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대구경북광고산업협회 회장이 사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건설사가 아파트 분양승인이 떨어지면 제일 먼저 접촉하는 곳이 아파트 분양·광고대행사다.

대행사는 위임 받은 아파트의 위치, 정주 여건, 교육 환경, 내부 설계, 청약자격, 금융 조건 등 정보를 신문·방송, SNS, 유튜브, 전광판, 옥외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알린다.

20여 년 전만 해도 아파트 광고는 건설사가 직접 담당해왔지만 업무 범위가 광범위해지고 전문화 되면서 이런 홍보 업무는 ‘대행사’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요즘은 이런 흐름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만 아파트 분양·광고 대행 시대를 열어간 곳이 대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90년대 ‘200만호 건설’, ‘일산·분당 신도시 건설’ 시절 대구의 건설사 3인방(우방·청구·보성)은 수도권에서 ‘건설 명가’(名家)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건설사 인력으로는 밀려드는 모델하우스 신축, 분양 홍보 등 업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전문업체에 외주(外注), 대행을 맡기게 되었는데 이것이 대구에서 분양 홍보대행사의 등장 배경이 되었다.

‘건설 명가 대구’의 자부심이 ‘광고 명가 대구’로 넘어온 셈인데 현재 대구에는 대구경북광고산업협회가 20년째 지역 부동산 분양 광고 대행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협회의 최종태 대표를 만나 대구 부동산 시장의 현안과 전망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았다.

◆학생 시절 학생운동에 뛰어들어=‘근성 있는 광고쟁이로 기억해달라’는 최 대표지만 그의 삶의 궤적 중에 재미있는 이력(履歷)이 숨어 있다. 바로 그가 계명대 유명한 학생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이다. 당시 시위대의 행동대장 격인 ‘선봉대’로 활동했고, 대명동캠퍼스 데모대의 맨 앞엔 항상 그가 있었다.

학교 졸업 후 최 대표는 서울의 모 경제신문에 기자로 입사했다. '학생 운동'의 연장으로 화염병 대신 펜으로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의 보수적인  환경은 최 대표와 생리상 잘 맞지 않았다. 보수적이고 위계, 서열이 강한 언론사 환경은 이미 저항의식에 ‘세뇌’된 최 대표를 더 이상 잡아 둘 수 없었다.  ‘내 옷이 아니구나’ 판단을 내린 최 대표는 6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광고업계로 뛰어들었다.

수성구에서 광고사 ‘솔트커뮤니케이션즈’를 운영하던 최 대표는 2019년 1월 광고산업협회장으로 취임하며 지역 광고업계를 3년째 이끌고 있다. ‘침체된 광고시장을 일으켜보겠다’고 각오를 다졌지만 코로나-19, 부동산 침체라는 복병 앞에서 잠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다.

대구경북광고산업협회-부산광고산업협회 교류 활성화 업무협약 모습.

◆“대구의 부동산 침체 1~2년 더 지속될 것”=모든 경제지표가 우울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듯 최 대표도 지역 부동산 시장 전망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최근 일부 지역이 부동산 규제에서 해제되었지만 2020년부터 대구에 내려졌던 ‘조정 대상지역’ ‘투기 과열지구’ 지정 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4년간 10만 가구가 넘는 공급 물량이 쏟아진 것도 부동산 경기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말 그대로 ‘폭탄’ 수준의 분양 물량이 쏟아진 셈인데 이 덕에 대구는 전국에서 최고 미분양률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양적(量的) 팽창, 고물가, 고유가, 고금리에 우크라이나 전쟁 변수까지 가세해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최 대표는 “1997년 IMF 때는 외환보유고 문제,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때는 파생 금융 부실이라는 인과(因果)관계가 비교적 뚜렷해 해법이 쉬웠지만 최근의 경제 사태는 금리, 물가, 팬데믹에 전쟁 변수까지 가세해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도권 업체 지역 부동산 광고 물량 독점 심화=최근까지 대구의 광고업계는 대구경북의 물량은 물론 수도권 광고까지 수주할 정도로 경쟁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사조 이후 광고업체들이 대형화, 독점화되면서 대기업 광고사들은 수도권은 물론 지방의 광고 물량까지 쓸어 담고 있다. 거기에 소비자들의 수도권 브랜드 아파트 선호현상이 심화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최 대표는 “최근 대구경북 지역에 공급되는 아파트 80%가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라며 “지역 광고 업체들은 이미 8대 2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대형 건설사들이 광고물량을 지역에 맡기지 않고 수도권에서 미리 ‘세팅’해서 내려온다는 점이다. 보통 아파트 광고 대행 과정엔 언론·홍보 외 인쇄·출판, 모델하우스 건축 판촉물 등 40~50곳 업체들이 함께 협력하는 구조인데 이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최 대표는 “수도권 기업이 대구에서 사업을 할 때는 지방정부가 사업승인 단계에서 지방과 협력할 ‘이행계획서’를 요구해야 지방과 상생이 가능하다”며 “이미 다른 분야에서는 서울 기업 지방정부간 상생을 위한 쿼터, 할당제를 제도화했기 때문에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경북광고산업협회 '광고인의 밤' 행사 모습.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광고 전략 개발=지역 광고업계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다양한 광고 전략을 모색하는 것도 최 대표의 최근 과제 중 하나다. 최근 4차산업 시대를 맞아 미디어 간 융합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광고업계의 대응전략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옛날엔 신문, 방송, 라디오, 잡지 등 4대 매체 위주로 홍보 업무가 집중되었지만 이젠 그 경계가 무너졌다”며 “포털, 온라인, SNS 유튜브, 옥외광고 등 광고 수요가 급증해 이젠 광고사들이 멀티플레이를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바뀐 미디어 환경에 대한 대책 마련, 재교육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기존 산업광고, 디자인 분야 외 메타버스, 블록체인, AI, 빅데이트 분야 업체들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해 4차 산업시대에 맞는 ‘진용’을 꾸린다는 계획이다.

최 대표는 “앞으로 모든 산업은 스마트산업 환경으로 재편될 것이고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앞으로 광고 분야에도 메타버스, ABB 기술이 접목되며 급속하게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역 부동산 전문가들은 향후 1~2년간 지역 부동산 경기가 침체 모드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고, 이에 연동된 지역 광고업계의 표정도 밝지 않다. 그러나 최 대표는 언제나 밝은 에너지를 지역 회원사들과 공유하며 긍정 모드로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주거(住居)는 인류의 기본적 생존 수단이기에 부침(浮沈)은 있겠지만 부동산 산업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잠시 불황 터널을 지나겠지만 이 시기 우리가 IT, ABB, 멀티미디어 광고 역량을 축적해 놓는다면 더욱 희망찬 미래를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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