 그 자리에는 시장 현대화 사업에 따라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다.

조산천 둔치에 늘어선 노점들. 다문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들도 많이 눈에 띈다.

◆장날이면 조산천 둔치 1km엔 노점상 북적=여름 땡볕이 따가운 초여름 오일장의 추억과 흔적이 서려 있는 하양장으로 향했다. 조그만 읍단위 시골장을 생각했던 취재진 앞에 뜻밖의 인파가 펼쳐졌다. 약 1km에 이르는 금락교와 하주교 사이 둔치에는 수십대 이상의 트럭과 노점들이 들어차 교행이 불편할 정도였다.

시장에서 만난 한 노점상은 “하양장은 장소가 넓고 주차가 편해 영천, 경산, 청통, 반야월은 물론 군위, 구미, 칠곡의 트럭행상들이 장날마다 모여 든다”고 말했다.

또 옛날 대구선 하양역 시절 지역민들의 장날에 대한 향수가 잘 간직돼 오일장 문화를 공유하는 것도 장터 활성화의 원인인 듯 했다.

이 덕에 노점엔 육해공 모든 식재료부터 생필품, 의류, 공산품들이 망라 되고 있었다. 특히 미꾸라지, 메기, 가물치, 동자개, 붕어, 잉어, 피라미 등 물고기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상당수가 양식 이었지만 갖 잡아온 자연산들도 많았다. 금호강, 조산천 등 하천이 발달해 민물고기 생육 조건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양에 넓은들, 산지(山地)에서 재배된 각종 채소, 과일들도 시장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부분 인근에서 출하된 양파, 무, 배추, 마늘, 부추 등이 쌓여있고 영천, 경산 등지 과수원에서 재배된 살구, 참외, 수박, 토마토들도 이곳으로 몰린다.

시골장의 특성답게 이제 도심해서 보기 힘든 올드 계열 구제(舊製) 상품들도 많다. 노랑 기저귀 고무줄, 나프탈렌, 때밀이 수건부터 ‘센베이’라고 부르는 옛날 과자, 쑥덕, 호떡, 우뭇가사리 등이 장꾼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명품가마솥곰탕집’ 곰탐.

◆60년 전통 명품가마솥곰탕집 맛객들 유혹= 4, 9장날에 조산천 둔치에 재래시장이 선다면, 평일에는 현대식 건물인 마트형 상가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하양 꿈바우시장의 모토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전통시장’으로 통한다.

상가 상인들 입장에서는 장날마다 몰려드는 노점들이 달갑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 덕에 시장에 매기(買氣)가 돌고 활력이 넘치니 서로 윈윈 하는 구조다.

마트 건물은 ‘꿈동’ ‘바우동’으로 나뉘는데 꿈동에서는 반찬, 과일, 채소, 각종 해물과 정육점이 들어서 있다. B동인 바우동엔 먹거리 장터가 유명하다. 버섯요리 전문점, 추어탕, 정식, 생선구이, 삼계탕집 등이 성업 중이다.

이중 맛집은 단연 60년 전통의 ‘명품가마솥곰탕집’이다. 1970~80년대 우시장 시절에 문을 열고 지금까지 맛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욕쟁이 할머니집’으로도 유명한 이 집은 옛날 가마솥 곰탕 전통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인 할머니는 “같은 곰탕이라도 스텐레스나 알루미늄 솥에 끓인 것보다 무쇠솥에서 끓인 국이 훨씬 구수하고 잡내가 덜 난다”고 말한다.

부드러운 머릿고기와 선지 등 건더기도 푸짐해 수육을 별도로 시키지 않아도 술 한 병을 거뜬히 비울 수 있다. ‘6시 내고향’ 등 TV 먹방에도 많이 소개 돼 현지인들이 찾는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하양 출신 도광의 시인은 ‘고향 친구 구활’이라는 시에서 ‘금호강 사과밭을 떠나지 못했다/ 햇살 감기는 고샅길이 있기에/ 국밥 말아먹는 하양장날이 있기에’라고 썼다.

경산이 고향인 두 시인은 금호강과 하양 장날을 매개로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다. (두 분 모두 옛날에 한두 번 뵌 적이 있기에 이 시가 묘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시장 한켠에 두 시인의 우정이 담긴 시비(詩碑)라도 하나 세워둔다면 장터 멋도 더해지고 오일장의 인문학적 가치도 올라갈 듯하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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