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탁구장’ 이동훈 시인의 문학 산책] 권정생, 『밥데기 죽데기』

권정생 선생은 『밥데기 죽데기』 머리말에서, 『강아지똥』을 쓴 지 30년 만에 다시 똥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것, 똥이 똥다워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라는 말 자체가 권정생답다는 생각이다.

권정생 동화는 이밥처럼 달게, 맛나게 넘어가지는 않지만 현미 섞인 잡곡밥처럼 거무끄름하면서도 씹을수록 맛을 내며 참한 똥을 보게 되는 작품이 많다. 이번 동화도 그렇다.

동화 속 늑대 할머니는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한 조력자로 달걀귀신을 만든다. 밥데기와 죽데기다. 그 탄생 비결도 똥으로 시작된다. 삶은 달걀을 똥통에 한 달 담가두는 것인데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목숨은 모름지기 가장 밑바닥에서 엉망진창으로 견뎌봐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바로 알게 된단다. 똥통에 들어가 보지 못하면 똥통 같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겠니? 그리고 이 더럽고 흉측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가겠느냐? 너희는 그렇게 모질고 야무져야 한다.”

늑대 할머니의 주문은 밥데기와 죽데기에게 또 어린 친구들에게 남기는 것이지만 사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으로 보인다. 가난을 절실하게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난한 다수와 동떨어진 정책을 펴기 쉽다. 아예 부끄러움도 잊은 채, 힘 있고 돈 있는 쪽에 붙어서 가난한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많아 보이니 말이다.

늑대 할머니의 원수인 사마귀 할아버지는 알고 보니 늑대 할머니만큼 불쌍한 사람이다. 원래 사냥꾼이었지만 일본인의 강권으로 맘에 없는 사냥을 해야 했고, 육이오 전쟁 중에 가족을 다 잃게 된다. 그밖에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충격으로 빛에 대한 공포를 갖고 평생을 갇혀 지내는 여자, 버마(미얀마)까지 끌려가서 일본 군인들에게 유린당한 위안부 할머니의 사연이 이어지니 동화 속에 근대사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런 중에도 작가는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고 익살스런 문장을 구사하면서 내용이 너무 무겁지 않도록 신경 쓴다. 불편하더라도 알아야 할 진실을 꼬박꼬박 드러내면서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려는 나름의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원수 갚기를 포기한 늑대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도 똥이다. 똥통에 든 똥을 말려 똥떡을 만들고, 똥떡에 불을 붙여 금가루를 만든다. 금가루를 하늘에서 뿌리니 집집이 노란 병아리가 태어나고, 휴전선 철조망과 전쟁 무기가 녹아난다. 환상 속에서나마 권정생이 그토록 반대하던 전쟁이 끝나고, 권정생이 그토록 염원하던 평화가 실현되는 장면이다. 늑대 할머니의 유언은 밥데기 죽데기가 위안부 할머니랑 살라는 것인데 남은 사람들이 고생하신 할머니를 잘 보살피고 대우해 달라는 말씀이겠다.

여담이지만, 동화 속 죽데기의 병원 친구인 영숙이는 자기소개를 하면서 반에서 제일 친한 친구의 이름을 얘기하고, 그 친구가 강아지 두 마리나 키운다는 말을 꺼낸다. 그 이름의 실제 주인공은 당시에 권정생 댁을 출입하던 김용락 시인의 딸 이름이다. 권정생 자신이 직접 지어준 이름인데 동화에 까메오 출연시킨 것이다. 이 사연은 졸시로 쓴 적이 있어서 슬쩍 붙여둔다.

권정생과 김용락 / 이동훈

의성 단촌리 출신, 스물한 살의 문청인 김용락

도서관에서 『까치 울던 날』(1979)을 읽으며

교회 종지기인 동화 작가가 고향집 인근 사람인 걸 안다.

김용락은 자전거에 수박 한 덩이 싣고 가서

입성 초라하고 머리카락 듬성한 사십 대 중반의 권정생을 만난다.

김용락이 랭보를 말할 때 권정생은 광주를 말하고

수박에 답하듯 『사과나무밭 달님』(1978)을 건넨다.

동화 속 달님은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소식 없는 남편의 그리운 얼굴이지만

김용락의 달님은 권정생 얼굴이다.

사과나무밭 지나 조탑동 교회 문간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