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중구의회 권경숙 의원이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정당의 궁극적 지향이 ‘집권’(執權)이라면, 정치인의 존재 목적은 ‘국리민복’(國利民福) 쯤 될 것이다.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하는’ 실정에서 민생과 관련한 정치인의 역할은 결국 입법(立法)을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말이 좋아 입법이지 그 과정은 까다롭고 번거롭기 그지없다. ‘입법예고-규제 심사-심의-의결-상정’을 거치는 동안 자신의 임기 반(半)이 날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장 지역구에서는 사회적약자들의 도움이 절실한데 입법-제도화는 요원하기만 하니 뜻이 있는 정치인들의 시름도 깊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정치 현실에서 ‘에이! 우선 돈 보따리부터 펼쳐놓고 보자’고 나선 정치인이 있다. 대구시 중구의회 권경숙 의원이다. 권 의원은 우선 자신의 복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했다. 지역사회복지기금으로 5년간 1억 원을 내놓겠다는 약정이었다.

자신의 지갑을 열어 직접 ‘가난 구제’ ‘국리민복’에 나선 권 의원을 만나보았다. 

◆인쇄업체 운영하며 지역 봉사활동 앞장=정치 입문 전 그녀는 잘나가는 인쇄업체 대표였다. 중구청 뒷골목 한옥 골목의 한편에 인쇄공장 카피몰(Copy mall)을 세우고 사업가로서 기반을 다졌다.

▶도서 제작 ▶CAD, 그래픽 출력 ▶상황판 제작 ▶컬러·흑백 스캐닝 ▶제본·코팅·청사진을 전문 아이템으로 착실히 사업기반을 다졌다.

사업으로 어느 정도 기반이 다져지자 숨어 있던 그녀의 봉사 DNA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지역 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해 ‘불행한 사람을 위로하고 약한 사람을 돕는다’는 클럽의 ‘강령’ 실천에 나섰다. 지역 사회 봉사단체와도 연계해 활동을 펼쳤다.

그 당시에는 몸 하나를 4~5개로 나누어 써야 할 정도로 바빴다. 사람 좋아하는 그녀, 씀씀이가 선(善)한 그녀를 봉사단체, 지역 개발 단체, NGO가 놔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용 봉사, 다문화 무료 예식, 이동 목욕 봉사 등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소외계층의 현실에 눈뜨게 되었어요. 나의 조그만 봉투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일주일, 한 달을 연명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웃돕기에 나서게 되면서 제 지갑이 열리고, 손이 더 바빠지는데 정작 제가 얻는 보람과 기쁨이 더 커지는 걸 느꼈습니다.”

20년 가까이 지역 사회에서 봉사 활동에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정치권과 친분이 쌓였고 이를 계기로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봉사활동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한계가 있지만 정당 활동은 정책 결정에 참여해 제도화로 연결할 수 있어 더 큰 보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권경숙 의원 대구 아너소사이어티회원 가입 모습. 중구청 제공

◆지역 기초의원 1호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중구민을 위해 봉사할 기회’는 뜻밖에 일찍 찾아왔다. 2018년 치러진 ‘6·13 지방선거’에서 대구 중구의원(가)에 출마해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것이다.

당선되자마자 초선의원으로서 드물게 부의장을 역임했고, 2020년엔 여성 최초로 구의회 의장에 선출돼 2년간 구정을 이끌었다. 권 의원은 이런 지지에 대해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자세가 지역민들에게 어필이된 것 같다”며 “당시 하반기 의회에서는 구민들의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동료들과 ‘핀셋 검증’을 통해 구정을 감시했다”고 말했다.

정치에 입문한 후 상임위원장으로, 의장단으로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마음만은 늘 사회적약자들을 향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권 의원은 대구 아너소사이어트 회원 대표인 신홍식 회장으로부터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을 권유 받고, 약정액을 분납(分納) 형태로도 납부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사회 기부’ 마음은 있었지만 1억원을 한꺼번에 낸다는 부담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어요. 할부가 가능하다는 말에 1년에 2천만원씩 5년을 약속하고 바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되었습니다.”

대구 기초의원으로서는 1호였고 대구시 전체로는 201번째 회원이었다.

당시 권 의원은 “코로나-19 사태로 대구 시민들이 무력감에 빠져 있는데 무언가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에 결심을 하게 됐다”며 “이 성금이 지역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소외된 이웃들이 마음을 녹이는 데 쓰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후 권 의원은 동료 의원들과 힘을 모아 대구시 중구 구립도서관 건립을 이끌어 냈고 동인세대공감마당, 삼덕마루, 달성토성커뮤니센터 등 6곳의 커뮤니티센터를 설립했다. 또 지난 3월엔 사업비 27억원을 들여 ‘중구재활용센터’를 준공하기도 했다.

◆‘신천프로젝트’ ‘구립산후조리원’ 등 공약 꼭 실천=이런 의정 활동성과에 힘입어 권 의원은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재선 의원이 되었다. ‘국민의힘 정서가 강한 대구에서 여당 후보의 재선은 당연한 것 아니냐’ 반문할 수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기막힌 ‘반전’이 있었다.

“공천표를 받아보니 대구중구의회 ‘다’로 결정이 된 거예요. 세상에 ‘나’도 아니고 ‘다’라고? 보통 대구 기초의회에서는 ‘가’ 후보가 50%를 가져가고 ‘나’후보가 20~30%를 가져가요. 여기에 야당 고정표가 15~20% 쯤 되니까 산술적으로 제 당선은 불가능에 가까웠죠.”

‘낙선’이라는 정답이 거의 나와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굴복할 권 의원은 아니었다. 새벽부터 골목을 누비며 유권자들을 만났고 밤늦게까지 대로에서 시민들과 접촉했다. 공천의 불리(不利)를 극복하는 방법은 유권자를 만나 설득하고 공약을 설명하며 표심을 얻는 것 뿐이었다.

결과는 ‘당선’이었다. 함께 수고한 당원, 유권자들이 기쁨의 눈물의 흘렸다. 대구시 전역을 통틀어 ‘다’번을 받고 생환(生還)한 후보는 권 의원이 유일했다.

구민들의 지지와 성원 덕에 이제 권 의원은 재선 의원이 되었다. 선수(選數)가 쌓이면서 책임의식도 커졌다. 이제 자신의 의정 목표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한 실천에 나설 계획이다.

제일 먼저 신천을 운동, 여가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신천 프로젝트’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농구장이나 게이트볼장 등 운동시설 추가하고 재배치해서 ‘건강 중구’의 슬로건에 다가간다는 계획이다.

어르신들 위한 공동거주 주택마련, 노인복지관 조성도 권 의원이 관심을 갖는 분야다. 관내 미분양 아파트 등을 매입해 ‘어르신 공동거주주택’을 마련한 후 거주자에 대해 공공요금과 생활비를 후원한다는 계획이다.

동성로에 신(新) 공공 디자인을 입히는 ‘동성로 프로젝트’도 곧 구체화 된다. 대우빌딩에서 구(舊) 중앙파출소까지 동성로 전역에 공공 디자인 사업을 벌여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면 유동인구가 늘어나 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될 전망이다.

‘구립 산후조리원’을 조성해 여성, 주민 복지를 높이고 이를 통해 인구 유입 효과를 높인다는 구상도 곧 본격화될 전망이다. 권 의원은 “임신부터 출산까지 자치단체가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출산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인구 증가까지 기대할 수 있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구시 중구의회 권경숙 의원.

◆앞으로 중구 구민만 바라보고 의정활동 펼칠 터=소외된 이웃들의 복지를 위해 선뜻 1억원이라는 성금을 내놓았지만 권 의원이 생활이 넉넉하고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젊은 시절 그녀는 ‘짠순이’로 불리며 알뜰하고 검소한 기업인으로 소문나 있었다. 그럼에도 오로지 중구 구민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선뜻 지갑을 열었던 것이다.

얼마 전 2선 의원으로 다시 의정 활동을 시작한 권 의원은 오늘도 구정(區政)을 챙기며 공약사업을 구체화할 예산, 절차 마련에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경황없이 정치에 뛰어들었는데 그동안 ‘여성 최초 구의회의장’ 타이틀과 ‘기초의원 최초 아너소사이어티 클럽 회원’이 되었네요. 또 지난 지방선거에서 ‘사지’(死地)에서 저를 구민 여러분들이 불러주셨으니 이제 앞으로 중구 구민들만 바라보고 의정 활동을 펼치도록 하겠습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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