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사는 베트남 가족들이 국내 유일한 베트남 리 왕조 유적지를 방문, 행사를 하고 있다. 봉화군 제공

한국과 베트남의 직선거리는 약 3000km. 7천500여리를 거쳐 오는 동안 남(南)아시아의 아열대 기후는 어느 새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로 변한다.

아시아 대륙의 여러 국경을 거쳐 올 만큼 먼 거리지만 양국은 역사·문화적으로 무척 가까운 사이다.

베트남과 한국을 연결하는 ‘끈’은 또 있다. 700여 년 전 고려로 망명 온 베트남 리(Ly)왕족이 바로 그들이다.

봉화군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 ‘베트남 마을’을 구상하고 나섰다. 700여년 전 리왕조의 망명 스토리와 붕화군과의 인연을 공간으로 재구성 한 것이다. 이 구상은 아이디어의 참신성을 넘어 벌써 양국의 뜨거운 외교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봉화군은 5월 13일부터 14일까지 봉화군 일원에서 진행한 ‘한-베 문화교류캠프’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봉화군 제공

봉화군과 베트남과의 인연은 12세기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세기 베트남에는 대월(大越)이라는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다. 리왕조는 베트남 최초 통일왕조였지만 영종 대 이후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210년 왕조의 외척이었던 진수도(陳守度)가 역성혁명을 일으키며 리 왕조는 대규모 살육에 휘말리게 된다. 이 정변 속에서 처음으로 베트남의 통일 왕조를 세웠던 그들은 무참히 도륙 당하고 만다.

위기는 이용상에게도 찾아왔다. ‘리씨 왕족과 종친은 속히 입궐하라’는 교지를 받은 이용상은 입궐을 준비하던 중에 밀서 한 통을 전해 받는다. ‘빨리 피신하라, 절대로 궁으로 들어오지 마라’ 이 편지 한 통이 죽음의 문턱에서 이용상을 구했다.

1226년 망명길에 오른 이용상은 남송과 금나라를 떠돌며 2년 만에 고려 옹진군 화산포에 이르게 된다.

 ‘이용상의 이동 경로’는 약 7000km로 남송의 하내(河內)-양강-도원-온주(溫州)-녕파(寧波)를 거쳐 1225년 3월에 금(金)의 개봉-위해(威海)에 이른다. 그곳에서 태풍을 만나 안산(鞍山)에 닿은 이용상은 요녕을 거쳐 1226년 황해도 옹진군 화산포에 도착했다.

베트남 왕자가 표류해 왔다는 소식을 접한 고려 조정은 왕자 일행을 크게 환영하며 성(姓)까지 하사하며 고려 정착을 도와주었다. 

이후 후손들은 조선 조정에 입사(入仕)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특히 이용상의 둘째 아들인 이일청(李一淸)이 안동부사로 부임하면서 후손들은 안동과 봉화 일원에서 세거지를 이루게 되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있는 베트남 리 왕조 국내 유일의 유적인 충효당을 방문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한국-베트남의 숨은 역사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1992년 한국 베트남의 국교가 정상화 되면서부터. 1995년 화산 이씨의 존재를 알게된 베트남 정부는 종친회의 간부들을 베트남으로 초대했다. 이용상 왕자가 고국을 등진지 769년 만에 화산 이씨는 자신들의 고향 땅을 밟았다.

이후 베트남 정부는 화산 이씨를 리 왕조의 후손으로 정식 인정했으며 귀화를 희망할 경우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 했다.

이곳 종친회는 매년 3월 15일 하노이 인근 박닌성(省) 사원에서 열리는 ‘리 태조 탄신일’에도 초대돼 왕족 후손으로 예우를 받고 있다.

서울 종로구 주한베트남대사관에서 박현국 봉화군수와 화산이씨 종친회장단이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만나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봉화군 제공

역사적 미담이나 에피소드로 끝날 것 같았던 한-베트남의 리 왕조 스토리는 뜻밖의 ‘사건’을 만나 국제적 화제로 등장하게 된다. 봉화군이 올 2월 ‘베트남 마을’ 추진을 위한 워크숍을 열고 창평리에 베트남 마을 조성에 나선 것이다.

박현국 봉화군수는 “베트남 마을을 조성하면 연간 1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연 37억 원의 경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작년 12월 한국을 방문한 응우옌 쑤언 푹 국가 주석도 한 걸음에 봉화로 달려와(정상회담보다도 먼저) 화산 이 씨 이훈 대종친회장과 만나 베트남 마을 사업을 직접 챙기고 양국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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